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만난 사람들

기억에 남는 만남

by 둥이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


아내의 병원 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예약시간은 오후 3시 가을비가 많이 내리는 화요일 우리는 조금 일찍 병원에 도착했다.

아내는 평소에도 자기 관리에 철저한 편이라 맵고 짠 음식과 국을 되도록 멀리했다. 결혼 후 십 년 넘게 수영으로 꾸준히 유산소 운동을 해서 체지방율도 좋았고 큰 병치레 없이 건강을 유지해오고 있었다. 이렇게 건강하던 아내가 작년부터 한 군데씩 아파 오기 시작했다.


"오빠 노안 인가 봐 가까운 데가 안 보여 "

"오빠 어지러워 난청인가 봐 고주파가 안 들린데 귀가 안 좋아"


아내는 작년에 정전신경염으로 응급실에 실려간 이후 때마다 이비인후과를 다니고 있다. 그날은 어지러움증 검사를 받는 날이라 같이 병원을 따라갔다. 평일인데도 병원 주차장은 차세울 때가 없었다.


아내는 여러 가지 검사를 받은 후 담당의사 진단을 받기 위해 주치의 방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휠체어를 앞뒤로 호위하며 여섯 명의 법무부 직원들이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두 명은 경찰들이 입는 야광 조끼를 입고 있었고 다른 두 명은 법무부라고 크게 적힌 인식표를 목에 걸고 있었다. 동시에 우리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환자분을 바라보았다. 법무부 직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온 환자분의 두 손은 수갑으로 채워졌는지 검은 손수건으로 가려져 있었고 두 팔은 포승줄로 묶여 있었다.

환자분은 그냥 환자분이 아닌 듯했다. 법무부 직원들이 여섯 명이나 둘러쌓고 의사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것 치고는 환자는 너무 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병원을 둘러보는 환자는 희끗희끗 하얀 머리카락이 단정하게 빗어 넘겨 정갈해 보였고 초조하거나 긴장감 없는 미소 띤 얼굴로 병원을 둘러보고 있었다. 앞을 응시하는 눈매는 자뭇 진지해 보이기까지 했다. 국어 선생님의 눈매와 목사님의 미소를 동시에 느끼게끔 만드는 인상을 풍겼다. 한마디로 선하고 착해 보였다.


아내와 내가 앉아 있는 의자 앞에 선 법무부 직원들은 병원을 찾은 다른 환자들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무슨 죄를 지였길래 저렇게 선하게 생기신 분이 수갑까지 차고 진료를 받으러 왔을까 "


아내와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법무부 직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끔 뉴스에서 봤던 대기업 회장이나 정치인들이 병원으로 호송되는 장면이 생각났다.


법무부 직원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팀장님 야광조끼 입고 나가라는 지침이 있었나요 시민들 위화감 준다고 사복으로 입고 나온 건데요"


"야광조끼가 지급된 거니까 입어도 되겠지 업무에만 신경 써 시민들 불편함 없도록 하고 "


이미 그 장면을 목도한 것만으로 우리는 약간의 위화감을 받은 상태였다. 이런 장면은 상대방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보는 것 만으로 그런 감정이 들게끔 만드는 상황 이어서 달리 피해 갈 수도 없었다. 마치 그 장면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하나의 영상 같았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거나 빗방울이 천천히 떨어지는 그래서 중요한 장면임을 강조하는 하이라이트 부분처럼ᆢ


영화에서는 이런 장면에서 항상 고정된 이야기의 흐름이 있다. "착하게 생긴 휠체어의 환자가 풀 수 없을 것 같은 수갑을 손쉽게 풀고 자기를 둘러싼 여섯 명의 경찰들을 아주 손쉽게 처리한다. 그 순간 간호사가 놀라서 소리를 지르면 한 손으로 입을 막고 윙크를 하며 사라진다. "


혹시나 이런 영화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생각을 하면서 진료실로 들어갔다.

아내와 진료를 받고 나와보니 그분들은 없었다. 그분들이 에워쌓던 자리는 빈자리만 남아 있었다. 우리는 처방전을 받으러 무인수납기가 있는 일층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때 맞은편 암센터 앞에서 법무부 직원들이 휠체어를 둘러쌓고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암센터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고 우리는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휠체어에 탄 환자분을 쳐다보았다.


확실하지 않지만 그분은 보호감찰대상자 이거나 복무 중인 환자분 인 듯했다. 암센터 앞에 있다고 그분이 암환자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지만 정황만으로 암환자 일거라 생각은 할 수 있었다.


병원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보슬보슬 소리 없이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ᆢ 순한 얼굴로 미소 짓던 환자분의 얼굴이 계속 생각났다.


그 선한 미소가 이상하리 만치 오래 남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영상 같은 장면들이 있다. 단정 할 수는 없겠지만 여섯 명의 법무부 직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암센터 앞에서 진료를 기다리던 환자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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