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니까 그 할머니는 내 앞으로 백 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서 기분 좋게 어깨를 흔들며 걸어가고 있었다. 할머니의 보폭은 내게 추월을 허용하지 않은 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뒷모습 만으론 할머니인지 분별이 되지 않았지만 멀리서도 확연히 눈에 띄었던 건 하얀 털모자였다. 마치 머리 위에 하얀 풍선을 달아 놓은 것처럼 보였다. 할머니는 꽤나 건강해 보였다. 흥얼흥얼 노래도 불렀다. 할머니는 가을바람에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덩달아 나도 흥얼거렸다.
산책로 중간 지점에 다다랐을 때 난 쉬고 있는 할머니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다. 근데 할머니는 모자를 쓰고 있지 않았다. 할머니의 머리 스타일은 미장원에서 방금 펌파마를 말아 올린 듯이 솜사탕처럼 동그랗게 부풀려져 있었다. 머리 색깔은 새하얀 밀가루를 뒤집어쓴 듯 새하얀 색이었다. 할머니는 손가락으로 풍성한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마치 밭고랑 일듯 새하얀 머릿결이 몇 갈래로 갈라졌다가 모아졌다. 멀리서 보았던 하얀 털모자는 다름 아닌 풍성한 머리카락이었다. 할머니는 추운 겨울에도 따로 털모자는 필요 없을 듯했다.
보온 효과를 떠나서 미용적인 면에서도 풍성한 머리카락은 할머니를 빛나게 만들어 주는 듯했다. 거기에 카리스마는 덤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할머니를 따라서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마치 저렇게 풍성한 머릿결을 쓸어 올리듯이,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머리카락의 감촉은 전혀 느껴지지가 않았다.
딱 그만큼 머리카락이 남아 있는 것이다. 정말 슬픈 일이다.
마음 같아선 그때 난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싶었다. 두 손 가득히 열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머리카락의 그 묘한 느낌을, 고뇌에 찬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다섯 손가락을 머리카락 깊숙이 집어넣을 때의 그 멋진 모습을,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느끼고 싶었다. 정치인 조국처럼 한 손으로 비스듬히 머리를 쓸어 올리고 싶었다. 만약 할머니가 허락만 해주었다면 말이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말이다.
며칠 전 미국 사는 친구가 머리를 심자며 연락이 왔었다. 안타깝게도 그 친구는 머리카락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친구에 비하면 나는 아직 머리카락이 풍성한 편이다. 요즘 많이들 하는 모발이식은 마치 모내기처럼 두피에 머리카락을 심는 건데, 이게 생각보다 괜찮다. 한 올 한 올 뽑아서 이식하는 부분 이식이 있고 잔디처럼 띠로 떠서 옮기는 전체 이식이 있었다. 그 친구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강남에 있는 유명한 모발이식 전문병원과 상담한 내용을 보내 주었다. 그 친구는 아무리 머리가 없다지만 이천만 원이 넘는 비용이 나왔다며 당황 해했다.
소형자동차 한 대 값이다. 머리를 심는 게 그만한 값어치가 있기는 한 걸까 그런데도 예약하면 몇 개월을 기다려야 된다고 하니 탈모시장은 의사들이 선호하는 새로운 시장이 되어 가고 있다.
가끔 새하얀 펌파마를 하고 다니는 숱 많은 할머니는 아마 이런 탈모 고민은 평생 안 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건 정말 새하얀 털모자 같은 펌파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