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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입 맛

단골 국숫집 이야기

by 둥이

어른의 입 맛


수리산 입구에 자주 가는 오래된 국숫집이 있다. 메뉴도 단출해 국수 몇 종류와 김밥이 전부이지만 국숫집을 찾는 단골손님들이 많다. 가게 안은 작고 협소해서 테이블 네 개 정도로 꽉 차있고 가게 밖으로 천막을 쳐놓고 동그란 테이블을 몇 개 더 붙여 놓았다. 몇 개 안 되는 테이블이지만 끼니때만 되면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지금 같이 한 계절이 가고 또 다른 계절이 오고 있는 산색이 변해가는 시기에는 산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다.


도서관 가는 길, 수리산 입구에 있는 국숫집은 우리의 단골집이다. 나는 아이들과 자주 도서관을 들른다. 책을 보다가 아이들이 지루해질 때면 수리산 계곡으로 들어가 가재를 잡는다. 이것도 따분해지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수리산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다. 뻘건 황토 진흙이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느낌이 간지럽기도 하고 발바닥에 묻어나는 진흙의 감촉이 아이들의 촉수를 마냥 건드려 놓아 헤어 나오지를 못한다. 그러다가 산속으로 들어가 밤나무 밑에서 밤을 줍는다. 딱 그때쯤 되면 아이들은 밥 먹으러 가자며 배꼬리를 쥐어 잡는다.

아이들을 앞세우고 아내와 찾은 국숫집의 풍경은 언제 들려도 맛있고 정겹다. 갓 우려낸 진한 멸치 육수 냄새가 가게 안을 꽉 채우고 있다. 카운터 앞에서 한 종류의 김밥을 열심히 말고 있는 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를 해주신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풀풀 풍겨 나는 해맑은 인사를 받으면 고슬고슬한 김밥 한 줄 공짜로 먹은 듯 배가 불러온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육수 절반이 얼음으로 뒤덮인 빨간 열무국수를 먹었는데 비가 온 뒤 쌀쌀해진 날씨 때문인지 식성도 바뀌었다. 온도에 따라 사람의 입맛은 계절 변하듯 쉽게 변한다. 줏대 없이 말이다.

우리는 국숫집에서 메뉴를 고를 때마다 고민을 한다. 둘 다 먹고 싶은 식탐 때문에 비교적 난 항상 열무국수를 시키고 아내는 비빔국수를 시킨다. 아이들은 물만두와 김밥두줄 작은 잔치국수 한 그릇까지ᆢ 이렇게 먹는 한끼 식사는 언제나 맛있다. 행복을 부르는 조합이다. 먹고나면 마음은 흐뭇해지고 이유없이 든든해진다. 맛있는 한끼 식사가 만들어 주는 마법이다.


아이들은 늘 자기들도 열무국수를 시켜 달라고 보채지만 아내의 서슬 퍼런 눈빛 앞에서 단념을 한다.


"주완아 이건 너희들이 싫어하는 맛이야

어른들이 좋아하는 맛이야 어른의 입맛이야

맵고 차갑고 그래 어른의 맛이야"

"알아 나도 그 맛 나도 어른의 맛이양"


아이들을 달래 놓고 우리는 국숫집을 찾아드는 사람들은 보면서 열무국수와 비빔국수를 후루루 후루루 먹기 시작했다. 달고 맛있는 열무와 하얀 국수발을 한 젓가락 감아올려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곤 빨간 열무국수를 후루룩 마시고 나면 뱃속이 얼얼해진다.


그때 반듯하게 옷을 챙겨 입고 산책을 다녀오는 금슬 좋은 노부부가 우리 앞에 앉았다.

인근 단지에 사시는 주민처럼 보였다. 작은 손수건과 핸드폰만 들고 있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과 지팡이를 짚고 있는 할아버지의 손이 그렇게 말해 주는 듯했다. 바로 옆 인근 아파트에 산다고..


"차가운 거 드실라요 뜨신 걸로 드실라요 " 말을 해야 알지 몰로 드실라요 "

"이게 따스한 게 드시기 편할 건데

차가운 건 못 먹어 애들이나 먹는 거야 배 아파 따스한 거 먹어 "


빨간 옷에 하얀 모자를 쓰신 할머니는 가게 안이 다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할아버지께 물어보신다. 귀가 안 좋으신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눈동자만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에이 그냥 하나씩 시킬게요 나눠먹지 "


김밥을 말다 말고 주문을 받으시는 아주머니의 중재로 열무국수와 잔치국수가 두 분 앞에 놓였다.


어른들의 입맛은 차가운 것과 따스한 것을 골고루 나눠 드시고 계셨다.


배불리 먹고 계산을 하면서 앞 테이블을 슬 척 쳐다보며 인사를 하였다. 할머니는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눈인사로 웃어 주셨다.


국숫집을 나와 집으로 오면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어른들의 입맛ᆢ"


"차가운 거 드실라요 뜨신 거 드실라요 차가운 건 못 먹어 애들이 나 먹는 거야"


할머니에게 어른의 입 맛이란 뜨거운 국물에 멸치 국수였다. 내가 시킨 어른의 입 맛과는 다른 ᆢ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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