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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C형 이야기

형 이야기

by 둥이

친한 C 형 이야기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는 친한 C 형이 있다. 사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는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과 비슷한 공간에서 생활해 왔다. 그건 학창생활을 떠나 사회생활로 이어지는 근 사십 년의 인연을 뒤돌아 보아도 형과 나는 가까운 거리에서 유사업종에 근무를 해오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형을 처음 본 것은 중학교 기숙사에서였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미션스쿨이었고 부모님의 종교적 영향으로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 낯선 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됐다.

처음 도착한 기숙사는 낡은 진흙벽이 무너질 듯이 위태로워 보였다. 하얀 페인트칠이 벗겨진 외벽은 군데군데 벌건 흙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몇 군데는 거미집처럼 허연줄들이 얽혀 있었고 힘없는 기숙사 벽들은 토사가루를 바닥에 쌓아놓고 있었다.

한옥집처럼 디귿자로 생긴 기숙사는 빙 둘러 스무 개의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군대 막사처럼 생긴 기숙사는 창문들이 양옆으로 크게 나 있어서 한겨울에도 한댓바람이 방으로 밀치고 들어왔다. 매일 저녁 아홉 시 삼십 분에 군대처럼 점호시간이 있었다. 아이들 인원 검사와 그날의 점검할 사항을 말해주는 시간이었다. 가죽 장갑에 몽둥이를 들고 서있는 사감 선생님은 젊은 목사님 이였는데 훗날 결혼식 주례를 봐주셨다. 우리는 그 작은방에 다서여섯명씩 끼여서 잠을 자고 생활했다. 가장 예민한 촉수를 가질 나이였던 우리는 그렇게 기숙사라는 단체생활 속에서 조금씩 길들여져 갔다.


그때 형은 나보다 한 살 많은 열다섯 살 나는 한 살 어린 열네 살이었다. 모든 게 낯설고 무섭기만 했던 그 시절 난 거의 육 개월 동안을 집이 그립고 엄마가 보고 싶어 울면서 지냈다.


여섯 시면 울어 대던 기상나팔소리,

긴 줄을 서서 밥을 먹던 기숙사 식당, 식판 위에 놓였던 유난히 맛이 없었던 건강식 반찬들,

그땐 아무리 먹어도, 배불리 먹어도, 맛이 없었다.

우리는 잠이 덜 깬 채 군인처럼 노래를 부르며 아침 굽 오를 했었고 가끔씩 불암산 등반을 하기도 했었다.

세탁기가 없어서 손빨래를 해야 했던 우리는 열네 살 소년에게 가혹한 형벌과도 같았다. 양말 빨래 속옷빨래는 아무리 해도 줄어들지 않았다. 자기 허물을 자기가 빨았어야 했으니까 늘 입었던 것을 오래 입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냄새난다고 고학년 형들이 때리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 학년 형으로 , 한 학년 동생으로 지내게 되었다.

온 동네가 배가 고프면 배고픈 줄 모른다는 얘기가 있듯이 우리 기저 속에 보내왔던 같은 기억은 늘 우리를 동질감으로 칭칭 옮겨 매주 었다. 그 매듭은 쉽게 풀어지지 않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곤 했다.


형은 그 당시 좀 뚱뚱한 편에 속했다. 키도 컸었고 덩치도 있는 편인 반면에 난 그때나 지금이나 좀 작고 왜소한 편이었다. 고등학교를 들어서며 난 친한 친구와 하숙을 하겠다며 기숙사를 나와었고 그때부터 나의 기나긴 하숙생활과 자취생활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같은 학교 화학과를 들어갔다. 특출 나게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 나는 점수에 맞는 학과를 선택을 했어야 했었고 그건 형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우리의 선택은 평생을 따라다닐 동문 콤플랙스와 학벌콤플렉스를 달고 다녀야만 했던 중요한 선택이 되었다. 그래도 사회에서 선택받고 살아남기 위해 남들보다 유일하게 잘할 수 있었던 근면 성실함으로 버텨 갔다.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더 깊은 유유상종의 정을 만들어 나갔다. 중견기업에 취직을 해서 살아남기 위해 버텨 나가던 그 시절에 형과 나는 가끔 혹은 자주 만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곤 했었다.


형 역시 외국계회사에서 일하면서 스카이를 졸업한 학벌로 똘똘 뭉친 카르텔에 밀려나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잘 아는 법, 삼류대 학벌로 버티던 우리는 전우애가 깊어졌다. 서로의 열심과 진심을 알았기에 만나면 배터리 충전된 듯 힘이 났었다.


그렇게 지난던 어느 날 C형은 나에게 모하나 같이 해보자며 제안을 했었다. 형의 제안이기도 했거니와 그 당시 나에겐 고마운 제안이기도 해서 우리는 바로 일을 만들어 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의 반전은 늘 위기 속에 숨어 있는 법, 그때의 선택은 또 다른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길게 잡아당긴 활시위에서 발사된 활의 궤적은 잡아당긴 힘과 활시위의 각도에 따라 결코 벗어나지 않은 채 과녁으로 향한다.

우리의 인생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늙어가며 알아간다. 삶을 대하는 태도와 인생관은 그 사람의 인생궤도를 만들어 준다. 내가 스케치한 나의 시간은 버려지지 않은 채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평생을 알아온 C형

평생을 가까운 거리에서 정을 나눈 형은 어쩌면 나에겐 삶의 궤적을 같이 하는 사람이다. 숨길 게 없어서 빈마음 빈손으로 만나도 편한 사람 평생을 알아왔던 사람 지금도 앞으로도 보아야 할 사람이기에 나에겐 귀인이다.


요즘 들어 가끔 C형은 아프다며 전화를 한다. 어지럽고 우울하다며 짜증도 낸다. 쉽사리 울화통을 터트리기도 한다.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기도 하지만 난 그런 C형이 좋다. 서로에게 길들여진 편한 감정이다. 이런 깊이의 관계는 다시 만들래야 만들 수도 없다.

잘 익어 떨어질 때를 아는 과일처럼 우리는 달콤한 향기를 품어내고 있다.


전화 끝말로 늘 아프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슬프지 않은 건 친한 C형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프지 마소 ~ C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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