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자전거

자전거에 대한 기억

by 둥이

아버지의 자전거 이야기


아버지의 자전거는 우유통 네 개를 싣고 신작로까지 실어 나를 만큼 크고 튼튼했다.

가볍고 작게 만들어져 심심할 때 바람을 맞으며 동네 한 바퀴 달리는 그런 자전거가 아니었다. 무거운 무쇠로 이어 붙여 안장은 높기만 했고 짐을 실어야 되다 보니 뒷자리는 나무 합판을 이어 붙여 최대한 넓게 만들어진 그런 짐수레와 비슷한 일을 하는 소중한 기계였다. 그 시절 젊은 아버지에겐 포르셰 자동차 보다 소중한 물건이었다.


아버지는 짐자전거를 타고 매일 새벽녂에 우유통을 실어 날랐다. 은색스텐으로 만들어진 우유통 위엔 홍원 목장이라고 푸른색 글씨가 페인트칠 돼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논일로 바쁜 날에는 어린 우리들이 빈 우유통을 들고 와야 했었다. 아버지의 자전거는 아버지의 여러 쓸모 있는 일들을 해주었다. 가끔 소먹일 풀을 베어 나르기도 했었고 밭작물을 실어 나르기도 했었고 아버지를 태우고 교회를 다녀오기도 했었고 무엇보다 우리를 태워 주기도 했었다.


아버지의 짐자전거는 너무나 거대해서 우리 힘으로는 세울 수도 없었다. 자칫 잘못해서 그 무거운 자전거가 쓰러지기 라도 하는 날에는 크게 다칠게 뻔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그 무거운 자전거에 많은 것들을 싣고 다녔고 가끔 우리들도 태워 주셨다. 기억 끝자락에 덜컥 덜컥 굴러가던 자전거 뒷자리에 아버지 등판을 바라보며 허리춤을 꽉 움켜잡은 내가 기억이 난다.

울고 있을 때도 있었고 환하게 웃고 있을 때도 있었다. 아버지가 우유통을 싣고 자전거에 올라탈 때마다 자전거가 뒤집혀 지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꽉 찬 우유통의 무게는 상당히 무거웠다. 핸들을 무게로 눌러주지 않으면 실을 수가 없었다. 마땅한 수레가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짐자전거가 믿음직 스러웠던 이유도 있을 듯했다.


그 자전거를 처음 타본 건 초등학교를 들어가서였다. 형은 그 자전거를 한쪽 다리만 걸친 채로 달리면서 우아하게 안장에 올라탔다. 백조의 호수처럼 안단테의 빠르기로 너무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은 안정된 정박자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그때 형은 열한 살 나는 여덟 살이었다.

나는 형한테 자전거를 붙잡아 달라고 졸랐다. 다리가 닿지 않았지만 옆으로 엉덩이를 뺀 체

다리만 집어넣고 탈 수가 있었다.


그 거대한 짐자전거가 어느 날 그렇게 커 보이지 않게 된 건 그렇게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였던 것 같다.


하얀 흙먼지를 뒤집어써가며 마을에서 제일 넓은 마당이 있었던 선호네 집 앞에서 난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고 무릎이 까져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자전거 타는 연습을 했다.


어둑어둑 해 질 녘이 되자 이게 마지막이야 한 번만 잡아 준다고 형은 소리쳤다.


흙먼지를 날리며 난 자전거 안장에 올라탔고 자전거는 동그란 마당을 가로질러 마을 어귀 신작로 방향으로 핸들이 돌아갔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고 있는 자전거에 몸을 의지한 체 오직 쓰러지지 않는데만 집중했었다.


길은 좁고 양옆으론 논과 밭이 이어져 있었다. 자전거 페달을 밟았을 때 흙길 위 자갈들을 밀치고 굴러가는 타이어 소리와 자전거 체인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와 목덜미를 식혀주던 시원한 바람과 어둑어둑 해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던 마을어귀 키 큰 미루나무과 냇가를 흐르는 물 흐르는 소리와 흙먼지와 땀방울 무릎엔 빨간딱지ᆢ 자전거에 올라타던 마치 스티븐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ET의 한 장면처럼 그날의 기억들은 지워지지 않는 행복한 기억이다.


아버지의 짐자전거는 그렇게 몇 년 후 제 명을 다하고 호시탐탐 늙은 자전거를 노렸던 엿장수 품으로 팔려 나갔다.


무쇠로 만든 무거운 자전거는 달고 맛있는 엿과 뻥튀기 그리고 몇 푼의 돈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나갔다.


아마도 아버지의 너무 고된 일들이 그의 명을 재촉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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