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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가 경기 시작 5분 동안가만히 있어보면 생기는 일

경기 지배자

by 둥이

어느 날 유튜브에 메시 관련 영상이 올라왔다.

유튜브라는 알고리즘은 우연히 한 번만 클릭을 하더라도 친절하게 잊지 않고 관련 영상을 올려준다. 축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메시의 축구 경기는 가끔 보게 된다.


"메시는 경기 시작 후 5분에서 10분간 경기를 뛰지 않는다. 경기장 끝자락에 서서 마치 감독처럼 상대방의 수비 팬턴과 공격 패턴을 훑어보고 분석한다. 분석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메시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메시의 마법은 일어난다."


바르셀로나 감독이었던 펨과르디올라는 메시의 이런 루틴에 대해서 이런 말을 남겼다.


"경기시작 후 5분에서 10분 사이에 상대팀 패턴이 메시의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지는 순간 경기는 끝났다. 신의 경지에 오른 선수가 아닌 그냥 축구의 신이었다."


서두름도 조급함도 상대방을 이겨야 되겠다는 압박감도 없이 경기장을 완벽하게 장악해 나간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모든 악단의 미세한 한음 한음을 읽어내 적절하게 화음과 선율로 이끌어 낸다.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휘몰아칠 땐 태풍처럼 빠르게, 힘을 모아야 할 때는 거북이처럼 느리게 바장조의 편안한 리듬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메시는 우리는 신이라 부르곤 한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메시의 경기를 볼 때면 저 작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한 편의 드라마에 푹 빠지게 된다.


유튜브를 보고 난 후 생각해 보았다. 만약 평범한 선수가 경기 시작 후 감독처럼 경기장 끝에서 경기를 바라본다면 그 선수도 메시처럼 될 수가 있을까.


쌍둥이 아들 주완이는 무슨 일이든 미리 하는 일이 없다. 약속된 시간 안에만 한다면 큰 소리 내는 일도 없으련만 거의 모든 일을 목전에 두고서야 하게 된다. 게으른 습관이 몸에 베일까 봐 우리는 큰소리로 야단을 쳐보기도 하고 화를 내보기도 하고 어느 날은 포기하기도 하고 그렇게 씨름을 하고 있다.


이런 주완이도 유독 한 가지만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있다.


지난주 같은 단지 옆동으로 이사를 했다. 옆동으로 이사 가는 게 아쉬웠던지 25층 친구 어머님이 주완 지완에게 드론 선물을 하나씩 사주셨다. 우리도 한번 사주지 않던 전자제품을 선물로 받았으니,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조립을 하면서 지완이는 계속해서 주완이에게 물어보았다.

한참 동안 조립하지 않고 있던 주완이는 설명서만 열심히 읽고 있었다. 사용설명서 읽듯이 책을 읽는다면 딱 좋으련만, 사용설명서를 주의 깊게 독파하는 주완이를 볼 때마다 매번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십여분이 지나고 사용설명서를 내려놓았다. 그 순간 주완이는 뚝딱뚝딱 조립하기 시작했다. 거의 "순삭" 이였다.


깔끔하고 빠르게 군더더기 없이 완벽하게 서두름 없이 바장조의 편안한 리듬으로 조립을 마무리 한 주완이는 유유히 드론을 날렸다.


드론의 모든 비행을 보여주는 듯 공중 회전 하기, 제자리 돌기, 드론 마술쇼를 보여 주면서 시크하게 웃는다. 마치 경기를 지배하는 메시처럼


"주완아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

"사용설명서 나와 있어 읽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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