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 B의 이야기
까만 정장이 잘 어울린다.
빨간 나비넥타이 하얀 와이셔츠,
검은색 구두, 바짓단 안쪽 검은색 양말
강렬한 원색옷, 하지만 여백의 명암처럼 자연스럽다.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자연스러운 손동작, 편안한 눈동자, 입술 주위로 경련도 없다.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보는 사람도 편안해질 수 있다. 마치 책을 읽듯 편안하게 노래를 부른다. 아쉽게도 나에겐 이런 능력이 없다.
내 친구 B에게 노래는 쉬운 일이다.
B는 성악을 전공했다. 어렸을 적 B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교 매점에서 라면과 떡볶이를 사 먹는 평범한 아이였다. 곱슬머리에 덩치가 조금 컸던 B가 성악을 전공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B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더 놀라웠는지 모른다. 고3이 되어서야 B는 성악을 하겠다며 진로를 선택했다. 그런 능력은 B가 아이들과 화음을 넣어가며 노래를 부를 때 알았다.
나에겐 없는 능력이다. 이상한 것은 사람이 가진 능력이 어느 곳에 숨어 있다가 적당한 시기가 되면 피어난다는 것이다. 마치 흙속에 묻혀 있는 씨앗처럼, 늦지 않게 발아한다.
나는 가끔 B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공연 사진을 본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은 어떻게 알았는지 B와 나의 공통점을 찾아냈다. B와 나 사이에 특별한 무엇이 있는 건 아니다. 아마도 출신학교쯤으로도 쉽게 연결은 됐을 것이다. 무심코 열어본 이후로 페이스북 알고리즘은 B의 동향을 소상히 전해준다. B는 승마복처럼 생긴 몸에 딱 붙는 재킷을 입고 있다. 피아노에 한 손을 얻고 어딘지 모를 허공을 향해 다른 한 손을 뻗치고 있다. 입술 모양은 야구공이 들어갈 정도로 동그랗게 벌려 있다. 아마도 마지막 공연 고음을 부르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그 옆에 말쑥하게 차려입은 B의 딸도 있다. 어릴 적에 봤던 B의 딸은 금방 알아볼 수가 없다. 그래도 눈매에 남아있는 인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B의 딸임을 말해 준다. 화려한 조명과 피아노 뒤편으로 줄지어 서있는 관현악단 들은 B와 B의 딸을 쳐다본다. 관현악단 뒤로 검은 정장을 입은 합창단이 두 줄로 서있다. 동영상속 B는 역시 멋지게 노래를 부른다. B의 독창이 끝나간다. 합창단과 관현악단은 동시에 움직인다. 마치 100미터 달리기를 준비하는 육상선수들처럼,
사진 아래에 간단한 설명이 올라와 있다. **정기공연, B의 능력이 몇 마디 글자로 요약되어 있다.
B의 능력은 묘하게 나를 흔든다.
가끔 거울 앞에서 사진 속 B처럼 입술을 동그랗게 벌려 본다. 야구공은 아니더라도 탁구공은 들어갈 정도로 입을 벌린 후 한 손을 쭉 펼친다.
마치 손을 쭉 뻗으면 내게 없는 그 능력을 확 낚아챌 수 있기라도 할 것처럼,
B의 정기 공연이 있는 날, 페이스북은 요란 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