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초는 키우기도 싶고 잘 죽지 않는다는 화분가게 사장님 의견도 있었지만 가게 한편에 정갈하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초록 식물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이름도 마음에 들었다. "여인초" 라니 강렬한 이름 세 글자가 수호지 여주인공 같아서 하얀색 네모난 화분을 번쩍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여인초는 일 년을 버티지 못하고 죽어 나가던 화분들의 무덤에서 사 년을 버티며 살아가던, 화분가게 사장님 말대로 잘 죽지 않는 화초 중에 하나였다.
언제부터인가 아내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그리고 이사를 할 때 우리는 초록색 화초가 심긴 화분이나 공기 정화 기능이 있는 나무들로 하나둘 집안에 들여놓기 시작했다. 이상했던 건 들여놓는 숫자만큼 죽어나가는 화분들도 많았다는 것이다. 화초 키우는데 특별한 재주가 없었음에도 우리는 초록색 화초들을 사들이고 빈 화분을 만들어 내는 공회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렇게 꿋꿋하고 잘 자라주던 여인초의 기세가 어느 날 보았을 때 줄기와 잎이 푹 풀이 죽어 땅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일 년에 한두 줄기 올라오던 새싹도 요즘은 통 볼 수가 없었고 그 무엇보다 빳빳하게 하늘을 보고 싱싱해야 될 초록잎들이 줄기까지 축 늘어져 있었다. 그 당시 고무나무와 녹보수 나무를 과습으로 죽였던 기억 때문에 그나마 남은 여인초에 거의 물을 주지 않았다. 그래도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여서 분무기로 물을 조금씩 뿌려주었다. 그래도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아 이제 여인초도 갈 때가 되었구나 포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리는 옆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사를 한 후에 아내와 나는 텅 빈 화분들과 여인초를 차에 싣고 가까운 화훼 단지로 찾아갔다. 빈 화분들에 화초들을 심어 오기 위해 몇 그루는 미리 정해 놓기도 했다.
평소 사고 싶었던 화초들과 나무들을 빈 화분에 옮겨 심었다. 그리곤 여인초를 사장님께 보여주며 큰 기대 없이 소생 방법을 물어보았다. 거의 죽었을 거라 생각이 들어서 뽑아 버리고 다른 여인초를 심어서 와야겠다 생각했던 터였다.
"물 흠뻑 주세요 찔끔 주지 말고 베란다에서 호수로 흠뻑 그렇게 이주에 한 번씩 주세요"
그렇게 여인초에 운명은 죽음의 문 앞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여인초에 물을 흠뻑 주었다. 지금까지 물을 안 줘서 미안하다 말해주었다.
물을 주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사이 여인초는 놀라울 정도로 자기 모습을 변신해 나갔다. 마치 화장을 끝낸 새색시처럼, 물 주기 전의 볼품없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이주일이 지나가자
근 일 년간 볼 수 없었던 연한 녹색 새싹이 두 개씩이나 시간차를 두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난 환호성을 질렀다.
이사하면서 들여놓은 다른 화초들은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초록의 위로는 이처럼 드라마 같았다. 살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여인초의 생명력은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연한 녹색 새싹은 싱싱하게 자라 잎을 펼쳐 나가고 있다. 잎이 펼쳐질수록 햇볕을 받아 진한 녹색으로 튼튼해져 가고 있다. 보는 것 만으로 나에게 힘을 준다.
초록의 위로란 이런 것이구나
다시 한번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알게 해 준 여인초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지금까지 받았던 위로 중에 기억에 남을만한 진정한 초록의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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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작은 행복이 있다.
그런 작은 행복은 나의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게 해 준다. 햇살 좋은 날이면 햇볕이 닿지 않는 화분들을 거실창 가까운 곳으로 옮겨 놓는다. 한여름의 뙤약볕에는 해가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도 놓는다. 화초들은 물과 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물 주기와 햇볕 쬐기를 어떻게 해주냐가 화초들의 생명을 연장시키기도 하고 단축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온갖 정성을 쏟아 화초들에 신경을 쓰는데도 어느 날 수북했던 고무나무 잎들이 누렇게 색깔이 변하더니 일 년을 못 버티고 죽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화초들이 죽어 나갈 때면 내가 잘못해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치만 화초들이 연녹색 새싹을 피어낼 때마다 작은 행복들은 사북 사북 쌓여 갔고 따뜻한 위로를 받아 마음밭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사람들마다 작은 행복을 만들어 주는 것들은 모두 다르다. 그것은 재료를 다듬어 자기만의 레시피로 요리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예약 없이 갑자기 떠나는 캠핑일 수도 있다. 야구장에서 캔맥주를 마시며 파울볼을 잡아보는 행운을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고 산책을 하며 아무 생각 없이 걷는 시간일 수도 있다. 사소한 시간과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것들과 때론 형태 없는 것들로 위로받는 경우도 있다.
그런 저런 작은 행복을 만들어주는 화초들이 시들지 않고 새싹을 키워 낼 수 있도록 아침저녁으로 공을 들여 돌봐주고 있다. 식물들이 연한 연녹색 새싹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팀이 구 회 말 투아웃에 만루홈런을 친 것처럼,
내게 작은 행복을 만들어 주는것중 에 화초 키우기가 있다. 그렇다고 화초 키우기에 재주가 있어서 때에 맞춰 물을 주고 분갈이도 해주고 가지치기도 해주어서 식물들이 잘 자라게 해준다는건 아니다. 일부러 화분을 사러 가지는 않는다. 아내 생일이거나 이사를 다니면서 하나 둘씩 화분이 늘어났다. 늘어나는 화분 만큼 화초가 죽어 빈화분도 늘어 갔다.
하나 둘 늘어 나던 화분들은 몇달은 잘 버티다가도 어느날 잎을 떨구며 죽어 나갔다. 특별히 재주가 있어 보이진 않치만 화초를 바라 보고 곁에 가까이 두는것을 좋아한다.
화초를 키우다 보면 이 작은 식물이 만들어 주는 묘한 감정들을 만나게 된다. 어느날 화분안에서 만들어진 연녹색 새싹은 세상 밖으로 방긋 고개를 내민다.이것 만큼 신비한게 또 있을까 화초 앞에 털썩 주저 앉아 바라 본다. 어디서 왔을까 그냥 말없이 오랫동안 바라 본다.
연한 녹색은 색깔로 위로해 준다. 그 연한 녹색은 마치 갓 태어난 아기 피부처럼 보들 보들 하고 약해 보인다. 만지면 안될것 같아 바라만 본다. 연녹색 새싹은 햇살을 향해 잎을 펼쳐 나간다.
하루가 다르게 색깔은 진해져 간다.
이사를 하면서 들여 놓은 고무나무와 녹보수나무가 어느날 시름 시름 앓더니 끝내는 죽고 말았다. 텅 빈 화분을 보고 있으려니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농사일의 대부분은 물주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아버지는 고추 농사를 망칠때 마다 하늘을 보고 푸념을 했다. 논과 밭에서 자라는 모든 작물은 제대로 크고 자라려면 제때 적당량의 물주기는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