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 셋째 주 일요일은 김장하는 날이다.
겨울날 준비를 하는 엄마는 김장하는 날 몇 주 전부터 마음이 바빠진다.
이날은 마치 증조부 할아버지의 제삿날처럼 꼭 지켜야 할 겨울맞이 행사가 되었다. 이날 우리 가족은 예외 없이 경기도 기흥 아버지의 집으로 모인다. 아버지가 농사지신 텃밭에 온갖 채소들은 이날 한대 버무려진다. 가을 햇볕을 받아 노랗게 속이 꽉 찬 큼직 만한 배추를 딴다. 밭고랑을 따라 일렬로 줄지어 자란 가을배추들이 아삭아삭 거리며 수군거린다. 김장 담그는 일의 대부분은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일과 배추 속에 넣을 소를 만드는 일이다. 일단 무슨 일이든 작게 하는 일이 없는 엄마는 김장이라는 성대한 만찬을 푸짐한 일거리로 만들어 놓는다. 손이 큰 걸로 설명되지 않는 이웃과 자식들에게 일 년 내 퍼줄 김치는 엄마의 일 년 행사 중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족히 이백 포기는 될 법한 소금에 절여진 배추들이 산처럼 포개져 있다. 그해의 김장 맛은 소금을 고르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무리 재료가 싱싱하다 해도 소금의 간도가 맞지 않거나 천염소금이 아닐 경우에 김장 맛은 지녀야 할 그 고유의 시원한 맛을 잃어버린다. 밭에서 따온 배추를 큰 대야에 넣고 겉옷에 묻은 흙먼지를 씻어준다. 소금에 절여질 준비를 하기 위해 배추는 정갈하게 목욕을 한다. 배추를 반으로 갈라 노란 배추 속에 굵은 천연 소금을 부여 준다. 소금을 뿌리는데도 장인의 노런 한 기술이 필요하다. 아무렇게나 뿌렸다간 소금에 절여진 배추는 그 간간한 아삭한 짠맛을 잃어버린다. 절대 고수의 김창장인은 김치의 아삭함 과 소금의 짠맛을 절묘하게 아우른다. 그러기 위해선 소금 뿌리는 강도가 중요하다. 배추 머릿단으로 갈수록 배추는 굵어지고 하해지며 섬유질이 많아진다. 하얀 소금을 함박눈 맞듯 맞은 배추는 두어 시간 만에 풋기가 사라지고 죽어간다. 배추 속에 뿌려진 소금은 배추 속으로 눈 녹듯 녹아 스며든다. 배추가 지닌 수분을 다 잃어버리지 않게 해 주는 것 그래야만 배추가 지닌 섬유질이 살아 있어 일 년 내 아삭함을 유지할 수가 있다. 바로 그 순간 소금이 적당히 배어든 순간 배추는 물속으로 들어간다. 배추에 아삭한 식감과 짠 미가 한 대 공존하는 그 김치에 고유한 맛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제 배추에 넣을 소를 만드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소를 만드는 일은 잡념을 없애준다. 무채를 썰다 보면 그 단순한 노동일이 생각을 지워줌을 알아간다. 빨간다라 한가득 무채가 썰어지고 미리 준비해 둔 갓과 미나리 배 대파를 넓은 김장 담그는 돗자리 위에 한데 부어준다. 그 위로 흰 죽과 빨간 고춧가루 마늘과 생강 멸치액젓 소금 매실청까지 양념을 아끼는 법 없이 장인의 눈썰미로 계량 저울이 필요 없는 "그 정도" 넣으면 된다는 마법으로 들어간 양념들을 한대 버무린다. 어깨 근육과 다리 근육이 아려 울 정도로 버무려 줘야만 온갖 채소와 양념들이 한데 어우러져 맛을 낼 수 있다. 뒤집고 또 뒤집고 손으로 휘휘 저어 흰 죽과 고춧가루가 하나의 점액 질로 적당한 점도로 만들어질 때까지 속을 만들고 버무리는 일은 그야말로 김장 담그는 일은 구부 능선까지 마무리된 것이나 다름없다.
소금에 절여진 배추 200 포기와 빨아간 배추 속이 준비되었을 즈음
외사촌동생들과 며느리와 동네 아주머니들은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둘러앉아 배추 속을 버무린다. 노란 배추 속을 빨간 속으로 휘휘 감아 맛을 본다.
