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을 사랑하여라
이웃의 정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주는 이들에게만 잘해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개인들도 그것은 한다.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진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며준다.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그에게 잘해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구워주어라.(...)
루카 6;27
지난주 미사 강론 때였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신부님이 재대에 올라왔다. 교구소속 신부님들이 가끔 오셔서 미사 집전을 하는데 오늘이 그날인 듯했다. 아마 눈을 감고 있다거나 딴생각을 하고 있던 사람들도 신부님의 미사전례 목소리를 듣고 아 다른 신부님이 오셨구나라고 느꼈을 것이다. 머리가 반쯤 벗어지신 신부님의 목소리는 외모만큼이나 작게 들렸다. 힘이 없어 보였지만, 그건 신부님마다 음률이 다르다 보니, 그렇게 들리려니 생각했다. 목소리의 음률이 모두 다르다 보니 첫마디만 들어도 신부님의 스타일을 짐작할 수가 있다. 처음엔 이상하게 들리다가도 계속 듣다 보면 그 목소리와 음률이 정겹게 들려왔다. 그렇게 신부님의 미사 강론이 시작되었다. 신부님은 전례 때 목소리와 다른 목소리로 강론을 하였다. 힘이 있고 다부진 목소리였다. 목소리 두 개를 따로 들어보면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 신부님은 학교 선생님처럼 강론하였다. 질문하고 답하면서 몰입도를 높여갔다.
난 그날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그날 알게 되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의 그 이웃이, 나와 같은 성당에 다니는 친한 분들이 아니라는 것을, 엘리베이터에서 인사하는 옆집 이웃이 아니라는 것을, 한 달에 한번 라운딩을 나가는 선후배가 아니라는 것을, 난 그날 미사를 드리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잘못되었다.
그날 신부님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이웃은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구약에서는 그 이웃을 어린아이와 과부와 이방인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네 이웃을 사랑하여라의 그 사랑은 우리가 아는, 그래서 고작 해봐야 할 수 있는 사랑이라곤, 남녀의 사랑과 부모자식의 사랑과 친구와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 이 네 가지 사랑을 빼면 할 수 있는 사랑이 없는, 이런 사랑이 아니라고 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은 원수에 대한 사랑이라고 했다.
고작 할 수 있는 사랑의 범위를 벗어난 사랑을 하라고 했다.
나와 친한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이웃이 아니었다. 그분들은 나와 비슷한 수준의 경제력과 아침이면 출근할 안전한 직장과 노후를 위해 저축하고 가끔 불규칙적으로 마음의 안정을 위해 기부를 하고 든든한 가정의 울타리를 만들기 위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이런 이웃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게 아닐 것이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이웃은 그 이웃이 아니었고 사랑도 그 사랑이 아니었다.
은촛대까지 내어준 레미제라블의 노신부가 장발장에게 보여준 사랑이, 아마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이웃과 사랑일 것이다.
조금은 결이 벗어난 이야기라 할 순 있겠지만, 가끔 성당에서 귀중품을 훔쳐가는 사람들 때문에 미사 전 귀중품을 조심하라는 안내를 한다. 난 그 안내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웃들은 그분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히 앉아서 미사를 드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지,
신부님 강론데로라면 나는 그 어느 것도 알지 못하는, 그래서 행동으로 그런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웃이 누구인지 알아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야 사랑할 수 있다.
머리에서 종소리가 울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