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
설날 아침 떡국을 끊이며 누나는 사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건 시댁 이야기로 시작해서 사연 많은 자기 삶의 이야기였다. 뽀얗게 울어 나는 국물 속으로 타원 모양으로 썰어진 가래떡이 쓸려 들어갔다. 손가락 한마디 크기로 썰어놓은 끔 지막 한 대파도 딸려 들어간다. 떡국이 익어가며 걸쭉한 국물이 뭉굴 뭉굴 느린 거품을 토해낸다. 그 위로 후춧가루를 아낌없이 듬뿍 뿌려준다. 후추를 아끼는 법이 없다. 가라앉은 소고기를 국자로 퍼올린다. 모든 사람이 후추를 좋아할 거라 나름의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후추가 뿌려진 떡국 냄새가 공기 속으로 퍼져 나간다. 더 끓이면 죽이나 수프 정도로 내놓아도 될 정도의 떡국 모양새가 되어 가고 있다. 고명이 올라가지 않은 담백한 떡국이 직사각형 붉은색 상위에 올려졌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떡국을 들었다. 후추 냄새가 듬뿍 담긴 떡국이었다.
" 우리 시누이 죽었어 한 두해 되었어 사람은 착한데 술을 먹으면 없던 사람이 그 몸에서 기어 나와. 곱게 먹어야 되는데 개가 돼서 짖어! 시아버지 죽었을 때도 취해서 울다가 까무러치고 모르는 사람 부둥켜안고 술 먹고 그랬어 시동생이 그 꼴 보기 싫다고 욕하고 욕도 찰지게 해 그 집 안 식구들은 다 욕을 일상 말하듯이 한다니까
시동생은 작년에 이혼했어 동서가 참고 살다가 결국 이혼을 했어"
"어머님이 동서한테 할 말 못할 말 거르지 않고 모질게 했거든 못된 시엄마지 "
"네가 해온 것도 없이 집안에서 퍼질러 노는 년이 남편이 살아주면 감사할 일이지 어디 주제넘게 이혼하자고 하는 거야 이 망할 년아 네가 맨몸으로 시집와서 지금껏 한 게 모있냐 입이 있으면 말해봐라 "
일인극 성우 대사 읊조리듯 누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들어도 믿기지가 않는 드라마 대사였다.
"어머니가 정말 그렇게 이야기했어 동서 너무 했네 괜찮아 "
"말도 마세요 형님 "
"형님이 가장 잘 아시잖아요 "
"어머님은 그렇다 쳐도 애 아빠 막말을 더는 못 참겠어요 "
시동생은 반찬이 짜다 싱겁다며 욕을 해댔고 말리는 형수한테
"저년은 그래도 싸요 형수님 저년은 욕먹어야 정신을 차려요 신경 쓰지 마세요"
막장 드라마에서나 들을 수 있는 대사들이었다. 누나는 시댁식구들을 이야기하며 감정 조절을 해나갔다.
"애들이 더 불쌍해 뭘 보고 배우겠어"
"시누이 애가 이 집 저 집 떠돌다 동서가 잠깐 맡은 적이 있었어 그때 그 아이가 그러더군"
"저 여기서 지내면 안돼요 집에 가기 싫어요"
언젠가 누나집에 들러 잠깐 봤었던 아이들이 얼굴이 생각났다.
"어머님은 지금 전라도 여수 요양원에 있어 아버님 돌아가시고 그곳으로 들어갔어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인데 아버님이 천주교 신자였거든 그나마 무료라서 다행이야 내가 이혼한 지 십삼 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전화를 해 그분은 내가 아직 그 집 며느리라고 생각하나 봐 나이 들수록 손주를 더 찾고 의지하는 것 같아"
"딱한 인생들 이야 전화를 받아도 딱히 할 말이 없어 "
"건강하시죠 어디 아픈데 없으시죠 "
"두 마디하고 나면 대화가 뚝뚝 끊겨 어색하기도 하고 할 말 없으니 끊으라고 말도 못 하고 일해야 되니 다음에 전화드리겠다고 하거든 "
"부부의 연은 돌아서면 남이지만 부자의 연은 끊으래야 쉽게 정리가 안 되겠지 "
아들은 이담에 지 아빠가 몸 못쓸 때 찾아오면 어떡할지가 걱정이야
"그야 아들 몫이겠지
피야 당기는 거고! 지금이야 메몰차고 말할 수 있어도 막상 닥치면 그리 쉽지가 않을 거야 "
"그 집 식구 중 그래도 애아빠가 사람 노릇 한 건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한때 잘 나가다 사업실패한 사람들이 노숙자가 되거나 집 나가서 안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
"인간극장 인가 그런 프로그램 보면서 들은 것 같은데 그래도 난 그 인간 이해할 수가 없어 용서가 안돼"
"지가 오빠 이름 빌려 사업한 거니까 오빠 목에 빨대 꽂고 피 빨아먹다가 지만 살겠다고 도망친 거니까 "
"내가 사주를 본 적이 있는데 남편 복 있다고 나왔어 결혼하고 50평대 쌍용아파트에서 살 때가 가장 잘 됐을 때야 고깃집 한답시고 살림 다 말아먹고 집 나가서 애들 양육비 한 번을 못 받았어!
큰애가 중학교 일 학년이었고 작은애가 초등학생 일 때니까 십삼 년이 넘었지"
"그래도 지 동생처럼 부인한테 막말은 한적 없어 어머님이 화내면 내편 들어주고 해서 어머님도 큰며느리인 나한테 함부로 못했거든 남편이 와이프를 막대하면 모든 사람이 막대하게 되는 거야 "
듣고 있던 아들은 아버지와 인연은 없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누나의 삶은 드라마 작가가 즐겨 쓰는 막장 드라마의 대본이었다.
말에 담기지 못하는 굴곡의 삶이 안타까울 뿐이다. 세상 다 산뜻하다가도 결국 살아지는 게 인생이다. 누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온 게 십삼 년 전 일이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짓집을 한다고 했을 때 그것도 형 명의로 가게를 연다고 했을 때 정확히 말하면 그전부터 나란 사람은 누나의 남편과 잘 맞는 데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위대한 문학과 소설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공자님 말씀이 진리다.
아옯 글자 안에 세상 모든 걸 담아낸 내공에 소름이 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