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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쫌 그래

예쁜 조카 이야기

by 둥이

그건 쫌 그래


그건 지민이가 자주 하는 말이었다.

자기가 대화를 하다가 왜 그 말이 툭 나오는지도 모른 체 내뱉어 찌는 말,

습관처럼 하는 말이지만, 문맥의 흐름상 시의적절하게, 딱 필요할 때 나올 때도 있지만, 말투에 따라 감탄사로도 들리기도 하고 어떨 땐 동의어로도 들리기도 하고 때론 반의어로도 들리기도 한 마법과 같은 말이 있다. 자기주장을 강하게 드러 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상대방 말에 줏대 없이 쉽게 동의하지도 않은 그 말, 들을수록 묘하게 물음표보다는 느낌표로 들리는 말이 있다. 왠지 중립적이지만 자기 생각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듯한 뉘앙스, 그러니 섣부른 결정은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그런 말이 지민이 에겐 있다.


그런 건 찾아보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말투에서나, 서툰 몸짓에서나, 알아볼 수 없는 표정에서나, 다부진 행동에서 그렇게 누구나 자기도 모르는 습관을 찾을 수가 있다. 남과 다른 그런 것들은 우리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주어서 상대방의 마음을 쿰틀거리게도 하고 따뜻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은 아주 작은 것에 감동하고 그런 것들에 쉽게 물들고 쉽게 옮아 버린다.


지민이가 자주 말하는 그 말의 쓰임새를 요약하자면


상대방 말을 듣다가 그 말에 동의를 할 수 없을 때, 혹은 다수결 원칙으로 짬뽕이냐 짜장면이냐를 결정하려 들 때, 고모집에서 이틀밤을 자고 하루 더 자고 가라는 말을 들을 때(대부분의 경우 엄마와 싸우고 나온 날), 감기가 걸려(코로나가 끝났지만 그래도 남에게 피해가 갈 수 있어서) 학원을 빠질 수밖에 없을 때, 자기가 좋아하는 신발을 고모부가 사주겠다고 했을 때, 스스로 생각할 때 염치가 없다고 생각이 들 때(물론 남은 그런 생각이 아닌 경우가 많음)


이런 경우에 지민이는


"음 그건 좀 그래 " 하고 내뱉는다.


독백이기도 하면서, 들으라고 하는 의도도 조금은 있다. 그렇게 소심한 듯, 배려하는 듯, 무심한 듯, 대화하듯 읊어버린 그 말은 이상하리 만치 팽팽했던 긴장감을 풀어 주고 조금은 결정을 유보하게 만드는 마법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낸다. 마치 마법사의 주술처럼, 즉 생각을 조리 있게 길게 풀어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두 마디로 축약된 언어는 상대방의 마음을 더 강력하게 움직이게 한다.


지민이는 대체적으로 현재시제로 세상을 살아가는 맑고 투명한 아이다. 열여섯 살 중학교 삼 학년 이제 며칠만 있으면 고등학생이 된다. 옷을 좋아해서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옷을 좋아하는데 왜 커피숍 알바를 하느냐고, 옷가게에서 알바를 해야지 물어볼 수도 있다. 그래도 일반적이면서 보편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고 그나마 브랜드 평판도 옷가게보다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왠지 우아해 보였고 거기에 수업 후에 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지가 않다 보니, 추가적으로 시급까지 감안했을 때 최고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지민이는 중삼에서 고등학생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해진 학원수업과 학교수업을 빼먹지는 않는다. 아마 그건 쫌 그래에 위배돼서 인지도 모른다.


지민이는 요즘 자주 엄마와 언니와 부딪친다. 생각이 커져 가고 있는 것이다. 가끔 본인이 생각하는 세계와 엄마 아빠가 가르치는 세계가 달라서 난처해하고 그로 인해 힘들어한다. 지민이에겐 사고 싶은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한두 벌의 옷으로 만족이 안되다 보니 계속해서 옷을 사고 화장품을 산다. 그렇다 보니

난처해하고 힘들어하는 문제가 학업적인 일이든, 개인적인 일이든 지민이는 대체로 굉장히 일관성 있는 방식으로 난처해하고 힝 들어한다. 그렇다고 신세한탄만 한다거나 주저앉아 남을 비방하지도 않는다. 지민이는 스스로 못났다고 비관하지도 않고 학업 스트레스로 힘들어하지도 않는다. 그저 단순히 사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에 대한 물욕으로 꾸준하게 난처해하고 힘들어한다. 며칠 전에는 평소 생각하지도 않았고, 입 밖으로 내뱉어서는 안 될 말들이(본인도 그런 말을 한 자기가 싫어서), 자기도 모르게 나왔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지민이가 했던 말들이 지민이를 옭아매고 있었다. 물론 이야기를 들으면 그럴 수 도 있으려니 분명히 사고 싶은 게 많아서 힘들겠구나라고 토닥여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민이의 일관성이다. 활어처럼 펄덕이는 열여섯 살 지민이는 열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고,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이 항상 비어 있어야 하고,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막말과 애교를 번갈아 가며 하고, 이해심이 바닥날 때쯤 다정 어린 말과 행동으로 무장해서 헷갈리게 하고, 어느 장단에 어떤 모드로 대해야 되는지 알 수가 없지만, 모든 애벌레가 때가 되면 나비로 우화 하듯이, 지민이는 화려한 날개를 펄럭이는 나비가 될 것이다.


그 나이 열여섯 살 지민이는 활짝 피어나는 꽃처럼 예쁘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팔다리가 길어서 실제 키보다 훨씬 커 보인다. 멀리서도 눈에 확 뜨일 만큼 비율이 좋아 지나가다 어 한 번쯤 뒤를 돌아보게 한다. 거울을 보며 아 내가 예쁘네 스스로 감탄을 하며 두 바퀴 반을 돌고 미소를 짓는다. 꽃만 꽂으면 온전한 정신을 의심할 정도로, 지민이는 일관성 있게 자기 세계 속에서 일인칭 현제시점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머지않아 나비가 될 것이다. 지민이는 나비가 되려고 일관성 있게 꾸준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 마치 애벌레가 우화 하듯이,


난 일관성 있게 힘들어하고 난처해하는 지민이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어가고 있는 지민이를


참고로 이야기하자면


"그건 쫌 그런데"를 자주 말 하는 또 한 명의 여인이 있다.


속옷을 사거나 셔츠를 사거나 청바지를 사거나 사야 되는 어떤 거를 선택해야 될 때, 아내는 내가 고른 모든 것을 보며 이야기한다.


"이거 어때"

" 음 그건 쫌 그런데"


마치 매뉴얼처럼 저장해 둔 멘트가 나온다.

아내와 지민이는 같은 말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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