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어떤 보통명사도 사람과 결부 되면 고유명사가 됩니다." 정혜윤작가 뜻밖의 좋은일
사돈어른의 무짠지
올해도 사돈 어른은 무짠지를 보내 주셨다.
해마다 거르지 않고 챙겨 주시는 정성이 여간 감사한게 아니다. 자식 챙기듯 하나라도 주시려고 하는 어르신 마음이 투명한 유리그릇같다. 사돈어른은 투박한 질그릇처럼 많은 사람을 담아낸다.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어르신은 여전히 건강 하시다. 주말마다 교회와 경로당 다니기를 거르는 적이 없다고 한다.
자주 뵙지는 않치만 처남댁과 식사할때마다 안부를 묻고 최근 찍은 사진도 본 덕분인지 낯설음이 없다. 어르신이 살아온 시간은 드라마나 소설에 나올법한 굴곡진 세월 이였다. 그 시간을 풍상에 찢겨진 흔치 않은 일상을 온몸으로 견디며 자식들을 키워냈다. 어르신이 보내준 무짠지는 크기가 아이 팔뚝정도 되보였고 소금에 적당히 익어 노란 빛깔을 띠고 있었다. 소금에 절인 무짠지는 소금의 농도가 적당히 베어들어 가기 시작하면 무가 지니고 있는 수분은 더이상 빠져나가지도 더이상 들어 오지도 않은 절묘한 식감을 간직한 맛있는 음식으로 탈바꿈을 한다. 단순하고 소박한 반찬이기에 더 맛있는지 모른다. 밥맛이 없을때도 짠지와 김치를 꺼내 놓으면 밥한끼 뚝딱 해치운다. 사돈어른의 음식 솜씨는 반찬가게 사장님들이 돈내고 배워야 할정도로 그 맛이 깊고 감칠난다. 가끔 제철로 버무리는 얼가리 김치나 총각김치 파김치 김장김치 등을 맛보라며 보내 주시는데 그 맛은 단연 으뜸이다. 입맛을 돋으는 맛있는 반찬들은 사는맛을 더하게 해준다. 냉장고에 쟁겨 놓으면 냉장고 안에서 후광이 비친다. 잘익은 김치 내음 만으로 이미 봄철 봄물 터지듯 침샘은 솟구친다. 사돈어른의 김치 내공은 가히 명인 수준에 가깝다. 김치 사업에 출사표를 던져보고 싶은 유혹이 들정도다.
무짠지는 아이들도 좋아하는 반찬이다. 아빠가 맛있다며 먹는 반찬들을 아이들은 호기심에 따라 먹다가 어느순간 그 깊은맛을 알아간다. 반찬이나 음식들도 지방마다 그 특색을 달리하고 대표되는 향토 음식도 제각각 이다보니 경상도가 고향인 아내는 통 짠지나 오이지를 즐겨 하지 않는다. 식탁위에 올려 놓아도 손이 가지 않는다. 짠지나 오이지를 냉수 들이키듯 마셔대는 식습관을 헤아리지 못한다. 처가집 식구들 모두 짠지나 오이지를 찾지 않는다. 짠지나 오이지가 경기도 반찬 이란걸 새삼 느끼게 된다. 이작은 땅에서 조차 반찬의 명암이 이토록 차이가 많이 나는걸 보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콜라나 햄버거 라면의 대중성은 이유가 있다.
사돈어른은 젊어서 남편과 사별 한후 홀로 다섯 자식을 키워 냈다.
그중 처남댁은 막내딸로 언니와 오빠들과 나이차이가 있었고 사돈어른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결혼식이나 돌잔치때 보았던 다섯남매는 혈육임을 알게 해주는 표식이 붙어 있는듯 눈매와 인상이 다들 닮아 있었다. 선한눈매 둥근콧날 다부진 얼굴선 다섯 남매 가 나눠 가진것들은 그대로 사돈어른의 얼굴에서도 보여졌다. 혈육임을 알게 해주는 아름다운 표식이다.
때가 되면 어르신이 보내주는 무짠지가 그리워 질것이다. 음식만큼 사람을 길들이는게 또 있을까 투박하고 정겨운 감정이 무짠지에 녹아든다.
사돈어른이 보내주신 무짠지는 마트에서 흔이 보게 되는 무짠지와 그 모양은 다르지 않치만 내게는 특별하다. 내겐 흔하디 흔한 무짠지가 귀하디 귀한 보배가 되었다. 흔한 무짠지가 내겐 The 더가 붙어 고유명사가 되었다. 사돈어른의 사랑이 그안에 녹아 있다. 사연이 듬뿍 담긴 무짠지다. 맛이 좋은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어르신의 건강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 욕심이겠지만 어르신이 오랫동안 무짠지를 보내주었으면 좋겠다.
어른신이 오래동안 건강하시기를 기도 드린다.
어르신이 보내준 잘익은 무짠지는 그렇게 일주일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 주었다.
구순을 바라보는 사돈어른의 모든 풍경이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처럼 행복한 순간만으로 채워 질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 드린다. 만약 우리에게 신의 선물이 있다면 그런 모습일것이다.
"이 삶에서 한여행자가 나를 여행지의 풍경처럼 바라볼때 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를 맞이하고 싶다. 나 또한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의 풍경을 바라보듯 그를 바라보고 싶다."
호시노미치오 알레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