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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청년과 흑인 소년의 이야기

성당 견진성사 이야기

by 둥이


빨간 머리 청년과 흑인 소년의 견진성사 이야기


성당 견진성사가 있는 주말이었다.

합동 견진 성사로 인근 지역에서 모이다 보니 평소 주말보다 많은 사람들로 성당 안은 붐비고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주 성당을 다니다 보니 거의 항상 보게 되는 성당 사람들을 보게 된다. 성당엔 친하게 지내는 분들도 있었고, 인사만 하는 사이도 있었고, 성당은 다니지만 서로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매주 친한 분들을 볼 수 있다는 건 성당을 다니는 또 하나의 즐거움 중에 하나였다. 좋은 사람들 곁에 있다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게 된다. 그렇게 주말보다 보게 되는 사람들을 보다가 이번 주말에는 인근 성당에 다니는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때 난 흔히 볼 수 없는 낯선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 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견진성사를 받기 위해 지정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훑어 보았다. 그때 빨간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요즘 머리 염색한 게 무슨 이야깃거리가 되냐고 말할 수 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장소가 주교님이 집전하는 견진성사였고, 그것도 빨간 머리를 한 젊은 청년이 대부석 자리에 앉아있었다면 어디에서나 쉽게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어서, 아내와 저녁밥을 먹다가 혹은 지인분과 커피 한잔을 먹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일상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내가 성당에서 이런 분을 봤어" 하면서 풍경처럼 기억에 남을 만한 이야기를 툭 던지며 말을 걸듯이,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말할 수 도 있겠지만, 딱히 눈에 들어오는 걸 안 본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정리를 하자면 빨간 머리 청년은 멀리서도 눈에 확 뜨일 만큼 진한 빨간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흑인 소년 뒷자리에 대부로 앉아 있었다.

빨간 머리 청년을 대부로 세우고 견진성사를 받으려는 흑인소년, 순간 두 명의 관계가 궁금해졌다.


같은 성당에 다니는, 전례부나 성가대를 같이 하는 선생님과 학생 정도의 관계로 밖에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주변 어느 회사에 다니는 외국인노동자 일까! 하고 생각도 해봤지만 그 정도로는 보이지 않았다. 흑인소년은 얼굴이 소년티가 났다. 빨간 머리 청년은 가끔 흑인소년을 두 손으로 안아 주거도 했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날 견진성사를 받는 백여 명의 아이들과 백여 명의 아이들 뒷자리에 서있는 백여 명의 대부와 대모들 속에, 빨간 머리 청년과 앳된 흑인소년은 누가 보아도 한 번쯤 더 쳐다보게 만드는 어울리는 한쌍이었다. 그건 여간해서 볼 수 없는 낯선 풍경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절대로 두 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본다거나, 외모로 그 사람을 평가한다든가 하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어쩌면 성당이나 교회 같은 종교에 더 적합하고 있어야 되는 사람들은 평범하고 보편적인 우리보다는 평범함을 벗어버린 이들과 보편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아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의 가르침, 신께서 원하시는 게 그런데 있지 않을까 하는, 그 낯선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이 보기에 좋았다.


빨간 머리 청년은 소설 빨간 머리 앤처럼, 소설책 표지 그림과 똑같은 머리색을 하고 있었다.

그 빨간 머리카락에는 보라색과 빨간색 그리고 주황색이 모두 들어가 있는 듯했다. 체크무늬 롱코트에 검은색 면바지 스니커즈 운동화 작지 않은 적당한 키, 빨간 머리 청년은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옆모습만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분을 제외한 모든 대부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점잖은 검은색 양복과 검은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대부분 평범했고 대부분 비슷했다. 마치 대부와 대모는 이래야 된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모두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조금은 진지하고 표정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너의 대부를 서게 돼서 기쁘다는 말을 하고 있는 듯했다.


빨간 머리 청년과 앳된 흑인 소년은 견진성사를 받기 위해 주교님 앞으로 긴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견진성사를 받고 자리로 돌아가 앉으려는 두 사람의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가 있었다. 뒷자리에서 상상을 하며 쳐다보았던 빨간 머리 청년의 얼굴은 호감 가는 인상이었다.


그렇게 두 시간이 넘는 긴 미사가 끝나갔다. 사람들은 재단 앞으로 몰려들어 사진을 찍었다. 나는 계속해서 빨간 머리 청년과 흑인 소년을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그날 견진성사를 받은 모든 사람들이 재단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 기억에 남는 거는 주황색 망토를 입은 주교님도 아니었다. 그 주변의 신부님들도 아니었다. 그건 마치 빨간 머리 청년과 흑인소년을 위한 견진성사처럼 보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지인분들만 보였을 것이다.


주말이 끝나가는 시간, 잠자리에 누워서도 빨간 머리 청년과 흑인 소년의 관계가 너무 궁금해서 다음 주 성당에 가면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저기 혹시 지난주 미사 때 그분들 보셨나요 빨간 머리 앤과 허클베리 핀 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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