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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가는 길

by 둥이

도서관 가는 길

수리산 산기슭 산책로 초입에 위치한 군포 중앙 도서관은 산으로 둘러 쌓인 유럽에 성과 같다. 마치 독일 바이에른주 퓌센에 위치한 노이슈반슈타이성처럼 도서관과 잇닿아있는 풍채 좋은 참나무와 떡갈나무 들은 계절의 흐름을 도서관으로 옮겨 놓은 듯 그렇게 자연의 일부가 되게 한다. 도서관 가는 길이 산으로 오르는 길과 닿아 있다. 도서관 높이보다 키 커 보이는 나무들이 주변을 에어 쌓고 있어서 자연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창문을 열어 놓으면 다양한 사물의 소리가 밀고 들어온다. 일정한 리듬으로 나무를 찍어대는 딱따구리 소리, 가까운 거리에서 울고 있는 듯 선명한 소쩍새 소리, 날갯짓 소리가 더 화려한 쥐똥구리박새의 파닥 거리는 소리, 햇볕을 가릴 만큼 커다란 까마귀의 날카로운 울음소리, 언제나 볼 수 있는 텃새 까치의 청아한 소리까지 귀 기울여 들으면 들리는 소리는 이보다 다양하다. 늦가을 도토리를 줍느라 다투는 청설모의 격투신이 빚어내는 소리와 그들과 한 호흡으로 만들어내는 바람소리, 낙엽 떨어지는 소리와 낙엽 밟히는 소리 선사의 낙엽 쓰는 빗자루 소리는 그중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의식 속으로 조용히 헤집고 들어오는 자연의 소리는 도서관에 있을 때래야 그 맛이 더 살아난다. 도서관은 오감의 촉수를 예민하게 만들어준다. 도서관 뒤편으로 수리산 계곡물이 갈길을 간다. 받아줄 웅덩이를 채우고 난 후 넘쳐흐르기를 반복하며 소리를 만들어내는 물의 고집과 정직을 따를 게 있을까!

아마도 늘 잃어버리고, 잊고 사는 우리들을 위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도서관 3층 일반 대여실로 발길을 서두른다. 이번에 고른 책들을 바삐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느린 엘리베이터를 포기한다. 가쁜 호흡을 가다듬고 연람실 버튼을 누른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투명하고 눈부시고 부드럽다. 마치 봄의 햇살처럼 따스하고 보름 달빛처럼 고요하다. 그 공간은 밤새 뭉쳐 있는 나의 근육과 마음을 이완시켜 주었고 내 눈에 따뜻하고 정겨운 빛을 던져 주었다. 모든 시간과 공간이 나를 감싸주고 위로해 주었다. 흉터가 아물어 가는 시간이다.


도서관의 투명한 유리에 비치는 수리산 풍경과 의자와 책상 위에서 피어오르는 친근한 나무향과 가로세로 가지런히 꽂혀 있는 아름다운 글에서 뿜어져 나오는 종이향과 도서관 구석구석까지 배어있는 책 읽는 사람들의 열기와 조용하고 흐트러짐 없는 몸짓들..

그 공간에는 오랫동안 잃어버리고 있었던 기억과 언어가 흩어져 있었다. 삶의 흉터가 치유되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 공간에는 사람의 언어와 글, 햇살과 공기와 바람과 나무와 수풀들이 원래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마치 배경화면처럼 여백을 메우고 있다.


도서관에서는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책을 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글 속으로 내몰리듯 감정을 잃은 듯 몰입해 있다.


한 손가락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벽돌보다 두꺼운 서적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머리가 싸한 나이대가 꽤나 들어 보이는 분들이 많이 앉아 있다. 자주 가서 보아도 그분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좀처럼 움직이는 법도 없었다. 생을 지탱해 가려는 자들의 열기가 주변을 숙연케 한다. 표 나지 않게 얼핏 쳐다보았다. 공인중개사 수험서가 한쪽으로 어깨 높이로 쌓여 있었고 가끔은 하얀 천장을 노려 보는 듯했고 가끔은 책상 밑바닥을 쳐다보는 듯했으며 그냥 대부분은 앞에 놓인 책을 미동도 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몇 년째하고 있는 공부일까 은퇴하고 준비하는 걸까 아니면 밥벌이로 하는 걸까 그 옆을 지나칠 때마다 궁금했다.


