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왼쪽 코가 막힌 느낌이 자주 든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마치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듯 막혀있던 왼쪽코가 시원해진다. 그렇게 오른쪽으로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면 서서히 생각이 흐릿해져 간다. 잠은 그렇게 뉘엿 뉘엿 해가 지고 어둠이 스며들듯 조용히 찾아온다.
나는 평소에도 잠이 많은 편이다. 주변에 잠이 별로 없는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좋은 습관을 가질 수 있을까 부러워진다. 가끔 잠이 좀 많다는 것을 인생 전체를 펼쳐 놓고 계산했을 때 내가 얼마나 인생을 잠으로 소비하는가 후회할 때도 많다. 그래도 잠들 때의 느껴지는 그 달콤함이 좋다. 잠들 때도 그렇치만 잠에서 깨어날 때도 , 수면욕구가 채워졌을 때 느껴지는, 한없이 상쾌하고 나른한 그 기분이 참 좋다. 그건 충분히 채워졌을 때보다는 약간 부족했을 때, 그리고 짧지만 아주 깊은 잠을 찼을 때 느껴지는 기분이다.
어쩌면 약간의 수면 결핍은 질 좋은 수면을 위해서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물론 전문의나 수면전문가들이 들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말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다.
잠과 비슷한 것이 밥이다.
도무지 절제가 되지 않는다. 좀 부족하거나 약간의 결핍이 가져다주는 장점들이 많다는 걸 알면서도 생활 속에 좀처럼 녹아들지 않는다.
인간의 위와 장기는 음식물이 들어오면 쓸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데 사용한다. 위와 장이 텅 비어있을 때 드는 그 공복감과 허기는 뇌가 다른 에너지를 사용하게끔 만들어 준다. 새벽녘 책 읽기나 산책이 우리 뇌를 각성시키는 데는 공복감과 허기에서 온다. 에너지가 산만하게 날뛰지 않고 오로지 신경세포 뉴런의 세포분열에만 초집중을 하게 해 준다. 먹을 때의 포만감은 오래가지 못한다.
나에겐 밥의 유혹을 멀리 할 수 있는 자재력이 필요하다. 난 잠도 많은 편이지만 아내의 핀잔을 자주 들을 만큼 탄수화물 중독자다. 한 숟가락만 더 먹는다는 게, 아 조금 부족한데 조금만 더 먹어야지 먹다 보면, 올챙이 배처럼 윗배가 볼록 해져있다.
잠과 밥 이 두 가지와 비슷한 것이 또 있는데 돈이다. 살다 보면 어느 시기, 어느 순간을 지나면서 돈이 들어오는 때가 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런 때가 한 번쯤은 있다. 돈은 많이 벌었을 때보다 많이 벌릴 때가 좋다. 누구에게나 돈은 필요하다. 하지만 돈이 많다는 것과 적다는 것이 행복의 절대가치로 이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많을 때보다는 조금 부족할 때가 더 행복한지도 모른다. 조금씩 나아지는 살림살이를 볼 때가 즐겁다. 다 갖추고 나면 오히려 변화 없는 지루한 삶에 우울할 때가 많아진다.
결핍이 만들어 주는 마법은 식물이나 농작물도 마찬가지다. 너무 비옥한 땅에서는 작황이 좋지 않다. 그만큼 내성이 약해져 작은 변화를 견뎌내지 못한다. 고추나 고구마나 감자, 양파 마늘 같은 식물들은 땅이 필요 이상으로 기름지면 수확량이 줄어든다. 작물에 필요한 모든 것은 부족한 만큼의 영양분을 태양과 비와 바람과 땅속 근균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공급된다. 아마도 땅은 결핍이 만들어주는 자연의 재생력으로 지속적인 건강함을 유지하는 듯하다.
이러한 결핍의 에너지는 어쩌면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에너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편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자립심이 퇴화되어 간다. 부족하다고 느낄 때, 그 결핍의 에너지는 홀로 살아갈 수 있는 강력한 동기부여를 만들어준다. 스스로 뿌리를 내려 수분과 영양분을 찾아가게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