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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고수

M전무님 이야기

by 둥이

M전무님 이야기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M전무님에 대한 이야기다.

M전무님은 우리나라 인구 통계학 자료로 자주 활용 되는 58년 개띠생이다. 베이붐 세대와 민주화 세대를 말할 때 58년 개띠는 빠지지 않고 자주 이야기가 된다. 드라마 주인공 아버지의 나이로도 활용이 된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차지하는 상징성이 남다른 세대가 58년 개띠 다. M전무님과의 인연은 내가 S사 일차 밴더 개발팀장 이었을 때 M전무님은 대기업군에 속한 회사의 연구소장이었다. 업무 관련으로 M전무님을 자주 만나게 되면서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 당시 스티븐잡스에 의해 개발된 스마트폰은 기존 피쳐폰 핸드폰 제조방식을 백 프로 뒤집어 놓았다. 기존 플라스틱과 사출로 만들어졌던 외관타입을 심플한 디자인과 유리로 바꾸어 놓았고 소비자는 그런 바타입의 스마트폰에 열광했다. 우리는 이 핸드폰에 들어가는 필름과 기능성소재들을 개발하고 만드는 일을 했었다. 지금 역시 그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은 직군에 속해 일해오고 있다.


우리는 S사 공급망 부품업체였고 M전무님 회사는 대기업 소재를 만드는 회사였기 때문에 자주 M전무님과 그 밑의 직원들과 업무 미팅을 가졌고 소재개발 방향에 대해서 의논했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이후 내가 M전무님 회사로 이직을 하면서 더 깊고 친밀한 사이로 변해갔다.


그러 날 어느 날이었다. 강남 선릉역 근처에 있던 서울 영업소 사물실로 출퇴근을 해오던 어느 날 전무님은 12층에 사무실로 나를 불렀다. 그 당시 M전무님은 사장 진급에서 밀려나면서 퇴직자 명단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내심 왜 나를 부를까 생각하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홍 차장 너 나랑 일 좀 하나 하자"


지금 생각해 보면 M전무님이 그 당시 나에게 던졌던 그 질문은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카지노에서 주인공 최민식이 했던 대사와 같았다.


나의 인생을 바꾸게 되는 그 한마디에 난 생각해 볼게요 도 아닌 네 감사합니다 로 답변 드렸었다. 이렇듯 인생은 늘 드라마틱하다.


되돌아보면 인생의 이런 시기 즉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바뀌 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 역시 그때가 인생 전반기를 결산하는 시점이었다.


이후 시작된 M전무님은 나에게 M대표님이 되었고 그렇게 힘들었지만 더 깊게 사회를 알아가고 배워가는 출발점이 되었다.


그렇게 투자사들을 찾아 투자 설명회를 했었고 어느 날은 부산까지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먹는 밥이 정해져 있던 M대표님은 그래도 뭐 먹을래 하며 물어봐 주었다. 내가 고른 식당으로 가본 적이 손꼽히지만 그날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없었다.


그나마 대표님이 자주 먹던 된장찌개 동태찌개 집이어서 더 헤매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밥을 먹던 대표님은 갑자기 숟가락을 놓으며 당구 이야기를 하였다.


"홍 부장 투자 설명회 발표할 때까지 시간도 남는데 당구나 한게임치자 "


"네 당구요 대표님도 당구 치시나요 "

"응 조금 쳐 "

"아 "

"몇 치니 "

"저는 200 이요 "

"그래 잘 치네 "

"나도 200 이야"


그렇게 당구 구력을 이야기한 후 우리는 가까운 당구장으로 향했다.


그때 알았어야 됐다.

표정과 행동에서 묻어나는 절대 고수의 구력을 , 쉬 곁을 안주는 죽돌의 겸손을,

같은 200이라는 말에 반색했던 나의 팔랑귀를


당구장 안 가본 지가 십 년도 넘었지만 그래도 대학생 때 쳐대던 실력이 남아 있으리라 생각하고 큐대를 잡았다.


대표님은 쓱 큐대를 흘러보더니 한 자루를 빼어 잡았다. 모든 스포츠는 일단 큐사리 라고 하는 폼만 보면 그 사람의 실력을 가늠할 수가 있다.


첫판이 시작되었다. 난 온 정신을 집중해서 3개를 연속해서 쳤다. 은근히 나의 승리를 확신하는 마음도 생겨났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대표님의 큐살이는 놀랍도록 가벼웠고 어깨의 근육은 힘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어디 이것뿐인가 쵸크를 칠하는 자세는 백조처럼 우아했다.


쵸크에 당구큐대가 갈려질 때 나오는 소리는 그 사람의 전투력을 말해준다. 쵸크 소리는 외마디 비명처럼 짧고 굶게 바리톤에서 하이 옥타브로 단음절과 단음절로 비굴하지 않은 음역대로 나오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듣고서야 난 알았다.


졌다.


그 소리는 곧 이어질 대란을 말해 주는 듯했다. 대표님은 쉬지 않고 사구를 쳤다. 그것도 쓰리쿠션까지 ᆢ한방이었다.


내가 만난 고수중 아 이런 고수가 없었다.


껑충한 키에 축구 야구 농구 같은 큰 공은 싫어한다는 대표님은 작은 공 스포츠 태니스 골프 탁구 당구에 달인 이였단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난 운동 신경이 없어서 늘 고생했어 "


된장찌개를 먹으며 말하던 대표님의 밑밥을 덥석 받아먹은 나의 대가는 당구비 3만 원을 계산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날의 기억은 대표님과 다시는 당구장을 안 간 게 만든 계기가 되었고 대표님 역시 나에게 작은 공으로 된 골프나 테니스를 이야기하지 않았던 시작이 되었다.


진정한 고수란 역시 칼집에서 칼을 빼지 않고도 상대방을 쓰러뜨린다는 걸 난 그때서야 알 수 있었다.


지금도 우아한 백조처럼 부드러운 큐살이와 쵸크칠을 하던 58년 개띠 M대표님이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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