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감자탕 끓이는 날

장모님의 감자탕

by 둥이

장모님의 감자탕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 장모님은 감자탕을 끓이신다. 친지들이 많이 드나드는 명절날이나 아들딸 손주들이 찾아오는 날에도 자박자박하고 얼큰한 감자탕을 미리 끓어 놓으셨다가 상에 올려놓는다. 딸 집에 간다거나 며느리집을 갈 때에도 끓여 놓은 감자탕을 금색 보자기에 보물단지 싸듯 감싸 안고 찾아오신다.


일단 어머님의 감자탕은 푸짐하다.

냄비 가득 우거지와 반으로 잘라 넣은 굵은 햇감자가 넘쳐 난다. 그야말로 양은 거들뿐 본질은 맛에 있다. 밑반찬으론 간을 안 하고 살짝 익혀서 내놓은 초록색 브루클린과 미끄덩한 검은빛의 미역 그리고 보석과 양파 모두 자연식 그대로 싱싱함을 잃지 않고 식탁 위에 올려진다. 그 옆으론 간장과 초장을 종지그릇에 담아 내놓는 게 전부다. 두부 역시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얇게 썰어 접시에 올려놓는다. 간이 없는 반찬만으론 심심할까 봐 간장과 식초에 절인 다양한 장아찌들도 같이 식탁에 올려놓으면 짠맛과 싱거운 맛의 조화가 젓가락질 뜨는 사람의 손길 따라 입과 식도안에서 비벼줘 간을 맞추어간다.

사 먹는 감자탕은 첫맛은 맛있어도 조미료 맛이 강해 먹고 나면 물러지기 십상인데 어머님이 해주신 감자탕은 심심하면서도 순한 맛에 물리지가 않는다. 조금 비는 맛은 김치를 엊저 먹다 보면 궁합이 잘 맞아 한 그릇이 '순삭'이다. 짜거나 맵지 않은 무언가 비어 있는 듯한 순한 감자탕이라 그런지 두어 그릇 먹어도 속은 편안했다.


한겨울 햇볕에 잘 내다 말린 우거지와 재래시장에서 직접 골라 살이 많이 붙어있는 돼지뼈가 한솥 가득히 오랜 시간 동안 고아진 감자탕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된다.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도 아닌 감자탕은 집에서 끓여 먹기엔 쉽지 않은 음식이다. 재료준비에서부터 조리시간까지 품이 많이 드는 음식이다. 감자탕은 술안주로 많이 곁들여 먹기도 하고 푸짐한 양해 비해 가격도 착하다 보니 팀원들과 회식할 때도 자주 먹게 되는 음식이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 같은 음식이어서 부담이 없다. 푸짐하게 대접하고 생색내기 에도 좋은 일석이조의 가성비가 좋은 음식이다.


"날씨 좋은데 내가 살게 "


인심 좋은 감자탕집에서 회식은 연비가 좋아 걱정이 없다. 대여섯 명 모여 앉아 술 한잔씩 나눠 먹으며 배불리 먹기로는 감자탕 만하게 없다.


어머님도 나 같은 마음 이었을까!

이유야 어쨌든 배불리 먹고 이야기 나누다 보면 없던 정도 들게 만드는 것이 함께 먹는 밥이 가진 마법이다.


어머니가 끓여주신 감자탕은 오랜 시간이 지나 생각하면 하나의 풍경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지워지지 않고 오랜 세월 버텨 내는 음식들에는 늘 알 수 없는 위로가 담겨 있다.


요즘 들어 특별한 일 없는 그냥 날이 좋은 날에도 어머님은 솥단지를 꺼내와 감자탕을 끓이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 날에 어머님은 딸과 며느리에게 전화를 건다.


"바쁜냐 감자탕 끓여 놨다 가져다 먹어라 "


음식만큼 정을 나누기에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작은 행복들이 한들한들 모여 나부낀다.

따뜻한 가을볕에 보라색 라일락버베나가 한들한들 나부끼듯이..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친한 C형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