빈 논
마른 들녁은 푸른 풀밭으로 출렁였다.
잘 자란 잔디를 옮겨 심어 놓은듯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풀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고와졌다.
모심기가 끝나갈때 즈음 머른 들판 너머로 빼곡히 심겨있는 푸른모들을 보는것만큼 좋은게 또 있을까! 땅을 움켜 잡은 어린 모들이 바람에 몸을 누였고 논두렁을 가득 메운 논물 위로 잔물결이 밀려 왔다. 메말랐던 빈논이였다.
밑둥만 남겨 졌던 잘려진 벼 그루터기들이 쟁기질로 쓸여져 간게 며칠전이였다.
가둬둔 논물이 노련한 농부의 가래질 몇번에 모심기에 딱 알맞을 진흙밭으로 바뀌었다. 쟁기질만 할줄아면 논농사는 다 배운것이라는게 허튼소리는 아닌듯 하다. 경운기나 트렉터로 잘 쓸려진 논밭은 그렇게 보기 좋을수 없다. 모판을 나르는일에 절로 흥이 난다. 벼밑단이 쟁기날에 으깨어져 어린 모를 먹여 살릴 거름으로 돌아간다. 심고 거둬 들여 지는것들은 이렇듯 버릴게 없다.
일렬로 나란히 심겨지는 모들은 수확량을 높이기 위해 빼곡히 심기가 무섭게 성장이 둔해진다. 일정한 간격으로 줄맞춰 심는 이유인즉 섭리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공간을 비워두지 않으면 잔뿌리가 뻗어나가지 못하고 뿌리끼리 영역으로 엉퀴어 자라나지 못한다. 설령 용케 자라난다 해도 햇볕을 잡아내지 못해 낱알이 여물지 못한다.
사람사는일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관계의 공간을 만들어 놓으면 감정이 너그러워진다. 감정의 뿌리가 상하지 않고 자기만의 공간에서 햇볕을 받아 낼수 있다.
그때쯤이면 논자리에는 개구리 소리가 밤하늘을 메우고 있다. 침묵의 공간을 일깨워 주는 개구리 소리는 한두마리 울기시작 하자 떼를 지어 가진 목을대를 부풀린다. 들녁은 소쩍새 소리와 개구리로 꽉 채워진다
모로 채워진 푸른 들녁은 자로 잰듯 가로 세로 어느 방향에서 바라 봐도 바람이 막힘없이 들다 나간다. 바람이 앉아가지 못해서 여린 모들은 바람에 쓰러지지 않는다. 모들이 벼로 자랄때쯤이면 비바람을 쓰러 보내지 못한 벼들이 바람에 못이겨 눕기가 일쑤다.
벼밑단만 남아있던 헐거웠던 빈논들은 물과 모로 채워진후 나날이 부풀어 오른다. 심기까지가 힘들지 일단 심켜 놓으면 밭일 보다 수월하다는 논농사이다 보니 모내는 몇일 동안은 동네가 잔치 분위기다.
사전에서 벼 를 찾아보면 이렇게 나와 있다.
"볏과의 한해살이풀. 줄기는 높이가 1~1.5미터이고 속이 비었으며, 마디가 있다. 잎은 어긋나고 긴 선 모양에 평행맥이 있고 엽초(葉鞘)와 잎사귀로 구분된다. 꽃은 첫가을에 원추(圓錐) 화서로 줄기 끝에 피는데 암술은 한 개, 수술은 세 개, 밑씨는 한 개 있다. 꽃잎은 없고 꽃술을 싸 주는, 포엽의 일종인 안 껍질과 속껍질의 영(穎)이 있고 가시랭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동인도가 원산지로 각지의 논이나 밭에 심는다."
볏과의 한해살이풀, 벼로 자라는 모는 한해살이풀이고 꽃도 핀단다. 생소 했다.
벼에 꽃이피는 한해살이풀 이라는게 ᆢᆢ
허기를 채우고 살게 해주는 낱알이 한해살이풀 이란다. 그도 생명 있는것이거늘 한해를 살아 인간을 먹여살리고 길러낸다. 고마울 따름이다.
가을 햇볕이 뜨겁다.
뜨거운 햇볕으로 익어가는 가을 들녁은 노랗게 물들어 간다. 수채화 물감으로 덧칠 해놓은듯 작품이 되어간다. 언어로 감당 못할 풍경이 펼쳐진다. 하늘을 향해 무섭게 올라가던 그들도 낱알이 여물때 즈음이면 성장을 멈춘다. 버리고 취함을 선택한다. 낱알은 무거워져 땅을 향하고 익어가고 단단해져간다. 무거워진 낱알들은 잔바람에도 쉬이익 쉬이익 파도 소리를 내며 쓸려간다.
가을이 내려 앉은 들녁의 풍경이 마음밭으로 들어오는 순간이다. 보는것 만으로 위로와 치유가 되어준다. 마음밭의 수런거럼이 가라앉는다.
편안해 보였다.
벼가 익어가는데 사람이 할수 있는게 그리 많치가 않다는걸 알아간다. 농삿일의 태반은 사람이 하는게 아니라는것을 깨달아간다. 낱알이 여무려 갈때 농부의 손길이 여든여덟번 간다고 한다. 그러타 하더라도 가을 하늘이 돕지 않으면 거둬들일수가 없다. 그게 섭리 이다. 스스로 그러하게 궤도를 벗어나지 않음이다.
새벽 이슬로 농부의 바짓단이 젖어 들어갈때즈음 ᆢ감나무 잔가지가 휘청일 만큼 빨간 홍시로 익어갈때즈음ᆢ
농부는 뿌리고 거두워야할 시기를 알고 있다.
휭하니 벼 그루터기만 남아있는 빈 논을 보고 있자니 백발이 성성한 아버지가 생각났다.
헐거워진 빈 논에 안개만 자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