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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의 아욱죽

by 둥이

어렸을 때 자주 아팠다

여기저기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 배꼽 옆으로 부스럼 앓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고 등짝으로도 종기 짠 자국이 남아있다 얼핏 보면 화상 자국으로 보일 때도 있어서 매번 설명을 해줄 때도 있었다 등에는 옛날 왕들이 자주 걸렸다는 종기 욕창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못 산 티가 가난했던 티가 그렇게 몸에 흉터로 남아있다


중학교 1학년때 종기로 어찌나 크게 앓았는지 의료보험도 시행되지 않았던 때였는데, 수술한 자국이 몇 군데나 흔적이 남았다 종기로 수술까지 했다면 믿지 않을 테지만 커져가는 종기를 제때 치료받지 못해서 종기가 부풀 때만큼 부풀었고 고름으로 꽉 차고 고열로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을 당시 사감 선생님 손에 끌려 병원을 가게 됐다

지금도 기억하는 건 의사가 했던 몇 마디 말이었다


-야 너 안 아팠니 여태 이걸 참았어!!

-바로 왔었어야지!!


실로 처절한 아픔이었다

어찌나 아펐던지 참 많이 울었었다


바람이 차가워질 때쯤 감기로 며칠을 앓아 누었고 일주일이고 이 주일이고 열이 가라앉을 때까지 누워만 있었다 농사일로 바쁘셨던 부모님은 딱히 약이래야 진통제 몇 알을 어디서 구해오셔서 쌍화탕에 같이 먹으라고 하셨다 지금도 쌍화탕 향을 맡을 때면 그때 먹었던 그 진한향이 생각난다


그렇게 심하게 앓고 있던 어느 날 외할머니가 흰 죽을 쑤어 오셨다 흰 죽 위에 노란 참기름과 까만 간장을 한수푼씩 얻어 주시며 떠먹여 주시곤 하셨다 또 어떤 날은 흰 죽만 먹이기 모 하셨던지 아욱죽을 쑤어서 오셨다 된장 아욱죽은 몇 그릇을 먹어도 물리지가 않았고 외할머니가 쑤어오신 아욱죽을 먹고서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할머니의 흰 죽과 아욱죽은 천상의 맛이었다 아버지가 일 년에 한두 번 사주셨던 짜장면 보다 맛있었다 아파야만 쑤어 오셨고 아파야만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었다 지금은 죽집이 체인점화 돼서 언제 어디서든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아무리 비싼 죽을 먹어도, 그때 외할머니가 해주신 아욱죽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아파 누워 있던 아이는 할머니의 아욱죽이 올 때까지 기다렸는지 모른다 진작에 열도 내리고 진작에 기침도 자자 들었지만 엄마에게는 어지럽다 밥맛없다 때를 쓰고 있었는지 모른다

떨어졌을 기침도 요란하게 하고, 내려간 열을 올리기 위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오기를 부렸는지 모른다 외할머니가 올 때까지ᆢ


외할머니의 아욱죽은 처방전된 감기약보다

효과 높은 약이었다



아!! 그 맛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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