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은 내비게이션으로도 찾아갈 수 없는 곳에서 어린이집을 다녔다. 그곳은 지도에도 없는 곳이라 아이들의 마음으로 이름을 지어준 천국과 같은 곳이다. 그렇다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는 아니다.
우리는 그 당시에 아이들을 공동육아라는 어린이집으로 보냈다. 공동육아는 일반적인 어린이집과는 다른 곳이다.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사 년간 감나무 어린이집을 다녔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시골 아이들처럼 산과 들로 무리 지어 뛰어놀았다.
아이들은 오늘만 사는 현재시제로 지금을 살아간다. 아이들이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모여 노는 곳마다 이름을 지어 주었다. 수리산 작은 계곡물이 흐르다 잠시 멈춰 선 곳에는 호수 같은 물웅덩이가 만들어진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발을 담근다. 아이들을 불러 세운 물웅덩이 안에는 둥근 조약돌도 있었고, 개구리알과 도롱뇽알도 있었다.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은 도롱뇽알부터 관찰을 한다. 뭉글뭉글 물 위에 떠 위는 도롱뇽알을 손으로 만져 보기도 한다. 개구리와 물벌레를 잡기도 한다.
자기 힘으로 들기 힘든 바위를 들추고 알을 품은 가재를 잡는다. 아이들은 이곳을 퐁당퐁당이라고 이름 지어 주었다.
작은 계곡물이 흐르다 멈춘 곳 곳곳에 크고 작은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어서 아이들이 지어준 이름이 예쁘기만 하다. 또 다른 작은 계곡에는 가재마을 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 바위를 들추기만 해도 꼬리를 퍼덕이는 가재들을 잡을 수 있는 곳이다.
자연이 만들어준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하루종일 뜀박질을 하고 술래잡기를 하고 말뚝박기를 한다.
숲이 품어낸 공기들이 아이들의 호흡 안으로 들어온다. 아이들은 두 볼은 빨개지고, 콧물은 길쭉하게 흘러내린다. 그러다 보면 시간의 흐름을 잃어버리고 살아있는 시간을 온몸으로 담어낸다. 그렇게 오롯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 무럭무럭 행복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수리산의 바람과 나무와 흙과 물 식물과 곤충들은 우리 아이들을 흙의 냄새와 나뭇잎의 촉감과 꽃의 아름다움과 하얀 구름이 지나가는 풍경과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감동할 줄 아는 아이로 키워낸다. 참 훌륭한 선생님이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게 하고, 느낄 수 없는 것을 느끼게 하고, 작고 사소한 사물들을 보며 오감으로 감동할 줄 아는 사람으로 커나간다.
웅크렸던 씨앗이 움트는 계절이 오면 아이들은 온산에 퍼져있는 진달래꽃을 찾아 나선다. 진분홍 진달래꽃은 겨우내 답답했을 수리산에 색을 입힌다. 아이들에 마음에도 그 색이 온전히 입혀진다. 아이들은 진달래꽃으로 손톱을 물들이고 머리핀을 만들기도 한다. 연한 진달래꽃을 따서 입으로 가져간다. 누구 하나 가르쳐 주지 않은 것들을 아이들은 놀기에 바쁘다.
아이들의 눈동자에 계절이 녹아있어 온전히 시간을 담아낼 줄 안다. 한마디로 제철 놀이를 즐길 줄 아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이곳을 나무공장이라고 이름 붙여 주었다.
나무공장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근사한 나무텐트들이 많이 있다. 산기슭 주변 고목들을 모아서 유목민들의 텐트를 보기 좋게 흉내 내어 만들었는데 어찌나 근사한지, 지나치다 보는 날이면 하룻밤 이슬정도는 너끈히 피하겠구나 생각이 들 정도다.
아이들은 옆으로 길게 누운 나무등치에 나란히 앉아 머리 위로 쏟아지는 따뜻한 햇살을 맛보고 있다. 마치 식물이나 나무들이 꼭 필요한 영양소를 광합성하듯이, 햇살아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발아래로 지나가는 개미들을 관찰한다. 긴 나무둥치 위에는 곤충학자와 식물학자들이 모여 갈길 바쁜 개미와 봉우리진 진달래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아이들의 엉뚱함과 반짝이는 언어는 시가 된다. 아이들은 기린마을 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세상이 온통 무지개색으로 물드는 여름이 오면 아이들은 더 바빠진다. 아이들의 기운이 자연과 같아서 적당히 놀 것들을 찾아 수리산 이곳저곳을 찾아 헤맨다. 아이들은 물이 흐르는 소리를 좋아하고 바람소리를 좋아한다. 소리와 촉감에 민감해서 만지고 담그는 곳을 찾는다. 그리곤 흐르는 물을 찾아 퐁당퐁당 계곡에서 손을 담그다, 발을 담그다, 결국엔 온몸을 담근다. 머리끝까지 온몸을 적신 후에라도 아이들은 강아지 물 털듯이 준비해 온 수건으로 후르르 물기를 닦아낸다. 물 위에 나뭇잎을 띠우기도 하고 물속 벌레들을 잡기도 한다. 여름의 기운이 아이들을 살찌우는 데는 오직 햇볕 하나밖에 없다. 무더운 여름 햇볕 아래 아이들은 옥수수 커나가듯 쑥쑥 성장한다. 아이들은 이곳을 햇볕나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어느새 가을이 오면 아이들은 하얀 도화지를 꺼내 들고 나무를 그리고 나뭇잎을 그리고 그 위에 색칠을 한다. 나뭇잎을 모아서 침대를 만들기도 하고 여름에 만들어 놓은 나무텐트 안에 쌓아놓기도 한다.
아이들은 이름을 가지지 못한 곳에 이름을 지어 주었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지나치는 모든 곳에는 각자의 이름이 지어졌다.
돌들이 많은 곳엔 "돌숲"
나들이하기 힘든 장소엔 "다리 아픈 산"
나무들이 줄줄이 쓰러져 있는 곳엔 "감나무기차"
나무옆 큰 바위가 서있는 곳엔 "큰 바위놀이터"
거북이 등을 닮은 바위가 있는 곳엔 "거북이마을"
길게 드러누운 나무들이 있는 곳엔 "기린마을"
모두 아이들의 마음이 담긴 이름들이다.
수리산은 어느새 지도에는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되었다.
마치 인디언들이 자연에 자신들의 영혼을 담는 이름을 지어 주듯이,
아이들에겐 지도에는 찾아볼 수 없는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지어준다. 그렇게 마음을 담아서 사물에 의미를 더해주면, 더 이상 바위는 그냥 바위가 아니라 특별한 바위가 된다. 특별한 나무, 특별한 햇볕, 특별한 계곡이 된다. 그 장소들은 아이들에게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나 어린 왕자의 장미 가 되어 너에겐 없는 나만의 특별함이 된다.
아이들의 눈동자에 알알이 박혀있는 살아있는 시간들은, 그렇게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이 되어 아이들을 이끌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