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시험의 기억
전화를 받은 곳은 아현동 도서관 열람실이었다. 도서관 매점에서 점심으로 컵라면 하나를 사 먹고 식후 불로초를 피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가는 중에 한통에 전화가 걸려왔다. 벽돌폰처럼 생긴 현대전자 걸리버 핸드폰으로 걸려온 전화는 서류전형 합격소식과 면접시험을 보러 오라는 묵직한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목욕탕에서 울리는 바리톤 목소리를 가진 남자분 이셨다. 대부분 이런 업무는 여직원이 전화를 주거나 문자로 소식을 전해 주었는데 목소리만 들어서는 과장급은 되어 보였다. 면접시험 보러 오라는 그 기쁜 소식을 그것도 점심식사 시간을 틈타 불쑥 전화가 왔다는 사실에 약간은 이상한 회사라 생각도 들었지만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때는 IMF가 훈코 지나간 다음 해였고 많은 취준생들이 취업을 못해 힘들어하던 그런 때였다.
사월 이었는데도 면접을 보러 가는 그날은 많이 쌀쌀했었다. 막 피기 시작한 벚꽃들이 안양역 앞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었다. 목소리 굶은 아저씨의 안 내데로 안양역에서 버스를 타고 박달동에서 내렸다. 그때부터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멀리서도 보일만큼 커다란 녹색 건물들이 회사의 규모를 말해주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은 회색 양복과 닦지 않은 구두 앞코가 벌써 나를 주눅 들게 하고 있었다. 반쯤은 전의를 상실한 듯했다. 난 따스하기만 한 사월 햇볕을 쬐며 정문에서 알려준 이 단지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면접 장소가 있는 사무실문을 열었다. 검은색 양복을 입은 면접자가 두 분 앉아 있었고 한분은 짙은 감색 양복이었다. 내가 들어가 앉으니 색상이 검은색 두 명 짙은 감색 그리고 회색 양복 이렇게 네 명이 되었다.
다들 긴장한 얼굴로 중얼중얼 영어소개로 문장을 외우는 사람도 있었고 허공에 대고 눈을 감은체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십여분 지났을까
그때 전화로 면접시험 소식을 전해주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면접방법과 면접관 시간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면접은 그룹면접 면접관은 다섯 명이었다.
십여분이 더 지날 때쯤 면접관들이 들어왔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벌떡 일어섰다.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세 번째 순서였다. 이 세 번째라는 순서는 압박감이 서서히 조여 오는 자리여서 심장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여러 번의 면접시험은 자기소개라는 예상문제는 숙련된 솜씨로 끝낼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번 질문에서부터 꼬여가기 시작했다. 다른 두 명에게 질문이 집중된 반면 나는 두어 번 아니 세 번 정도 질문을 받았었고 그나마도 버벅 대며 제대로 답변도 못하였다. 한 시간의 면접시간이 끝나고 난 떨어졌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하얀 봉투에 당겨진 면접비를 받아 들고 면접실을 나왔다. 회사 주변은 온통 벚꽃과 목련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하늘은 푸르렀고 바람은 따뜻했다. 따뜻한 봄날이었다. 세상 모든 것은 아름답게 피어오르고 이렇게 좋기만 한데 나는 더 이상 갈 때도 없구나 절망스러운 마음을 부여잡고 안양역까지 걸어갔다.
면접 후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이번에도 안 됐구나 포기하고 있던 어느 날에 벽돌 크기만 했던 걸리버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홍기송 씨 여기 면접본 ☆☆ 회사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합격입니다. 언제까지 필요서류 제출해 주세요 "
돌이켜 보면 투박하고 어색했던 그날의 나를 남들보다 후하게 점수를 쳐주었던 분은 가운데 앉아 계셨던 나에게 두 번 질문을 해주셨던 영업상무님 이셨다.
훗날 회사를 다니며 알게 된 사실은
좀 부족해도 잘 고쳐 쓰면 될 것 같았다며 버벅거린 게 오히려 점수를 얻었다고 상무님이 이야기해 주었다.
며칠 후 나의 서울 십육 년 자취생활은 그렇게 끝나게 되었다.
나의 첫 직장을 열개해 준 그날의 면접시험은 내리 열두 번을 떨어지고 나서야 합격할 수 있었던
열려라 참깨 알라딘의 요술 램프나 다름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모든 인생은 살아 있는 드라마 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는 시청률 높은 드라마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