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는 기억을 건드려 추억을 소환하는 힘이 있다. 그 마디마디에는 웃음과 울음도 섞여있다." 수필과비평 7월호 장미숙 수필가가 감동한 이한편의 수필편 그리움에는 냄새가 있다 P59
냄새는 그런 힘이 있다. 잊고 있다가도 불쑥 밀치고 들어 온다. 마치 주인처럼 때론 손님처럼 빈집 문을 열고 들어오듯 텅빈 공간속을 채운다. 그 감촉이 그냥 좋다. 햇볕에 잘 말려진 빨래 냄새를 맡았을때, 차곡차곡 개여진 풀먹인 홑이불 속으로 들어갈때, 몸으로 전해지는 아른한 서늘함을 느낄때, 침묵속 그곳에 어릴적 이발소 냄새가 있다.
이발소 냄새
누구에게나 또렷한 양각으로 남아있는 기억들이 있다. 좀 처럼 지워지지 않는 희미해지지 않는것들이 사람마다 몇가지 씩은 있다. 그사람의 나이대에 맞는 먹거리 일수도 있고 살아온 지역에서나 볼수 있는 토속문화 일수도 있다. 혹은 트라우마 같은 큰 사건들일수도 있고 때론 아주 작은 일상 일수도 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이러한 기억은 어느장소, 어느시간 우리도 모르는 침묵속에 갇혀 있다가 낯선곳에서 불혀듯 마주치게 된다. 숙주 속에 갇혀 있는 기억은 순식간에 우리를 그 시간과 장소로 데려다 놓는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어졌지만 어릴적 이발소는 명절때나 신학기때만 갈수 있었던 곳이였다. 동네에 거의 한두 군데 그것도 어느정도 사람들이 모여살았던 읍네 구석이나 학교옆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서 자주 들를수도 없었다.
그때는 이발 하는것도 큰 사치였다. 아버지의 서툰 가위질에 까만 머리통에 구멍이 나거나 따가워서 들썩이다 보면 가위날에 귓볼이 상처나기 일쑤였다. 언젠가는 귓가 맨살이 크게 베어나가서 하얀천으로 귀를 동여맨적이 있는데 지금와 생각하면 일찍이 고흐의 자화상이 베어 있었던듯 했다.
나에게 남아있는 많치 않은 기억속에는 이발소 냄새가 있다. 어느날 아이들 머리를 하러 같이 갔던 미장원에서 그 오래된 냄새와 하얀 이발소 아저씨의 가운이 생각이 났다.
아버지를 따라 다니던 이발소의 냄새는 기억속에 또렷이 살아있다. 이발소 옆에 붙어 있던 불빛이 번쩍번쩍 하던 네온사인은 지금도 나를 그 장소로 데려다 놓는다.
드드륵 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가면 내키보다 커보였던 커다란 의자가 세개 놓여 있었고 하얀 가운을 입고 수건을 어깨에 두른 이발사 아저씨가 나를 쳐다보았다. 이발소 한쪽으론 동네 목욕탕을 가서야 볼수 있었던 하얀 세면대가 놓여 있었고 그 주위에 받아놓은 물받이 통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커다란 거울속에는 또 다른 이발소가 계속해서 만들어져 갔다. 이발사 아저씨는 숱돌을 문질러 낫을 갈듯 긴 가죽끈을 잡아당겨 면도칼과 가위를 문질렀다. 서걱 거리는 소리가 나쁘지 않았다. 아저씨는 준비가 끝난듯 기다란 빨래판 모양의 나무받 침대를 의자에 올려놓았다.
그 위로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앉았다. 아저씨는 목주위로 헝겊을 둘러 빨래집게로 집어 놓은뒤 머리카락이 세어 들어가지는 않는지 손가락을 넣어보고 잡아 당겼다.
퀙퀙 거리는 내 등짝을 가볍게 두드리며 바리깡을 들어 뒷통수에서 앞머리까지 거침없이 길을 만들었다. 서걱거리는 가위질 소리에 코흘리개 소년은 서서히 잠이 들었고 머리통은 연실 앞뒤로 떨어지곤 했다. 아저씨는 떨어지는 내머리를 손으로 치기도 하고 말도 붙히고 언성도 높여가며 머리카락을 잘라 나갔다. 지금도 귓가옆으로 서걱거리는 가위질 소리는 엄마의 자장가나 할머니의 약손처럼 나를 고히 잠들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스포츠머리 까까머리로 밥톨머리가 되어서 의자를 내려오면 이발사 아저씨는 어린 나를 기다란 키큰 의자에 걸터 앉혀 머리를 감겨 주었다. 머리를 감겨주었던 마법의 손이 한번더 나를 기분좋게 만들어 주었다. 아저씨는 빨래비누로 거품을 내어 리듬감을 더해 다섯손가락으로 머리통을 감싸쥐고 조물락 조물락 거린다. 은은히 번져 오던 비누향이 좋았다. 오래된 노란 세수비누는 그당시 누구 집에나 가도 볼수 있었던 똑같은 향을 가진것 이였는데도 이발소에서는 그 가진향이 더해 지는것 같았다.
탁탁탁탁
아저씨는 얇은 수건으로 까만 머리통을 앞뒤로스쳐가며 머리카락을 말려 주었다.
이발사 아저씨가 말려주던 머리카락과 얇은 수건이 스쳐가며 만들어 내던 거친 소리와 깨끗해져 가는 피부 감촉은 양각으로 남아 풍화되지 않은체 내기억속에 살아있다.
그곳에 남아 있는 냄새와 감촉은 앞으로도 가끔 나를 찾아올것이다. 어느새 아이들의 파마머리가 예쁘게 잘 나왔다. 아이들은 스포츠머리나 까까머리를 모를것이다. 아이들의 기억속에서도 오랫동안 남아있을 기억이 있을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아빠와 함께 갔던 미장원이 그중 하나의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주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