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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캉스를 다녀와서

휴가 이야기

by 둥이

호캉스의 호사

[덜]


콘센트에 내 두 다리를 꽂고

하루종일 길게 누워 있었으면 좋겠다.

덜 생각하고

덜 움직이고

덜 욕심내고

채우는 게 아니라

비우는 게 충전


정철 지음 - 한 글자


호텔 로비의 온도는 차가웠다.

호텔 로비 직원들이 검은 정장을 바쳐 입고도 밝게 웃을 수 있는 내공은 딴 데 있지 않았다. 진정한 서비스는 이런 것을 배려하지 않고선 우러나올 수가 없다. 에이콘이 고장 나 후덕 지근한 호텔을 상상만 해봐도 끔찍하다.

불볕더위가 절정으로 치닫는 오후 3시 체크인 시간, 우리는 메이필드 호텔에 도착했다. 찌는듯한 무더위를 피해 우리는 바다와 계곡이 아닌 호텔을 선택했다. 마냥 누워 호사롭게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은 역시 호텔이 제격이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린 가성비 좋은 오성급 호텔을 찾아 떠났다. 호캉스 검색을 통해 서울 근교에 있는 메이필드 오성급 호텔을 찾았다. 호텔은 화려함 보다는 아담했고 실속이 있었다. 회전문을 지나니 자동문이 스르르 열렸다. 순간 차가운 공기가 뿜어져 나왔다. 문 하나의 간격을 두고 차가운 공기와 숨이 턱 막힐 정도의 후덕 지근한 공기가 서로를 밀쳐 내고 있었다. 여름은 두 계절이 같은 공간에 머무를 수 있는 야무진 계절이다. 콧잔등에 내려앉은 땀방울과 등줄기로 흐르는 땀줄기가 사르르 사라져 갔다. 너무 빠른 시간에 몸에서 수분이 사라질 때 감각은 약간의 소름과 간지러움이 느껴진다. 생각해 보면 그 느낌은 나쁘지 않다. 우리의 호캉스는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일 년에 한 번 아이들은 성당에서 진행하는 여름 신앙 학교 캠프를 떠난다. 이박삼일 동안 아이들은 물놀이며 캠프파이며 다양한 게임을 즐긴다. 어쩌면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좋아하는지 모른다. 육아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 그곳이 휴가의 시작이었다.


아무것도 신경 쓸 게 없는 자유로움과 여유가 좋았다. 우리는 도착하기가 무섭게 파3 골프장으로 향했다. 찌는듯한 태양빛도 이 자유의 시간을 오롯이 즐겨야 된다는 생각에 더위는 문제 되지 않았다.

메이필드 호텔 관내에 있는 파3 골프장은 짧은 거리였지만 숏게임을 즐기기에는 충분했다. 우리는 의욕적으로 연습 모드에 들어가 뙤약볕을 맞으며 두 시간 가깝게 게임에 몰입했다. 앞뒤로 사람이 없다 보니 느긋하게 부족한 어프로치를 쉴 새 없이 연습했다. 골프는 마인드 게임이라는 걸 다시 느끼게 되는 건 잘 치려 할수록 몸은 생각과 반대로 움직여 주었다. 서서히 급격하게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발바닥도 아파오고 손도 아파오고 더위를 피해 호캉스를 온 게 무력할 정도로 태양빛을 맞으며 노동을 하고 있었다.


뭐든지 지나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 실감 났다. 햇볕에 달거진 몸을 이끌고 우리는 수영장으로 향했다. 25m 여섯 라인의 전형적인 실내 수영장은 아담하고 깨끗했다. 수영장에 들어서니 축 늘어진 몸과 마음이 다시 의욕이 넘쳐 나기 시작했다. 아내는 아이를 낳기 전 십 년간 꾸준히 지구력과 근력을 잡아주는 수영을 해온 터라 물 만난 고기처럼 자유형과 접형 평형 배형을 바꿔가며 수영 재미에 푹 빠졌다. 나 역시 아내에 비길 정도의 실력은 아니지만 결혼 후 아내의 성화에 일 년간 수영을 배운 터라 몸이 물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호흡이 딸렸지만 참아가며 25m 라인을 쉬지 않고 수영을 했다. 수영장은 뜨거운 태양빛은 없었지만 평소 사용하지 않던 근육들을 무리하게 움직였던지 어깨 근육과 장딴지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찰랑찰랑 물 온도도 적당해서 몸만 담근 체 반바퀴만 수영을 해도 충분했는데 우리는 물에서 땀이 날 정도로 수영을 하다 보니 회전근개에 무리가 가는 것도 당연했다.


인적 없는 한가한 수영장과 골프장이 그래도 위안이 되었다. 그 덕분에 무리를 했지만..


호텔은 싱글 투윈 베드로 리노베이션 된 호실로 배정받아 심플하고 깨끗했다.

짐을 풀고 침대에 누우니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침대에 누워 뒹글 뒹글 대며 파리 올림픽 경기를 보았다. 실컷 자고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아 이보다 편할 수 있을까

아이들한테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일 년에 한 번이니까 마음껏 호사를 누리고 싶었다.


아 이제야 알겠다. 아니 알았었는데 늘 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알겠다.


충전은 채우는 게 아니라 비우는 거리는 그 단순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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