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마법사 그 이야기 속으로
머리숱이 풍성한 할머니 앞으로 두 아이가 걸어가고 있었다. 아이는 무엇에 화가 났는지 동생 이름을 부르며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들으려고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두 아이들의 다툼이 귓전으로 들려왔다.
"나는 그 책 읽기 싫어! 맨날 수진이가 좋아하는 것만 빌리고 난 형들이 읽는 거 읽고 싶어"
할머니는 다음 주에 읽고 싶은 것 찾아보자 약속해주었고 아이는 동생을 한번 더 밀쳐 보는 것으로 화풀이를 하였다. 할머니 품으로 안기는 작은 아이의 까만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도서관에서의 종종 보게 되는 이런 풍경은 아름답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간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과 도서관을 찾는다. 가족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어서 최대 14권을 이주동안 대여 할 수가 있었다. 그나마 빨리 읽은 책들은 먼저 반납해서 그사이 읽고 싶었던 책들을 대여하는 부지런을 떨어서 그런지 도서관을 가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보통은 내가 읽고 싶은 책 세네 권에 아이들 책을 열 권 정도 찾아서 대여를 한다. 아이들이 보고 싶은 책은 스스로 고르게끔 만들어 주는데 두세 권을 파충류 도감이나 마법왕 한자왕 같은 책자를 골라오기도 하고 동시를 골라오기도 한다. 나머지는 내가 아이들에게 도움 될만한 책들 위주로 골라준다.
지난주에 대여한 책들을 집에 와서 정리하다
오즈의 마법사 란 책을 보게 되었다.
"주완 지완아 오즈의 마법사 누가 고른 거야"
"엄마가 골랐을걸 "
기특하다 칭찬해 주렸던 마음이 그새 식어 버렸다. 이쁜이가 고른 오즈의 마법사는 제법 페이지가 두툼했고 읽어 주려면 한두 시간은 걸릴 듯했다.
매일 저녁 잠들기 전 한 시간 정도를 책을 읽어주는데 대여한 책들 위주로 아이들이 골라오면 침대 위에 둘러앉아 낭독하듯 읽어준다. 아이들이 읽고 싶은 책들이 파충류 도감이나 동물도감 같은 비슷한 책들이어서 읽다 보면 지치기도 했고 때우기식 의무 방어전으로 읽어 주곤 했었다. 아이들이 고른 책을 읽은 후 아이들용으로 쉽게 정리된 논어와 도덕경, 수상록, 탈무드 책들을 하루에 한두 꼭지씩 읽어 주고 있는데 아이들은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는 질문들을 하였다.
그래도 조금은 남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읽어 주고 있다.
한 번은 주완이가 책 읽어 달라며 보채날이 있었다. 아빠의 신체 민감도와 피곤함에 따라 읽기는 들쑥날쑥했었고 그날도 피곤하단 이유로 아이의 긴 보챔을 무시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다음 날 미안한 이유도 있었지만 오즈의 마법사가 반짝이며 눈에 띄었다.
저녁시간 잠들기 전 아이들은 오즈의 마법사를 들고 왔다. 꽤나 긴 페이지(보통은 50페이지를 넘어가면 힘들어함) 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몰입해서 듣고 있었다. 읽어주는 나 역시 오랜만에 아는 내용이라고 편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읽어 가면서 "유리구두와 황금모자 도로시와 토토" 글 속으로 빠져 들었다. 팔이 저린 줄도 모르고 땀이 나는 줄도 모르고 아이들은 화장실도 가지 않은 채 발장난도 하지 않은 채로 한 시간 반이 넘도록 ᆢ 도로시와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사자가 만들어 놓은 재미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이야기 속에 들어간 우리는 그렇게 시간의 흐름을 잊고 있었다. 아니 그 순간 시간은 흐름을 멈추었다. 주체가 느끼지 못하는 시간은 더 이상 시간이 아니다. 그곳에 있는 시공간만 존재할뿐 이다. 글 속으로, 이야기 속으로, 언어 속으로, 도로시가 되어 허수아비가 되어 사자가 되어 , 양철나무꾼이 되어 그리고 그 옆에 우리가 있었다.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는 아이들의 심장과 혈관 속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재미난 이야기는 심장을 뛰게 하고 혈류 속도를 증가시켜 두뇌 속 도파민을 분출시킨다.
도로시와 토토는 거대한 회오리바람에 실려 북쪽 나라로 날아갔다. 북쪽나라 마녀는 도로시와 토토가 실려온 집에 깔려서 죽었다. 서쪽나라 마녀는 북쪽나라 마녀의 유리구두를 선물로 주었고 이마에 뽀뽀를 해주며 집으로 돌아가려면 동쪽나라 오즈의 마법사를 찾으러 가라고 했다. 여기서 도로시는 이미 집으로 가기 위해서 유리구두와 서쪽마녀의 뽀뽀와 같은 필요했을 무엇도 부족한 게 없었는데도 스스로 집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선다.
도로시와 토토의 집으로 가는 여행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과 별반 차이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허수아비일 수도, 양철나무꾼 일수도, 사자일 수도 있었다. 우리의 원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지혜를 달라 기도하고, 사유하고 사랑받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그못지 않은 용기를 달라고도 기도한다. 그 바람의 밀도는 동일하다. 스스로 성장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어느 순간 본인들이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던 그 무엇이 이미 자신 속에 만들어져 있음을, 그것이 누구의 도움이 아닌 스스로 서로에게 기대어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면서 그것을 통해서 만들어져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 우리는 성장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