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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알렝드보통의 불안과 나의 불안에 대해서

by 둥이

난 알레드 보통의 "불안" 이란 책을 십삼 년 전에 처음 읽었다. 이호선 선릉역 4번 출구 앞, 작은 책자들 속에 섞여 있는 책표지가 빨간색 이었던, 그리 두껍지 않았던 책을, 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 책을 샀다.


선뜻 지갑에서 지폐 두장을 꺼내 (그 당시 내가 아내에게 받던 용돈에 비하자면 매우 큰돈을) 계산을 하고 거스름돈을 되돌려 받은 후 책을 들고 늘 걷던 선릉으로 산책을 갔다. 그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선릉 안으로 들어가면 고양이 몇 마리가 자기 집인 양 텃세를 부리는,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장소가 몇 군데 나온다. 난 그중에 한 군데를 서성이다 고양이의 눈치를 봐가며, 그나마 성질이 온순해 보였던, 흰둥이(내가 붙여준 이름; 그날 이후 나만 보면 야옹거림) 옆에 자리를 잡고 순식간에 불안을 읽어 나갔다. 책 읽기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지금 이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순식간에 유체이동이 되게 해 준다.


거짓말처럼 생각이 희미해진다. 분명 방금 전 까지는 모든 것들이 급했던 것들이었는데, 도무지 책을 접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문장만 더 읽고 가야지, 아니 두장만 더 읽고 가도 충분해, 에이 한 시간만 늦게 들어가자, 그날 따뜻한 햇살 좋은 의자에 앉아, 고양이의 날카로운 시선을 뒤로한 채, 알랭드보통의 불안을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읽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 소리는 순식간에 불안과 다급한 현실을 한 낯 퍼붓는 소나기처럼 몰고 왔다.


그때 세상을 알아가는 서른아홉 살이었고, 회사 중간 관리자로 직급은 차장이었고, 어느 조직에 있든 그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모두들 죽어라 일에 파묻혀 지내던 시절이었던 것에 비하자면, 그것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일을 했다고 기억되는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무엇이든지 그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자신이 가진 능력 이상으로 달리거나, 또는 계획을 세워 꾸준히 달려 나가는 중에는 자기의 페이스에 대한 객관성보다는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여 방향을 정하기 때문에 그때는 앞을 선명하게 볼 수가 없다. 그냥 모든 걸 운에 맡긴 채 달리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 책을 누구에게 소개받은 것도 아니었고, 그 작가가 누구였는지도 정확히는 몰랐지만, 두 글자의 책 제목이 나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아마도 그때는 부정은 했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쉴 새 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불안했고, 그로 인해 허둥대며 불안을 지우려 삶에 동아줄을 잡으려 돌아다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불안을 없애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아침 안개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누군가 샴페인을 흔들어 펑하고 터트려 줄 것만 같았다.


그 시절 나는 ♡사 대기업 판매팀에 다니고 있었다. 어찌 보면 그것도 전 직장에서 업무적으로 인연이 있는 임원분이 내게 손을 내밀어 주어서 잡은 자리였다. 운 좋은 이직이었다. 생각해보면 정식적인 절차와 면접을 받고 들어간 자리는 아니었다. 알고 지내는 동안 겪었던 나의 능력이 충분히 검증이 되었다고 판단이 된듯했다. 몇 개월간의 컨설팅 상근직 이후 정직원으로 채용을 해주겠다는 조건이었다. 그 조건 자체는 크게 나쁜지 않았다. 전 직장보다 급여도 높았고, 복지 수준도 좋았다. 그렇게 서울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고, 그런 생활이 삼 년이나 이어지고 있었다. 난 컨설턴트라고 하는 상근직 이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정직원으로도 전환이 가능하였기에(그러고 싶지는 않았음), 고용 형태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직원들과의 소통에서 회의감과 괴리감이 들기 시작했다. 정직원들의 카르텔 속으로 스며들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게 나에게 어떤 불안감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정직원들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들만의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른다. 매일 계속되는 매출 압박과 고객사 컴플레인을 대하는 유연한 자세와 내부 정치를 하느라 원치 않는 여러 술자리에 불려 다니느라 거의 매일을 술자리에 참석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일 년에 두 번씩 토익성적을 제출하고, 거의 모든 고객사가 외국회사였기에 사무실 안은 일본어와 중국어와 영어 그리고 드물긴 하지만 가끔 프랑스와 베트남어까지, 대부분 삼개국어 정도를 구사해야만 서울 사무실의 자리 한 칸을 지켜낼 수가 있었다. 난 그야말로 이런 조건에 부합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적어도 영어만큼은 유창하지는 못하더라도 걸려오는 전화정도는 받아야 되거만, 나를 찾는 고객사는 대부분 한국 고객사였다.

그런 야생과 같았던 정글에서 단지 기술력과 영업능력 만으로 난 견뎌내야만 했고 실제로 그렇게 버텨낼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그 삼 년이라는 시간은 알레드보통이 이야기한 불안, 그 불안이 가득 찼었던 시간이었다.

실패할 것만 같은 두려움, 보이지 않는 미래, 닳아서 없어진 것 같은 희미한 용기.


