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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부의 만담 이야기

아는 분의 술 사랑 이야기

by 둥이

머리맡에서 밤새 자동 청소기가 윙윙 돌아다녔다. 집안 거실에 아이들 놀이용으로 쳐놓은 커다란 텐트 안으로 우주선처럼 생긴 로봇청소기가 들어갔다. 방향을 잡아주는 자동센서는 텐트 안에서 누워 있는 사람의 굴곡을 이해 못 한 듯했다. 막히면 반대로 돌아가거나 옆으로 더듬어 가야 되는 게 보통이지만 이건 웬일인지 그 작은 텐트 안을 맴돌며 술에 취한 한 남자의 머리를 계속해서 두드리고 있었다.


"누가 자꾸 와서 머리를 때리더라고요"


로봇청소기는 제 할 일을 했을 뿐 배려를 두는 법이 없었다. 배려라는 인정이 AI에 있었다면 밤새 윙윙 거리지는 않았을 텐데 그것도 아니라면 사람의 신체 굴곡을 감지할 수 있는 정도의 인지능력을 심어줘야 재발방지가 될듯했다.

그렇다고 술을 안 먹을 수도 없는 법이라 당분간은 바닥에서 널브러져 자는 일은 피해야 청소기의 테러에서 자유로워질 수가 있을 듯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인 홍비는 모든 술자리를 유쾌하게 만들어주는 쾌활한 사람이다. 유쾌 상쾌 통쾌 삼쾌를 적재적소에 수류탄 던지듯 펑펑 터트리는 사람.. 술술 풀어내는 이야기 속으로 푹 빠져들어 한참을 웃다 보면 의례 있던 작은 격식도 없어진다. 감정의 빗장을 풀어헤쳐 무장해제를 시켜 버리는 마술을 부린다. 술을 좋아하는 것과 술을 잘 마시는 것은 로그함수처럼 비례하지 않는다. 술자리가 좋아서 자주 술을 마시는 사람이라도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하는 법.. 하지만 이런 로그함수에 홍비는 속해있지 않다. 방정식의 그래프처럼 비례 함수처럼 술을 좋아하고 또 좋아하는 만큼 잘 마신다. 말마따나 밑 빠진 독에 술 붓듯이 항아리 속 가득 술을 채우고도 취하는 법이 없다.


"삼촌 쌕~ 연푸른 시판가지 색"


술 먹을 때면 자주 듣게 되는 장난이 잔뜩 들어간 홍비의 건배사와 누군가 술을 뺀다거나 티격태격하며 서로를 툭툭 건드리며 주고받는 만담은 언제 들어도 웃음을 불러오는 마법 주술이다.


있는 자리를 빛내주는 홍비 부부의 만담 대화는 마치 쓰리랑부부가 대치고 부치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본 듯 방안 분위기를 순식간에 온기가 돌게 만들어준다.


"저는 원래가 외향적인 사람이에요. 초등학교 오 학년 때 담임선생님께 엄청 혼난 이 후 사람이 이렇게 내성적인 사람으로 변했어요 항상 노래 부르고 나대는 아이였는데 지금은 샤이한 사람이 되었어요 "


MBTI 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을 받고 자신의 성향을 이야기하는 홍비는 본인 자체도 우스운지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가며 춤을 춘다.


본인은 E였다가 I로 변했다는 이야기지만 모두들 "그건 아니지" 합창을 한다.

우리는 홍비에게 그냥 모태부터 E 인 사람이라고 말해 주었지만 술을 마실 때마다 I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야말로 샤이하고 내성적이고 낯가리는 사람이죠 "


"에이 그건 더 아니죠"


서로에게 우리는 MBTI 정도는 가볍게 퉁치게 되고 신뢰 못할 여론조사처럼 한번 듣고 아 그런가 보다 의미를 두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가 내가 아는 그 사람의 고유한 MBTI로 그 사람을 대하고 그 사람 곁에 머물고 편안함의 진수를 보듯이 남들보다 더 진할 감정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나에게 그 사람은 보이는 게 전부인 사람 투명한 사람 밝고 유쾌한 사람이다. 아마도 그건 일방이 아닌 쌍방향 일 것이다. 모인 모두가 이리 오랫동안 좋은 걸 보면..


이런 홍비가 몇 년 전 술에 취해 텐트 안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는 사건이 있었다.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입담 좋은 한 사람이 쑤욱 무뽑혀 나간 자리는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코 고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모두가 잠든 컴컴한 밤에 부지런한 로봇청소기는 거실 안 테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고이 잠든 홍비의 머리를 엇박자의 리듬으로 툭 툭 디리릭 삐리릭 밤새 때리는 소리가 목탁소리 들리듯 들려왔다.


저 정도면 벌떡 일어나 끄고 잘만도 한데 역시 속 편한 사람의 내공은 아무나 따라갈 수 없는 법 ᆢ

E와 I를 모두 지닌 참 좋은 사람..

로봇청소기도 좋은 사람을 알아볼 줄 아는지 좋은 사람 곁을 밤새 지켜준 행복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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