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생일 이야기
아내의 생일을 잊어버렸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건 꿈일 거야 나는 계속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혹시 달력이 잘못되었거나 단체로 몰래카메라라도 찍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떡해서든 이런 상황의 착오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달력을 다시 확인해 보고, 음력으로 오늘이 며칠인지를 두 번 세 번 확인을 했다. 아무리 확인을 해도 혐의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루 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다행히 쌍둥이 아들들은 케이크부터 사야 된다며 나를 진정시켰다.
아내의 생일이 음력 1월 12일, 그렇니까 정확히 2월 9일 일요일이었다. 난 그날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날은 기분 좋은 일요일이었다. 여덟 시 삼십 분경 애들과 같이 일어났다. 겨울 햇볕이 거실 깊숙이 들어오고 있었다. 햇볕이 좋아 집안 청소를 한 시간가량 한 후에 햇볕 주변으로 열개가 넘는 화분들을 옮겨 놓았다. 햇볕 쬐기 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초록 식물들 옆에서 커피를 마시며 나도 식물들처럼 햇볕 쬐기를 했다.
아내는 잠을 잘 못 잤는지, 얼굴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눈치가 빠른 남편이었다면, 아내 생일을 잘 챙기는 남편이었더라면, 아침에라도 아내의 표정을 보고, 아 오늘이 무슨 날인가를 생각해 냈어야 했다. 하지만 난 아내의 기분이 아침부터 좋지가 않구나 몸 조심해야겠다. 애들 깨워서 빨리 밥 먹이고 숙제들 시키고 신경 쓰는 일 없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설거지를 하고 애들 밥을 챙기고 있었다. 아내는 11시 교중 미사를 보겠다고 10시도 안 된 시간에 집은 나섰다. 아 이때 만이라도 곰곰이 생각했어야 했다. 이날이 설날이 지나고 12일이 지난, 아내를 알게 된 후 매년 스물세 번 해오던, 아내의 생일 이었다는 걸, 소스라치며 알아냈어야 했다.
엄마 기분이 안 좋으시니까 우리 해야 될 것들 알아서 잘 하자 주완이는 책 읽기 끝나는 데로 수학숙제 하고 지완이도 책 읽고 있어
난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그때까지도 주범이 나라는 걸 모른 체 당당하게 애들 한테만 )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겨울이어서 그런지 차가운 공기에 내려앉은 하얀 먼지들이 공처럼 굴러다녔다. 바닥과 가구 위에 먼지를 이틀에 한 번씩 부직포로 닦아내도 어디서 생기는지 모를 먼지들이 계속 쌓여갔다. 분리수거를 정리해서 내다 버리고 잠깐 책을 읽다가 애들 점심을 먹였다. 애들과 같이 있으면, 특히 겨울 방학을 맞이한 초등학교 오 학년 남자아이 둘과 같이 있으면, 시간은 느리게 가기도 하고, 등가 속의 속도로 빨리 가기도 하지만 분명한 건 시간은 나와 상관없이 늘 제 멋대로 가버린다.
오늘이 아내의 생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오후 늦게 가족 단톡방에 올라온 처남댁의 카톡을 보고서였다. 성당 지인분과 함께 저녁밥을 먹던 나는 순간 동공이 흔들렸다.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이들은 내 옆에서 눈치 빠르게 우선 케이크를 산후 다이소로 가서 생일파티에 사용할 풍선과 꽃가루를 사자고 했다. 쌍둥이들은 엄마의 생일보다는 아이스크림케이크와 풍선 불기에 더 관심을 가졌지만, 아이들이 곁에 있어서 일사불란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마치 군대 오분대기조와 같은 민첩함이었다.
성당 지인분은 어떻게 아내 생일을 잊을 수가 있어요 라는 동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빨리 들어가라고 했다.
아이들은 풍선을 불어 벽에 붙이고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난 그사이 미역국을 끓였다. 다행히 미역과 소고기가 있었다. 맛있는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서는 미역을 충분히 불여서 끓여야 됐는데, 마음이 급하다 보니 평소에 먹던 그런 맛이 나오지 않았다. 미역 줄기는 덜 풀어졌는지, 넓게 퍼져서 흐느적거려야 될 미역들이 빳빳한 줄기들이 잎을 펼칠지 않은 체 떠있었다. 거기에 국간장이 많이 들어가서 간장냄새가 많이 올라왔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국물 맛은 그래도 먹을만했다. 대충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나갈 무렵 아내의 차가 아파트로 들어왔다는 신호음이 났다. 우리는 불을 끄고 선글라스를 썼다. 입에는 응원용 호루라기를, 왼손에는 풍선을, 애들은 반짝이 색종이를 손에 들고 엄마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아내는 아이들에 둘러싸여 선글라스를 끼기고 준비한 왕관을 썼다. 그리고 촛불을 끄고 노래를 불렀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미소를 보였지만 나는 투명 인간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에게 아내의 생일은 내 생일보다 더 중요한 날이었다. 아내의 생일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집안 분위기와 나를 보는 아내 눈빛의 애정도가 달라졌다. 아내의 생일을 기계처럼, 의무적으로 보내는 것도 예민한 아내에게는 더 큰 상처가 되었다.
아마도 결혼 후 스물세 번의 생일을 보내는 동안, 나는 아내가 원하는 그 수준의 행복한 생일을 보내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길들여져 갔는지 모른다.
마치 어린 왕자를 길들인 빨간 장미처럼,
그런 길들여짐을 간절히 원하는 여우처럼,
나란 사람은 가족들의 생일을 챙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아내는 알려 주었다. 내가 왜 그런 기본적인 걸 못하는지 나 역시 궁금해질 때가 있었다. 아내는 이런 내가 못 미더워 작년까지는 생일 일주일 전에 친절히 자신의 생일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꼼꼼히 애들에게 편지를 쓰게끔 해달라는 것과 먹고 싶은 음식과 하고 싶은 것들과 받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못 미더워서 스스로 챙기는 생일에 가까웠지만 나 역시 세부적으로 알려 주어서 거기에 맞춰 기분 좋은 행복한 생일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아무래도 아버님이 아프시고, 맏딸이어서 신경 쓰느라 많이 지쳐서 인지도 몰랐다. 거기에 올해도 역시 본인이 알고 미리 준비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보니 포기하고야 만 것이다.
사람의 모든 뇌구조는 처리하고 받아들여야 할 수많은 일들이 있다.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한다. 나의 뇌구조는 취사선택의 문제에서 생일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그래서 이것을 꼭 챙겨야 된다고 다짐을 해도 뇌하수체에 변화가 없었다. 아마 거기엔 변명 갔겠지만, 한두 달 전부터 여러 가지 일들도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바깥일과 집안일이 겹치다 보니, 제일 중요한 아내 생일을 잊어버린 거였는데, 이건 대단히 중요한 일이어서, 앙코 없는 찐빵을 만든다거나, 연료 없이 주행하는 자동차가 되어버리는, 그러니까 삶의 근간이 되는 제일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는 거와 같았다.
며칠 동안, 아니 이번에는 더 길어 질지도 모르지만 아내가 다시 나를 보고 밝게 웃어 주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