소로 버무려진 온갖 채소들이 그 맛을 잃지 않고 하나의 조율된 음률의 맛이 배어 나온다. 배추의 아삭함과 소금기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씹는 소리마저 타악기 반주소리처럼 귓가에 와닿는다. 천상의 맛
그래 이 맛이야
다들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소금에 절여진 배추 속으로 빨간 속을 버무려 입힌다 노란 배추들이 빨간 옷으로 갈아입는 순간이다. 소를 배추 속에 넣어 줄 때도 배추밑단 깊숙이 넣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두꺼운 배추 섬유질이 겨우내 맛있게 숙성된다. 우리들은 배추를 버무리며 우리의 이야기도 배추 속으로 넣어 버무린다. 엄마의 김장일이, 엄마의 김장 맛이 맛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에 사는 이야기도 함께 버무려지기 때문이다. 한 포기에 배추 속으로 옆집 아주머니 아들의 손자 이야기와 외사촌 동생들의 남편 자랑과 말 안 듣는 쌍둥이 아들 육아 이야기와 함께 스며들어 배추 맛은 더 진해지고 김치 다뤄진다.
어젯밤 함께 마신 막걸리의 향기도 더해진다. 이야기가 한 대 버무려진 배추 맛이 안 마실 수 없는 이유다. 배추가 지닌 그 고유의 수분과 섬유질이 소금에 절여지듯 우리의 인생도 우리의 이야기도 김장 담구 듯 담가진다. 한겨울 내내 김장독에서 익어갈 김장 김치에는 그 하나의 한 해의 살았던 이야기가 함께 버무려지고 담겨 있다. 잘 버무려진 소와 함께 맛있게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기저기 아삭아삭 씹히는 소리가 아름답다.
두 대의 김치 냉장고에는 엄마의 김장 김치가 가득 채워진다. 빨갛게 버무려진 소로 꽉 찬 김장 김치가 사는 이야기까지 더 해줘 익어갈 준비를 한다. 두 대의 김치 냉장고 로도 부족해 사람키 만 한 항아리에 김장김치를 포개어 놓는다. 중간중간 두부 크기로 자른 무를 꽂아 놓는다. 엄마의 김장 김치 맛에 길 들여진 손주들은 다른 집 김치를 먹으면 맛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할머니가 담그신 김치가 제일 맛있어요 식당에서 먹는 김치도 맛이 없더라고요." 누군가 맛있게 먹어주는 그 한마디에, 누군가 썰어 놓은 김치 한 사발을 다 먹어 치운 그 모습에 매년 김장하는 날은 엄마가 부릴 수 있는 욕심을 최대한 부려본다. 꼬박 일 년을 다음 김장날까지 대 식구를 먹여 살릴 일용할 양식이 마련되는 순간이다. 마치 모세가 사막에서 받은 맛나처럼 한 해의 김장김 치는 엄마가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의 징표가 되었다. 맛있다는 그 한마디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늙은이가 담근 게 뭐가 맛있어 라며 얼굴 가득 환한 게 웃으신다. 마치 꽃처럼.. 엄마 에겐 그게 천상의 행복인 듯했다. 이야기로 담가진 김장김치는 그렇게 다음 겨울까지 이웃과 자식들에게 퍼즐 사랑이 되었다. 나에게도 이런 사랑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내 이웃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퍼주고 나눠줄 마음 한 줄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어디 김치뿐이랴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따듯한 미소 한 모금 같이 걷는 동행 우산을 씌워주는 배려까지 가난하고 힘든 이웃을 챙겨주는 게 김치 속에 담겨 있다. 아마도 예수님의 모습도 이러하겠지!
김장김치는 아니어도 이웃과 주
나눌 작은 것 하나쯤은 만 들어가는 그렇게 늙어가는 사람이 되어야겠지! 다짐해 본다.
그렇게 나눌 때 따뜻한 밥 한 끼 먹은 듯 마음 깊숙이 행복이 밀려오겠지 찰나의 연속성 작은 행복 들이 모여 이루어 내는 기적! 내게 행복은 만드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이란 걸 김장 김치는 가르쳐줘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