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중회와 돌림자 이름
우리 집안은 유서 깊은 남양홍 씨 예사공파 구례공 종친회 종원이다. 남양홍 씨 까지는 알겠지만 그 밑으로 수없이 쪼개진 공파들은 그 크기와 규모가 워낙 많다 보니 들어도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종친회 모임은 선학들의 물려주신 종중자산이 많아서 인지는 몰라도 일 년에 몇 번씩 종친회에서 주관하는 제사에 많은 분들이 참석해 오고 있다. 종친회에 등록된 인원만 오백여명 정도 되는 듯했다. 종친회에서 주관하는 제사는 일 년에 두 번 4월 한식날과 11월 시제 봉행이 있다. 십 년 전만 하더라도 4월 한식날에는 많은 선친들이 가족봉분묘를 낮으로 다듬고 모여 식사들을 하곤 했다. 지금은 그 동네 전체가 아파트와 골프장과 대형 아웃렛이 밀고 들어와 이제 제법 큰 선산과 빈 땅을 종중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조상 선학들께서 그나마 살림터를 잘 잡은 덕을 후학들이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어렸을 적 내가 사는 기흥 고매동에는 온 동네가 홍 씨 들이였다. 홍 씨 집창촌 인 셈이다. 옆집 뒷집 양지편 냇가옆 거의 대부분이 홍 씨 들이 모여 살았다. 지금은 평생을 나고 자란 땅을 벗어나지 않으신 아버지만이 그 고향땅을 지키고 있다.
시제봉행이 있는 날이면 큰일이 없는 한 참석을 해오고 있다. 종친회에서 주관하는 가족묘 조성과, 선산 매매등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안건들도 많아서 참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오백 명에 가까운 종중 회원들이 모이는 날이면 재미난 일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돌림자 항렬을 사용하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아버지대의 돌림자 항렬은 가운데 글자가 현자를 사용한다.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어르신들이 이런 현자돌림을 많이 사용하고 계신다면야 다행이지만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이 아버지대 돌림자를 사용하는 분들 앞에서가 문제가 된다. 한마디로 촌수는 형님뻘 아버지뻘이지만 나이로는 같거나 어린 경우도 다반사라서 문제가 된다. 이게 무슨 문제가 되냐며 촌수대로 예의를 갖추면 된다고 하지만 세대가 세대신만큼 그리 쉽지만은 않은 듯했다. 우리 형제들의 돌림자는 가운데 이름을 기자로 사용한다. 그래서 기로 사용될 수 모든 이름들이 모여든다. 마치 이름 박람회장을 연상시킨다. 대부분의 종친회가 그러할 것이고 삶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대수명이 늘어나 백세 시대가 되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삼대 혹은 길게는 사대에 걸쳐 가족구성을 이루는 게 대부분이고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그리고 손자 더 길게는 증손자까지 보는 경우도 있다. 우리의 경우도 삼대에 걸친 종친원들이 모여 아버지 때 항렬인 현자 항렬과 아들 때 항렬인 기자 항렬 그리고 손자 항렬인 호자 항렬의 이름들이 모여 시제를 드린다.
"기언. 기수, 기남, 기송, 기삼, 기열, 기철, 기신, 기민, 기문, 기중, 기종, 기리, 그 외 수많은 기자 이름들 "
그 이름이 그 이름 같지만 모두 다른 사람이고 사촌에 팔촌을 넘어가다 보면 촌수도 항렬도 어려워지고 기억할 수도 없어서 그냥 목례만 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종친회 회장은 종중 장손이 이어서 해오고 있는데 재작년에 초등학교 동창이 회장이 되었다. 나의 초등학교 동창 아버지 이름은 나와 항렬이 같은 가운데 자를 사용하였고 작년까지 종친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인 종친회장은 나를 보며 인사했다. 내 항렬이 자기 아버지 항렬과 같았던 것을 의식했던지 아저씨뻘 된다면서 말 놓기를 주저하는 듯했다.
"편하게 해 동창인데 어때 "
어색해하는 회장 주위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얼굴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도 이름만 들으면 서열이 정해지는 장점이 있다.
종중 모임이 있는 날이면 느끼게 되는 두 가지는, 이름만 비슷하게 아니었구나라는 것과 생김새가 비슷한 유전의 위대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전체적인 실루엣과 비율 그리고 눈코입의 균형감 머리숱 눈의 크기 ᆢᆢ
놀라울 정도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피는 물보다 진함은 거짓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