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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별 났던 친구

친구 이야기

by 둥이


중학교 때 좀 유별 났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지금 생각해도 "그래 그 친구는 좀 그랬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정도로 유별난 친구였다. 특이하다고 해야 되는지, 이상하다고 해야 되는지 정확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그냥 남들과 많이 다른 축에 속했다. 그런 건 쉽게 남들로 하여금 그 친구를 구분되게 만들어주는 재능이었다. 그런 타고난 재능 덕분인지 어디서나 친구들은 몇 명만 모였다 하면 그 친구의 그런 재능을 이야기했다.


남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은(내가 생각하기에 이상했던) 대충 이런 것들 이였다.


중학교 때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란 만화책이 있었다. 그 만화책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때는 만화가게에 가서 돈을 내고 만화를 봤다. 그 친구는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까치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옷차림새와 말투와 걷는 모습까지 까치를 따라 하곤 했었다. 너무 간절히 까치를 닮 아기길 바랬고, 어느 순간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다. 여기서 까치란 남자 주인공 별명인데 머리가 항상 들떠있어서 까치라고 불렸다. 물론 중학생의 그런 모습은 아주 귀엽게 봐줄 수 있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까이서 그 친구를 보고 있는 사람 입장이라면, 모 저런 애가 다 있나 싶을 정도로, 혼자 우울해한다거나, 청자켓의 카라를 세워 입는다거나(보통사람이라면 잘 입지 않는 청청 패션),

툭하면 눈에 힘을 주고 주먹질을 해볼 량 달려든다거나,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일탈과 탈선 같지 않은 탈선들을 쫓아다니며 하고 있었다. 그런 행동들은 다행히 담임선생님 눈을 피해 교묘하게 해내곤 했지만, 가까운 거리에 있던 친구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까치 같지 않은 까치가 까치 흉내를 내고 있다는 걸,


또 하나는 그 친구는 한 여자아이를 좋아했다. 이것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런 연애사는 그 만화책 줄거리와 비슷하게 흘러갔다. 그 여자아이는 반에서도 늘 공부를 잘하고 단정한 모범생이었고 또 집안도 좋은 부잣집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그때가 밸런타인 데이였는데 그 당시만 해도 밸런타인데이는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날이었지만, 그 여자아이는 분명 그날이 여자가 남자한테 쵸코렛을 주는 날이라고 알고 있다는 듯, 학교 수업이 시작하려고 하는 그 어수선한 시간에, 마치 영화에 한 장면처럼 커다란 선물상자를 들고 그 친구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아이의 동선을 따라 움직였고, 선물이 그 친구 책상 위에 탁하고 놓이는 순간 아이들은 소리를 질렀다. 아마 그때부터였는지 모른다. 그 친구는 그 부잣집 여자아이, 항상 공주처럼 차려입고 다니는 그 여자아이만 생각하고, 만화 속 여자주인공 엄지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애끓어했다. 그 친구의 첫사랑은 점점 만화 속 여주인공처럼, 다가서기엔 먼 당신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되어갔다. 그럴수록 그 친구의 서툰 반항심은 더 커져갔다.


그 친구는 또래 친구들보다 할 수 있는 작은 탈선 면에선 언제나 앞서 나갔다. 마치 그런 것들이 훈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랑하듯 이야기했다. 마치 그런 것들을 해야만 되는 분명한 이유라도 있는 사람처럼,


그런 것들이라고 해봤자,

"너 그런 것 해봤어, 너 만화방 가봤어, 난 동대문도 가봤고 거기서 옷도 샀어, 너 여자 친구랑 손 잡아봤어 "


우리는 늘 그 친구를 통해 서양 문물을 접해 보는 구한말 사람처럼 물들어 갔지만, 그 친구가 싫지만은 않았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작은 도장집과 인쇄소를 하였는데 인쇄소라고 해봤자 한 장씩 낱장으로 광고나 전단지가 나오는 기계였다. 그래도 그 친구는 자기가 도시에서 사는 부잣집 아들이라고 생각을 했고, 항상 나를 시골에 사는 농사짓는 아버지가 있는 가난한 집이라고 생각을 했다. 마치 그것이 대단한 계급이라도 되는 양 생각하는 그 친구가 난 이상한 놈이라고 늘 생각했다. 그런 것 말투나 행동에서나 자연스럽게 배어 나와서 자기가 이런 사람이란 걸 은연중에 비춤으로써 자기와 내가 다르다는 걸 자랑하곤 했다.


한 번은 친구들이 명절 때나 방학 때 할머니집으로 간다고 이야기할 때가 있었다. 그 친구는 자기는 집이 도시라 집에 있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한 친구가 대뜸 "야 오산이 무슨 도시냐 시골이지 도시는 서울이야" 물론 틀린 말이 전혀 없는 아주 깔끔한 문장이었지만 이 친구는 자기가 사는 도시가 순간 시골로 이야기되는 게 끔찍이도 싫었던지 소리를 질렀다.

"난 도시에 살아 시골이 아니라고 "


그냥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이야기였는데 그 친구는 화가 났고 소리를 질렀고 가진 밑천을 다 드러내고야 말았다. 그 친구에게 도시는 그런 의미로 사용되는 소중한 거였다.


그게 이상할 일도 아니지만, 그 친구는 그런 것들이 자기가 가진 자랑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 당시 친구들끼리 모여서 자주 10원짜리 카드놀이을 하곤 했는데, 그건 모 노름이라고 할 수 도 없는 거였다. 하지만 그 친구는 그 카드놀이에 마치 자기 인생의 운이 모두 걸린 사람처럼, 온 감정을 실어 몰입하곤 했다. 그렇다 보니 조금이라도 돈을 잃는 날이면, 나라가 망한 사람처럼 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체, 자기는 왜 이모양인지 모르겠다며, 친구들한테 투덜거리는 게 일쑤였다. 그러다가도 가끔 드문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따는 날에는 만세 삼창이라도 부를 기세로 눈빛에 힘이 들어가면서 거드름을 피웠다. 본인은 잘 모르지만, 그런 건 아주 쉽게 남들 눈에 보인다. 그런 건 쉽게 숨겨지지 않는 본성들 이여서, 그런 작은 것들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해 준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십 년 전쯤, 호주에 사는 친구가 한국에 잠깐 들른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리조트에서 만나 술 한잔 하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난 그 유별난 친구가 크게 변하지는 않았구나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 사는 게 어떻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유별난 친구는 친구 소개로 구미에 있는 대기업 생산직에 다니고 있었다.


그때 호주에 사는 친구가 물어보았다.


"넌 시골에 사니까 살 긴 좋겠다"

"물가도 싸고 집값도 싸지."


이 말에 기분이 상했던지 그 친구는 대뜸 큰소리로 이야기했다.


"야 구미가 무슨 시골이야 대도시지 거긴 집값도 비싸 대기업들이 많아서 "


친구가 했던 말이 그런 말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니란 걸 몰랐을까? 그 순간 유별난 친구는 변한 게 별로 없다는 걸 그날 모인 친구들은 알게 되었다.


지금도 일 년에 한두 번은 카톡으로 인사를 나누는 사이지만, 그 유별난 친구는 언제까지나 도시에서 도시남자로 살아갈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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