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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 1

아이들과 목욕탕 가기

by 둥이


누구에게나 버킷리스트는 있다.


거창하게 버킷리스트 정도는 아니어도 평소 해보고 싶은 것들은 한두 가지씩 있기 마련이다. 그것마저 없는 사람이라면 잘은 모르겠지만 이상한 사람이거나 세상에 기대하는 게 없는 심심한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것들은 남이 이해할 수 없는 아주 소소한 것에서부터 누구나 한 번은 꿈꾸는 엇비슷한 것들까지, 그야말로 자기가 원하는 것들이야 정해져 있는 게 아니어서 마음 가는 데로 정하면 된다. 나에겐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어쩌면 그런 것들은 내가 게을러서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일단 마음을 다잡고 그리고 세부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서 하고 싶은 것들에 시간과 돈을 들였다면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고 보면 중요한 건 그 처음 시작, 마음먹기부터가 이런 이유와 저런 사유가 겹쳐 완벽한 핑계로 만들어진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그렇게 해보고 싶었던 쉬운 일중에 하나가 아이들과 동네 목욕탕을 가는 일이었다. 그 쉬운 일을,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그곳을, 아이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 돼서야 갈 수 있었다. 우선 핑계를 대자면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들어갈 즘 코로나가 발생했다는 점과 쌍둥이 아둘이 아토피가 있어서 대중목욕탕에 다녀오면 더 안 좋아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한 이유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그러니까 이 주 전 아이들은 성당 단짝 친구인 준서의 제안으로 준서네 아빠와 같이 동네 목욕탕을 다녀왔다. 어찌 보면 굉장히 이상한 장면일 수도 있겠지만, 준서아빠는 흔쾌히 우리 아이들까지 데리고 동네 목욕탕으로 데리고 갔다. 우리 아이들은 리조트에 붙어있는 사우나탕은 몇 번 다녀던 터라 때수건으로 때를 밀어야 되는 곳, 그래야 온몸이 시원해지는 곳이었던 목욕탕은 새로운 문화체험장이 되었다. 아이들은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고 물온도가 적당한 중탕에서 수영을 하고, 건식사우나와 습식사우나를 준서 아빠 따라 멋지게 들어갔다가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오고, 그리곤 아예 중탕에서 세숫대야 두 개를 겹쳐서 튜브를 만들고 놀기까지 하다 보니 한 시간이 넘도록 중탕에서 손가락이 쪼글쪼글 오글아 들기까지 했다. 아이들은 준서아빠와 목욕탕을 다녀온 후 틈만 나면 목욕탕을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오늘 설연휴가 시작하는 주말 오후에 난 아이들과 동네 목욕탕을 찾았다. 기대했던 익숙한 풍경과 냄새가 나를 반겨 주었다. 명절 전이라 그런지 목욕탕 안은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쌍둥이 아들들은 한번 와봤다고 이리저리 나를 데리고 다니며 자랑을 한다.


우리는 드디어 목욕탕 의자에 나라이 앉아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서로의 등을 밀어주었다. 나는 주완이의 등을, 주완이는 지완이의 등을, 빨간 때수건으로 뽀드득뽀드득 밀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등을 바꾸어서 주완이는 아빠등을, 지완이는 주완이 등을 때수건으로 밀어주었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장면이 만들어졌다. 그 순간 난 너무 행복했다. 버킷리스트 한 가지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아주 사소한 일일수 있다. 대단한 일도 아닐 수 있다. 그냥 평소와 다를 게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어느 날, 매번 같은 하루를 살아가다가 , 조간신문 읽듯 우리 목욕탕이나 갈까 하며 따라나선 그런 소확행 같은 거라, 아마도 행복은 그런 거라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한참을 중탕에서 수영을 하다 건식사우나를 들어갔다. 아이들은 한번 데인 경험이 있던지라 쉽사리 따라 들어오지 못한 채 유리문 밖에서 아빠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건식사우나를 나와서는 차가운 냉탕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것도 꽤나 멋지다면 멋진 일이다.

그렇게 목욕을 끝내고 아이들과 옷을 갈아입고 구운 계란 세 개를 사서 먹었다. 목욕탕에서 까먹는 구운 계란의 맛은 해발 1000m 등산로에서 먹는 사발면맛과 견줄 정도로 맛이 좋다. 그렇게 목욕을 끝내고 우리는 이미 약속이 돼있는 전주콩나물국밥 집으로 향했다. 오늘 코스는 모두 지완이가 미리 정해둔 코스인데 어떻게 아빠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정한 건지 너무 예뻐서 연신 뽀뽀를 해주었다. 주완이는 맑은 콩나무국밥을, 난 김치콩나물국밥을, 지완이는 떡만국을 시켰다. 그것으로 부족했던지 주완이가 널찍한 부추전까지 시켰다. 아이들은 배가 고팠던지 가마만 보일 정도로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먹었다. 그때도 난 많이 행복했다. 아 정말 좋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 계속 피어났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배가 불러오는 느낌은 언제나 행복을 불러온다. 그땐 말이 별로 필요 없다. 연신 감탄만 하면 된다. 목욕탕에서도, 국밥집에서도, 우리 삼부자는 뜨거운 것을 앞에 두고 시원하네를 계속 계속 말할 수밖에 없었다. 버킷리스트를 한다는 게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주완이가 후식으로 선택한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집으로 들어갔다. 그 역시 시원한 맛이다.

오늘은 하루종일 시원해지는 것들로만 채워진 알찬 하루였다.


이렇게 나의 버킷리스트 한 가지가 이루어진, 너무 시원하기만 했던 하루, 난 오늘 아이들과 동네 목욕탕을 다녀왔다. 역시 행복은 가까운데 있다.

그리고 행복은 만들어진다기보다는

선택되어진다는 말은 언제나 진실임을 다시 한번 알게 해 준 나의 아들들에게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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