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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이 Oct 27. 2024

후드티를 입는 날

후드티에 관한 이야기

후드티


점잖아 보이는 댄디한 재킷과 갈색 단화 위로 살짝 올라오는 베이지색 면바지를 꺼내 입는다. 그리곤 다시 벗어 옷장에 걸려 있던 그대로 걸어 놓는다. 마치 꺼내 입지 않은 듯이, 그리고 오버핏 검은색 후드티를 꺼내 입는다. 지난주에 바짓단을 줄여놓은 청바지도 꺼내 입는다. 접혀 있던 바짓단이 하얗게 주름이 생겼었는데 싹둑 없어졌다.. 더 이상 접어 입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검은색 후드티에 바짓단을 줄여 놓은 청바지를 입는다.


거울 앞에 서서 나를 쳐다본다.

눈을 크게 떠보기도 하고 입술을 벌려 좌우로 돌려 보며 여러 표정을 지어본다. 그런대로 괜찮아 보인다.


정확히 이십 분의 시간이 지나갔다.


나는 무난한 회색 후드티와 검은색 후드티 두 개가 있다.


이상한 일이지만 후드티를 입은 날이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거기에 청바지를 바쳐 입었다면 세네 살은 훌쩍 젊어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 눈에는 전혀 그렇게 안보일 수도 있다.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열 살 정도는 젊어 보일 수도 있다. 후하게 쳐서 그렇다는 것이다. 후드티는 오버핏으로 걸치듯 입어야 핏이 살아나는데 비율이 안 좋은 사람도 그런대로 무난하게 잘 어울린다. 그렇다 보니 무슨 옷을 입어도 후줄근해 보이는 어느 날은 후드티를 입게 된다.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아무거나 꺼내 입은 듯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살짝 고급져 보이기까지 하고 거기에 젊어 보이기까지 한 옷이 후드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우리 애들도 색상별로 후드티가 여러 벌 있다. 옷장을 열면 후드티가 페스티벌 하듯 정열 돼 있다.


어느 날은 좋아하는 옷을 입어도 후 줄군 해 보이는 날이 있다. 어제와 별 다를 게 없는데도 거울 속 내가 영 못나 보일 때가 있다. 숱 없는 머리를 다시 만져보고 옷장에 걸려있는 다른 옷을 꺼내 입어도 그런 날은 별수가 없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기분도 별로여서 일도 잘 풀리지 않는다.


그런 날에는 고민하지 말고 후드티를 꺼내 입는다. 누구야 모라 그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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