가죽 헤드폰을 쓴 젊은 분은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국어 영어 출제문제 상식 책을 펴놓고 공부를 하고 있다. 표정에 변화가 없고 시간과 다투는 듯했다. 따뜻한 햇살 쬐는 것조차 그는 사치라고 느끼는 듯했다.


이런 분들의 도서관을 대하는 자세에 비하자니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죄송스럽기까지 했다. 어디까지나 생계문제 와는 관계없이 도서관을 찾아간다. 도서관에 공부하러 가기보다는 책을 보러 간다. 읽고 싶은 다양한 책들을 마음껏 볼 수 있다. 한동한 모든 책들을 구매해서 읽었는데 어떤 책은 왜 이런 책을 구매했을까 후회가 드는 책들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소설류는 대부분 대여해서 보고 있다. 나는 밑줄을 그어가며 지저분하게 보는 편이라서 에세이류나 지식도서등은 대여보다는 구매를 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갔다.


도로와 연결되어 있는 주차장에 주차를 한다. 산기슭에 도서관을 짓다 보니 이런 구조가 나오는 듯했다. 도로와 연결되어 있는 주차장이 도서관 지하가 되는 셈인데 도로와 닿아 있어서 지하 주차장은 될 수가 없다. 여하튼 기분 좋게 주차를 하고 1층 어린이 도서관을 먼저 들른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같이 와서 책을 고르고 밥을 먹고 산책을 한다. 저렴한 가격의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아이들이 마실 저렴한 가격의 복숭아티와 호박식혜를 주문한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지인분들을 자주 만난다. 약속을 한 만남이 아니어서, 우연한 만남이어서 더 반갑다. 아이들은 책과 조금씩 친해지고 있는 중이다. 어린이집에서 함께 지낸 동생을 보기도 하고 누나나 형도 보게 된다. 할머니를 따라 나온 손자들과 엄마 아빠 손에 이끌려온 아이들이 도서관의 풍경을 채우고 있다. 아이들의 책 넘기는 소리와 책보다는 도서관을 놀이터 삼아 뛰어다니는 발자국 소리가 일층 연람실을 가득 메우고 있지만 이 역시 정겹다.


"아빠 도서관에서 놀다 가자"

"그래 책과 노는 게 제일 재밌기는 하지"

"아빠 도서관에 DVD시청각실에서 영화 보자"

"괜찮은 다큐 있는지 찾아 볼게"

"아빠 도서관에서 책 보다가 수리산 퐁당퐁당 가서 가재 잡자 도롱뇽 깨어났을까"

"그래 가재 잡으러 가자 도롱뇽은 아직 자고 있을 거야 곧 봄이 올 거니까 기다려보자"


아이들과 도서관에 가는 일이 많아졌다.

이따금 아이들이 부러워질 때가 있다. 아이들의 작게는 나이가 아홉 살 이란 부분에서 시작해서 크게는 존재의 의미까지.. 아이들 눈에 비친 세상과 사물들의 신선함과 색깔과 재미가 궁금했다. 아이들 눈에 담길 풍경과 사람들과 음악들과 책들과 언어들이 ᆢ 그것은 내가 알고 있고 보고 있고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모습과 다를 것이다. 같은 사물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대할 것이다. 오래전에 나는 그랬다.

내가 열 살 이었을 무렵에는 내 눈에 보이는 모든 세상과 사물은 훨씬 단순한 듯했다. 중간이 없었다. 좋고 싫음이 명료했고 선과 악의 윤곽이 선명했다. 누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신기할 정도의 촉이 있었다. 관계로 힘들어하지 않았다. 노력은 반드시 보답을 받아야 하는 것이었고 관계는 주변으로부터 늘 사랑받고 있다는 감정으로 넘쳐났다.


오늘도 난 아이들이 자라날 그 하루하루가 미치도록 궁금해진다. 바람이라면 아이들이 책을 통해 읽고 쓰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성장해 갔으면 한다. 그래서 온몸의 촉수를 더듬이 삼아 세상을 풍요롭게 살아가길 바라본다.


책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줄 아는 사람으로 커나가길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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