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크리닉 백팔십 번의 통증 이야기
어느 날 아내를 따라 피부과를 갔다.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지만 우리는 늙었다는 걸 그 사람의 나이를 보고 "아 늙으셨네요"라고 느끼지 않는다. 어쩌면 나이는 그 사람의 늙고 젊음을 판단하는 기준이라기보다는, 내가 어떻게 그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되는가에 대한 기준이 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이유는 몸보다 마음이 더 늙어버린 사람들이 많아서 인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나, 성당에서 자주 보는 지인들과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눈주름이나 입가에 자리 잡은 팔자주름을 보며 "아 당신도 늙으셨군요" 생각을 하게 된다.
화장으로 미처 가리지 못한 목주름은 단추깃으로 여며도 숨겨지지 않는다.
시간은 우리의 손등과 얼굴 위로 먼지처럼 내려앉아 지워지지 않는 주름이 되어간다. 늙는다는 건 얼굴에 쌓여가는 시간의 흔적들이다.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간의 덧깨는 흔적을 남긴다. 그건 숨기려야 숨겨지지 않는다.
어느 날 아내는 얼굴에 검버섯이 피었다고 거울 앞에서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나이가 들면 다 그런 거야라고 인사차 말을 건넸다. 누구와 대화를 하거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기가 막힌 타이밍에 공감 어린 말 한마디는 생존하는데 필요한 무기가 된다. 나는 그때 나이가 들면 다 그래 와 같은 무심한 말을 하면 안 되었다.
그렇다고 못 들은 척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왜 괜찮은데 격려라도 해주었어야 됐다.
아내는 그때 거울을 보며 무심히 이야기했다. 마치 그게 마트 가서 장을 보듯 손쉽게 고를 수 있는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오빠 나 피부과 가서 피부 크리닉 받았어 좀 비싸긴 한데 받을만해"
그렇게 어느 날 아내는 피부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아내는 얼굴에 피어있는 검버섯과 검게 변한 기미들과 목주름 사이로 퍼져있는 쥐젖을 레이저로 시술을 받았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편평 사마귀까지,
시술을 받고 온 그때부터 아내는 나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마치 중세 노예상인들이 노예들을 훑어보듯, 탐욕적인 눈빛으로 나의 얼굴 이곳저곳을, 숨겨진 보석이라도 찾아낼 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난 스캔하듯이 쏘아보는 아내의 눈빛에 그만 기세가 눌려, 늘 그렇듯,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 다소곳하게 얼굴을 들어 올렸다. 시키지도 않았지만 마음껏 내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나의 얼굴을 관찰하던 아내는 어느 순간 금광이라도 찾아낸 듯한 흥분한 표정이 되어 소리를 질렀다.
"오빠 오빠얼굴에 편평 사마귀들 많아 이제부터 수건 따로 써 애들한테 옮아" "목덜미에 도마뱀처럼 쥐젖도 많아"
목덜미 쥐젖이야 세수를 하면서도 늘 봐왔던 거여서 놀라진 않았지만, 순간 편평 사마귀라는 처음 듣는 무언가가 내 얼굴에 잔뜩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땐 나 역시 적잖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내를 쳐다보았다.
"편평 사마귀 그게 뭐야"
나는 사마귀라는 병명으로 불려지는 그 이상한 것들이 나에 얼굴에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치 희귀병이나 불치병은 아닌가 해서, 놀라기도 했고, 기분까지 우울해져 갔다.
"편평 사마귀라니 그것도 얼굴에 "
그날 이후 마치 전염병 환자가 수용소 격리 되듯이, 화장실을 따로 사용하는 것 에서부터 수건과 비누까지, 손을 잡거나 볼에 뽀뽀를 하는 것까지, 조금이라도 전염이 될 것 같은 것에서 제재를 받았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나는 아내를 따라 피부과를 갔다. 대부분의 경우 난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내가 먼저 가자고 하지 않은 것을, 내가 먼저 가자고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건 쇼핑을 할 때나, 맛있는 음식점엘 갈 때나, 작은 어떤 것을 고를 때도 난 아내의 선택과 의견이 있을 때에만, 나의 행동체계를 움직이는 시신경계가 반응을 하게 된다. 오랫동안 길 들여진 이런 습관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한 차원 업그레이드 시켜줌으로써 화목한 가정으로 만들 주었다.
난 그렇게 어느 날 아내를 따라, 정확히는 아내가 피부과를 가는 날에 맞추어, 피부과를 따라갔다. 평촌에 있는 피부과는 호텔 로비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피부과 시술을 받기 위해 먼저 피부과 실장과 면담을 나누었다. 피부과 실장이어서 그랬을까, 볼록한 이마와 갈색의 서클랜즈, 어색한 눈동자, 볼륨감으로 터질 것 같은 붉은 입술, 이마처럼 생긴 볼록한 볼과 두꺼운 쌍꺼풀까지, 드라마에 나올듯한 찍어낸 성형미인이 내 앞에서 웃으며 나의 얼굴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피부과가 아니라면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는 게 어색할 수도 있었지만,
난 실장의 눈매가 나의 얼굴을 훌터보는걸 느껴가며 눈을 지긋히 감았다.
"편평 사마귀와 쥐젖이 많이 있네요"
우선 50만 원에 50개인데 시작해보고 더 많으면 80만 원까지 올라갑니다."
레이저로 시술비용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참에 시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간호사는 나에 얼굴과 목주위로 마취크림을 듬뿍 발라 주었다. 두꺼운 머드팩이 얼굴에 달라붙는 것 같은 둔탁함이 느껴졌다. 삼십 분이 지났을까 어느 정도 얼얼해진 얼굴 위로 젊은 피부과 의사의 얼굴이 나타났다.
난 마취크림으로 안 아프려니 마음을 놓고 졸기까지 했다. 이런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난 레이저 시술을 받는 동안 심한 통증에 다리를 비비 꼬야야만 했다.
따끔거리는 통증보다는 좀 더 깊이 따끔거리는 통증이 180개를 제거하면서 180번의 통증을 느꼈다.
중간중간 " 아 그만할게요" 시술실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 생각이 나서 손과 다리를 비비 꼬며 이를 악물고 참아 내야만 했다. 코에 오목하게 올라온 점을 제거할 때는 고기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건 내 살이 타는 냄새였다.
그렇게 얼굴과 목주위로 200개 가까운 곳에 레이저 시술이 심한 통증을 앓고 난 후에야 끝이 났다.
얼굴에는 다닥다닥 살색밴드가 붙어있었고 목주의는 밴드로 붙이기에는 너무 많아 연고로 발라주었다.
시술을 받은 부위가 빨갛게 부어오르고 피딱지가 올라와, 상태로만 봐서는 심한 피부병 환자처럼 보였다. 목주위는 더 심하게 붉은 점들로 붓기와 올라와서 격리되어야만 되는 환자처럼 보였다.
난 아내를 따라 피부과를 갔다.
예쁘게 산다는 게 이렇게 힘든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난 다시는 피부과를 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 예 뼈졌어 "
난 웃으며 아내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