그때는 12층 사무실의 버튼을 누르고 매층 마다 내리는 사람의 숫자를 미리 생각한다거나, 몇 층은 서지 않고 그냥 올라갈 거야 하는 생각에 그날 하루의 운을 걸었던 적도 많았다. 그 시절 나는 이상한 것들에 편집증 환자처럼 몰입하여 내가 가진 행운을 걸 때도 많았다. 홀수층과 짝수층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의 숫자에 가진 운을 걸어보기도 하고, 12층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켰을때 버그 없이 한 번에 로그인이 되었을 때는 이번 달 매출 오더가 올 거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고, 점심시간 선릉역에서 맞은편 선릉으로 산책을 다녀올 때는 지하보도의 구간선을 밟지 않으려 왼발 오른발의 보폭을 조정하기도 했다. 혹시라도 구간선을 밟기라도 하는 날엔 전무님과 추진하는 투자설명회가 사라지는 거는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번쩍 드는 날엔 사무실로 걸어오는 동안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보도와 보도블록 구획선들을 단 한 번도 안 밟고 가기 위해 보폭을 춤을 추듯이 왼발과 오른발의 스텝을 공중에서 바꿔가며 걸어던 적도 많았다. 안 그래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그것마저도 안 한다면 교회라도 가야 할 것 같았다.

마치 그렇게라도 하면 어느 순간 장마가 걷히고 먹구름이 사라지듯이 내 인생에 좋은 일들만 생길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본 여성들의 뒷모습이 단발이거나 장발이거나에 운을 걸어보니도 하고, 지하철 사호선으로 갈아타는 환승역에서는 숨을 참고 환승역까지 걸어가는 것에 가진 판돈을 다 걸기도 했다. 눈을 감고 떴을 때, 앞에 달리는 자동차가 택시이기를 바라 보거나, 그래서 그 택시가 회색이기를 바라본 적도 있다.

그보다 더 운이 좋다면 그 택시가 경기도 택시이기를 바랐던 적도 많았다. 수영을 할 때면 물속에서 숫자를 세다가 100을 셀 때까지 참을 수 있어야 했고, 회사 주차장에 아홉 시까지 가면 주차할 곳이 한 곳은 언제나 비어있어야 된다는 것에, 이런저런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것들에 미래의 운을 걸어 보기도 했다.


만약 그 모든 바람들에서 한두 가지라도 운 좋게 되는 날에는, 계획했던 모든 사업계획들이 왠지 잘 풀릴 것만 같아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가 그렇게 불안해진 이유는 아마도 어느 날 전무님이 사장 진급이 힘들다는 걸 알게 된 후 자기 퇴임에 맞추어 같이 사업을 하자고 제안을 했던 그 이후부터였다. 별로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난 좋다고 했다. 어차피 부서장이 바뀐다면 난 계속 남아 있는다고 해도 힘든 정직원 생활을 버텨내다, 결국 해고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더 힘들다고 하는 작은 중소업체로 옮겨갔다. 전무님과 함께 내 인생의 모든 운을 사업에 걸게 되는 순간이었다.


늘 그렇듯 네 잎 클로버는 알 수 없는 장소에, 기대하지 않은 시간에, 그것도 북쪽에서 귀인을 만나듯, 행운을 물어다 준 사람이, 나를 잘 아는 지인이거나, 혹은 나의 숨겨진 능력과 열정에 그 사람의 운을 모두 건 갬블러 이거나, 우리는 어느 날 우연히 네 잎 클로버를 손에 쥐게 된다. 마치 거짓말처럼,


알레드보통은 모든 불안은 욕망의 결과라고 했다. 그 말은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핵심을 툭 건드리고 있다.


나는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시기에는 그 어떤 자리에서도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주 작은 골칫거리가 큰 사고가 되기도 했고, 해결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투자 회사의 결정도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투자하겠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깜깜하기만 한 했던 나의 인생이, 어느 순간 거짓말 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급하게 유턴을 틀고 뻥 뚫린 고속도로에서 밟을 수 있는 최대시속으로 달려가는 자동차처럼, 어느 순간 나는 경주마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톰행크스 주연의 영화 프래스트 검프처럼,


달리는 그 순간부터 이상하리 만치 불안은 옅어져 갔다. 불안은 빈도와 밀도면에서 현저하게 빈사 상태가 되었다. 그 정도라면 불안은 더 이상 불안이라 불려지지 않았고 그냥 저녁 뭐 먹을까 정도의 소심한 걱정으로 변해갔다.


불안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걸 욕망의 변화와 상대적 빈곤감에서 벗어났다는 걸로는 잘 설명이 되지는 않지만, 요즘도 회사 매출이 안 좋은 달이면 스산히 불안해지긴 한다. 하지만 한 사람을 넉 다운시킬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진 않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게 있다.

떠오르는 생각을(불안과 같은) 지우게 하고 나를 굴복시키고 이 세계로부터 다른 세계로 나를 데려다주는 것,

그건 내가 좋아하는 책 읽기와 글쓰기다.


생각을 잡아맬 수 있게 해 주는 것,

절대 움직이지 않는 바위에 칭칭

동여맬 수 있게 해주는 것,

책 읽기와 글쓰기가 내 옆에 있어서 나는 불안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지금에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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