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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 한 봉지

외할머니 이야기

by 둥이


박하사탕을 먹는다.

박하사탕을 먹으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누구나 작고 사소한 물건에 그들에 소박한 이야기가 담겨 있듯이,

박하사탕에는 외할머니의 포근한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다.


누구에게나 박하사탕과 같은 달콤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아마도 산다는 건, 아주 단순한 이야기인지 모른다. 그런 소박한 이야기들로 엮어진,


외할머니에 손에는 까만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비닐봉지가 앞뒤로 흔들릴 때마다 달콤한 설탕 냄새가 풍겨났다. 누가 뭐라 해도 그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냄새였다.

개미와 꿀벌들이 떼를 지어 모여들듯 우리는 까만 비닐봉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까만 비닐봉지 안에는 하얀 가제 손수건이 두 갈래로 묶여 있었다. 마치 누나의 머리카락처럼 두 갈래로 땋여 있었다. 외할머니는 한참을 뜸 들여 둘 갈래로 묶여있던 가제 손수건을 풀어 내놓았다. 그 안에는 동그란 무지개 사탕과 갈색 약과와 노란 인절미 그리고 팥고물이 묻어있는 시루떡들이 들어 있었다. 외할머니는 우리에게 하나씩 사탕을 쥐어 주었다. 외할머니는 무지개 사탕을 나에게 주었다. 난 손바닥만 한 무지개사탕보다는 하얀 사탕을 달라고 했다. 외할머니는 그건 맛도 없고 네가 먹기엔 혀가 따갑다고 했다. 난 그래도 한입에 먹기 쉬운 하얀 사탕을 달라고 했다. 내가 그 하얀 사탕을 달라고 한 이유는 먹기 쉬운 것보다는 어금니로 한 번에 콱 힘을 주면 쉽게 부서져서 더 많이 먹을 수 있어서였다. 내 기억 속에 외할머니는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어느 날 불쑥 나타나 박하사탕 한 봉지를 던져 주었다.


외할머니가 손에 쥐어줬던 그 하얀 사탕이 박하사탕이라는 걸 내가 알았던 건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고 나서였다. 외할머니 주머니에는 언제나 박하사탕이 들어 있었다. 담배를 피웠던 외할머니 주머니에 언제나 사탕이 들어있었던 이유를 알게 된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담배를 피우고 나서였다. 박하사탕을 까먹으면 입안 전체가 시원해진다. 마치 목에 파스를 붙여 놓은 것처럼, 침이 넘어가는 기도 안까지 시원해져서, 한동안은 담배생각이 나지 않는다.


연년생이었던 누나는 유년기를 외할머니집에서 보냈다. 외할머니는 다 죽어가던 어린 여자아이를 건강하게 되살려 집으로 보내주었다. 아마도 누나에게 외할머니의 존재는 박하사탕 이런 것으로 설명되어지지 않은 다른 감정일 것이다. 어쩌면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건 비교가 되지 않는다. 모두가 다른 외할머니를 기억하고, 또 자기만의 감정을 간직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나에겐 그 특별함이 박하사탕이었다. 그건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도 외할머니를 생각나게 해주는 아주 사소한 물건들이 있기 마련이다. 누나에겐 다른 것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마 같이 찍은 사진일 수도 있고, 조암 외갓집의 기억일 수도 있다. 물론 더 찾아본다면 박하사탕 보다 더 많은 사연이 깃들것 들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일이다. 박하사탕 이라니 그건 좀 그렇지 않나 하는 미안함도 든다. 그래도 이런저런 것들 보다 더 박하사탕 한 봉지는 통째로 훅허니 기억을 불러온다. 마법지팡이로 톡 하고 쳤을 뿐인데,


요즘 박하사탕은 시골 중국집이나 가야 가끔 볼 수 있는 희귀품이 되었다. 그렇다고 마트나 편의점에서 없어진 것도 아니다. 박하사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딘가에는 있기 마련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요즘도 기사식당이나 골목 분식집에 가면 계산대 옆에 덩그러니 놓인 박하사탕을 가끔 볼 수가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설탕 가루가 떨어지는 박하사탕을 조심스럽게 꺼내 입안으로 쏙 밀어 넣는다. 외할머니 가제 손수건에서 꺼낸 그 맛은 아니지만, 식사 후 남아있는 음식맛을 지우기에는 그만한 것이 없다.


혀끝으로 스며드는 싸리 한 그 맛은 오랜 시간도 지나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맛 좋은 다른 사탕들을 먹는다 해도, 다른 무엇으로 바꿔지지 않는다. 고향의 맛이란 건 이런 후각과 미각에 남아있는 기억들일 것이다. 절대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냄새와 맛은 푸르스트 효과를 가져온다.


카라플레토니의 감각의 미래라는 책에 보면 인간이 감지하는 다섯 가지 감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카라플레토니는 후각과 미각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기억과 감정을 소환하는 향"


눈을 통해 들어오는 시각정보는 가장 많은 정보를 분석하고 수집하지만 후각이나 미각만큼 오래도록 기억 세포 속에 저장되어지지 못한다.

후각과 미각은 영유아 때부터 뇌기억세포인 하마에 저장된다. 그 이유는 적자생존이나 진화론적으로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뇌의 선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달리 말하면 고상한 이론적, 학문적 이유가 별로 없다는 말과 같다. 뇌가 그렇게 선택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수없이 밀려드는 시각정보들은 분석이 끝나는 데로 대부분 지워버리고, 냄새와 맛은 오래도록 기억저장세포에 남겨 둬야 하는 이유가,


참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박하사탕은 나에게 오래전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생각나게 만든다. 박하사탕 속에 스며있는 그 맛을 잃어버리지 못하는 건, 박하사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박하사탕 안에 콕 박혀있는 외할머니의 사랑이 박하사탕보다 더 맛있어서 인지 모른다.


지금도 난 너무 일찍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자주 생각이 난다.


그럴 때면 난 박하사탕을 꺼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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