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역국을 좋아한다. 밥맛이 없다거나 반찬이 따로 없어도 미역국만 있으면 밥 한 공기는 거뜬히 해치운다. 그렇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미역국이 먹고 싶어 지는 날이 있다. 미역국이 먹고 싶어지는 날은, 무슨 특별한 일을 했다던가, 그전날 술을 많이 먹어 해장을 해야 한다던가, 아니면 한국사람이면 꼭 한 번은 먹게 되는 생일날이어야 한다던가, 뭐 이런 것 하고는 상관이 없이, 난 불규칙적으로 , 이유 없이 미역국이 땡겨 즐겨 먹는다. 언제부터 미역국을 좋아했는지는 딱히 정리돼서 이야기할 수 있는 개제는 없다. 그냥 어느 날 친구 잔치집에서 그렇게 많이 차려놓은 음식 중에 왜 굳이 미역국만 두세 그릇을 들이켜는지 옆 사람이 물어볼 때라야 아 내가 미역국을 좋아하는구나 알 수 있었다. 결혼식 뷔페에 간다든지, 리조트나 호텔에서 식사를 할 때에도 값비싼 고기와 해조류나 생선회보다는, 백반집에서나 가끔 나오는 미역국을 먼저 먹는다. 그럴 때면 매번 같이 온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핀잔을 늘어놓는다.
"아니 왜 미역국을 떠 왔어 고기부터 먹어야지!"
나의 미역국 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는 여름엔 오이지 보다 미역냉국을 더 자주 먹는다. 정확히는 미역냉국을 미역국보다 더 많이 먹는다고 말해야 맞겠지만, 그렇다 보니 미역냉국을 자주 내놓는 골목길 안쪽에 있는 할머니분식집을 더 찾게 된다. 할머니분식집은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골목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자주 드나드는 단골들은 그 새 얼굴 정도는 익히게 된다. 그건 일면식도 나누지 않은, 한마디로 남남인 사이지만, 그분들 중에서는 분명 미역냉국과 미역국이 좋아서 단골이 되신 분들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 때면
묘한 동료애까지 생기게 된다.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것들로 쉽게 동질감을 느끼고, 같은 부류의 취미나 먹거리라도 알게 되었을 때는 호들갑을 떨며 동호회라도 만들 기세로 호감을 표현한다.
"아 당신들도 미역국을 좋아하시군요 "
어렸을 때는 당연하겠지만,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을 먹었다. 아마도 그때는 내가 미역국을 좋아하는지 어떤지도 모르고 엄마가 해주는 대부분의 음식을 군소리 없이, 아니 정확히는 너무 맛있어서 아무 국이나 해주는 데로 먹었다. 다시다라는 마법의 가루가 들어간 모든 음식은 그렇게 맛있는 감칠맛으로 우리 입맛을 사로잡았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건 아버지의 식성이었는데, 아버지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미역국을 너무 싫어하셔서 미끄덩한 미역줄기 타박을 하곤 하셨다. 이상한 건 대부분 이렇게 중요한 입맛은 유전이 된다던가, 식성이 따라가기 마련인데, 어찌해서 내가 아버지가 싫어하는, 그래서 엄마가 자주 끊여 내 놓지도 않던 미역국을 내가 좋아하게 됐는가 하는 것이다. 아마도 내 입맛이 이상했던 것 같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린 시절을 같은 밥상둘레에서 컸던 형이나 누나 동생도 딱히 미역국을 좋아하지는 않는 거를 보면 알 수 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미역국이 좋아졌는가에 대한 시원한 정답을 유출해 내는 데는 실패를 했다. 그렇게 대학을 가고 자취와 하숙을 거쳐 드디어 결혼을 하고 나서야 그 어느 때쯤 난 미역국을 이상하리 만치 최애하는 음식이 되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아내가 내가 좋아하는 미역국을 끓여 주지는 않는다. 그건 내가 미워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덜 사랑해서도 아니다. 다만 아내의 기호와 내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내는 국을 끓이지 않는다. 마른반찬에 꼭꼭 오십 번 씹어서 삼켜야 하는 현미밥과 반찬가게의 반찬과 아이들을 위해서 건강한 식자재로 심심하게 간을 맞춰 반찬을 만든다. 아마도 난 이런 생태환경에 살아남기 위해, 아니 그냥 미역국이 너무 먹고 싶어서, 어느 순간부터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나는 미역국이 먹고 싶어질 때면 주방에서 큰 냄비를 꺼낸다. 10리터가 넘는 스테인리스 냄비는 너끈히 일주일 분량의 미역국을 끓이기에 안성맞춤이다. 우선 퇴근하면서 시장을 본다. 시장바구니엔 신선한 미역과 국거리용 쇠고기와 멸치육수팩과 양파 한 망을 담는다. 멸치액젓과 참기름과 다진 마늘은 냉장고 안 조미료함에 있는걸 어제저녁 확인을 했다. 그쯤 되면 벌써부터 미역국의 감칠맛이 침샘을 돗구어 놓는다. 통제불능이 되어버린 식탐이 아드레날린의 분출을 당기고 있다. 우선 손을 씻고 멸치육수팩 두 봉지를 냄비에 넣고 조리대 위에 그날의 재료거리를 올려놓는다.
인덕션 버튼을 누르면 멸치육수가 달여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날의 주인공 미역을 조심스럽게 꺼내 찬물에 담가 놓는다. 그사이 주먹만 한 양파 하나를 다듬어 놓는다. 그리고 프라이팬을 꺼내 참기름 두 큰 술을 두르고 찬물에 불려놓은 미역을 프라이팬에 올린 후 약불에 조금씩 들쳐준다. 국거리용 쇠고기는 핏물을 빼고 끓여서 쇠고기육수를 멸치육수에 같이 부어준다. 양평 두물머리처럼 멸치육수와 쇠고기육수가 만나 절묘한 황금레시피로 거듭나게 된다.
쇠고기는 그대로 프라이팬 위에 미역과 같이 살살 볶아 주다가 멸치액젓 두 큰 술과 국간장 세 큰 술을 넣은 후 다진 마늘 두 큰 술을 넣는다. 미역과 쇠고기에 멸치액젓과 국간장과 다진 마늘이 간이 배게한 후 준비된 육수에 넣어준다. 그리고 주먹만 한 양파를 같이 퐁 넣어준다.
이때부턴 중불로 한두 시간 끓여준다.
중간중간 맛을 보고 멸치액젓과 국간장으로 조금씩 부족한 감칠맛을 더해준다. 마지막으로 다진 마늘도 조금 넣어준다. 양마한알이 달짝지근한 감칠맛을 잡아 줄 것이다. 이때쯤 되면 아이들은 방에서 나와 아우성을 친다.
"아빠 냄새가 좋은데 국물 맛 좀 보자"
"아빠 국물맛이 끝내주는데 밥 말아먹자 김치 꺼낼게"
쌍둥이들은 미역 한 사발을 후루룩 순삭 한다. 딱 그때쯤이면
방에서 뜨개질하던 아내가 소리를 지른다.
"오빠 내 미역국도 있어"
이렇게 되면 일주일치의 일요 할 양식이 준비가 된다. 늘 사람은 발전하는 법, 식탐의 본능은 나로 하여금 멸치육수로 만들 수 있는 된장국과 아욱국을 번갈아 가며 끓일 수 있는 능력까지 만들어 주었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마라탕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다 보니 피해 갈 수가 없다. 아마 곧 맛있는 마라탕이 준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