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에 왔을 때
집으로 가는 길,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간다.
하루라는 시간의 피니시 라인은 현관문을 열면서 시작된다. 마치 더듬이로 세상을 탐색하는 꿀벌처럼, 감각신경을 총동원하여 집안 공기가 어떻지 흝어본다. 나는 곧 하루가 끝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런 건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어쩌면 아내의 숨소리와 아이들의 표정만 보고도, 난 아이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 하루의 피곤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리고 마치 판관 포청천처럼, 아이들과 아내의 방을 차례로 들어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연기를 한다.
이때 자칫 한쪽으로 치우치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나는 노회 한 수사관처럼 표정을 숨긴 채 방을 서성인다. 할 말을 꾹 참고 기다린다. 팽팽한 긴장감이 어느 순간 눈빛으로 그렁거릴 때가 있다. 아내는 그래 이 말은 꼭 해야겠다며 숨겨진 감정을 풀어놓는다. 아내가 쏟아붓는 말을 침착하게 들어준다. 이때 적절한 리액션을 해주어야 효과가 좋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간다. 아이들에 표정은 달리 숨기는 게 없다. 감정이 그대로 얼굴에 묻어있어서, 대화하기가 쉽다.
어서 이날 하루를 끝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