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과 아내의 불협화음
아내는 엄마의 장롱문을 열었다.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았는지 털썩 주저앉아 장롱 속에 쌓여 있는 이불섬과 베개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곤 몇몇 베갯잇을 끄집어내더니 한쪽으로 던져놓기 시작했다.
엄마 집에 올 때마다 아내는 여기저기를 정리하고 청소를 한다. 어느 날은 냉장고를 열여 놓거나 김치냉장고를 열어 놓기도 하고 어느 날은 주방찬장문을 열어 놓기도 한다. 화장실과 창문틀에 낀 곰팡이와 물때들은 아내 성화에 스스로 정화능력을 갖추어 진화되어 갈 정도로 느낄 만큼 아버님이 자주 손을 보고 있다. 그렇게 아내는 장모님의 살림살이 구석구석을 열어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어디 곰팡이 핀 데는 없는지 그야말로 중대장이 관내 사열 하듯이 아내 레이다망에 걸려드는 것들은 가차 없이 버려지거나 닦여진다.
그렇게 이번 추석에는 장롱 속에 고이 쌓여있던 베개들이 아내의 눈썰미에 걸려들었다. 킁킁 냄새를 맡던 아내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엄마 이거 갔다 버려"
"이건 베개에 곰팡이가 잔뜩 피었어 높아서 편하지도 않아 소리도 나고 누가 벤다고 이걸 장롱 속에 놔두는 거야 고약한 냄새만 나잖아"
장모님의 살림살이는 아내가 오는 날이면 바짝 긴장을 하고 버려지지 않으려 나름 노력들을 한다. 어머님은 딸자식이 오는 날이면 냉장고도 정리하고 주방도 닦아내고 깔끔 떠는 딸내미 잔소리가 듣기 싫어 미리미리 숨 길건 숨기고 버릴 건 버리고 그렇게 준비를 하신다. 이번 추석에도 어머님은 며느리들이 오기 전에 시원한 소고기뭇국도 끊이고 전도 붙이고 집안 청소도 하셨다. 그리고 며느리들이 친정으로 돌아간 다음날 딸이 오는 날 아마도 어머님은 며느리들이 오는 날 보다 더 신경을 쓰며 이것저것을 살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어쩌랴 아무리 들러보아도 당신 살림살이라 버릴만한 것도 하찮은 것들도 없는 것을 어머니에겐 낡아 버려지는 행랑살이란 쉬이 나오지가 않는다.
아내는 장롱 안에서 그렇게 오래 묵은 베갯잇 몇 개를 끄집어내어 보자기에 쌓기 시작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지 손길에 정을 두지 않았다. 그리곤 준비된 마지막 한마디를 엄마에게 던졌다.
"엄마 저 베갯잇에 돈이나 금붙이 넣어둔 거 없지 "
"응 없는데 근데 뭐를 버리려고"
어머님은 아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무언가를 버리나 보다 생각하고 확인차 소파에서 일어나셨다. 어머님은 그제야 보따리에 쌓여 있는 베개를 확인하였다. 어머님은 현관 앞에 내다 놓은 보따리를 다시 안방으로 들고 들어왔다. 거기서부터 모녀간의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엄마 그냥 버리라고 "
"쓰지도 않는 것들을 왜 장롱 속에 넣어두는 거야 냄새나고 곰팡이까지 핀 걸 버리라니까"
평소에도 화가 나면 목소리가 커지는 아내는 엄마에게 감정 조절 없이 쏘아 붙였다.
어머님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현관에서 크게 소리 지르는 딸내미가 속상하기도 하셨는지 끝내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
어머님은 진정이 안되는지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걸쳐 앉아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셨다.
나는 조용히 안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머니 눈물 닦으세요 별일 아니에요 어머니 속상하시죠"
"상숙이 큰 애가 큰 며느리가 시집올 때 해온 거야 사둔어른이 해준 거라 나에겐 소중한 것들이야 " 그걸 버리려고 하니까 화도 나고 속상해서 그리고 딸내미가 현관에서 소리 지르니 옆집 다 들리게 "
어머니의 아래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어머니는 속상하셨는지 할 말이 많으셨다. 울면서 이야기하셨다. 나는 어머님을 다독 거리며 안아드렸다.
"내가 왜 몰라 며느리들 손주들 올 때 책 잡힐까 지저분하단 얘기 들을까 봐 딸자식이 걱정돼서 그러는 거 내가 알지 그런데도 서운해서 눈물이 나 "
"어머니 그래도 용케 구해냈어요 베개들이요 현관까지 나갔다가 다시 안방으로 들고 들어왔으니 얘네들 입장에선 죽다 살아난 거네요 "
"어머니 저는 이십 년 동안 저렇게 혼나면서 살아요 아내가 갱년기라 더 그런 것 같아요 마음 쓰지 마세요 "
그제야 어머님은 미소를 지으셨다. 두 눈에 눈물이 마르지 않았지만 입꼬리는 웃으시며 말을 하셨다.
"다 내가 보고 청소하고 버릴 때 되면 버리면 돼 내겐 소중한 것들이야 "
"맞아요 어머님"
"저희 집에 불시에 오셔서 냉장고도 열어보시고 장롱도 열어보세요 아내는 더 지저분해요 엄마라서 더 챙기는 거예요. 제가 혼내줄게요. 어머니. 기분 푸세요."
어머님의 세간살림들은 쉬 버려지지 않는다.
그건 비단 어머님뿐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의 모든 어머님들은 버리긴 보단 쟁겨놓고 쌓아가며 생활한다.
버려야 될 때를 놓쳐버린 곰팡이 슨 국자와 이빨 빠진 그릇과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과 노란색 양철 냄비와 덜컥거리는 세탁기 어쩌면 이 모든 세간살이는 어머님과 때를 같이하는 순장조들이다. 이런 세간살이에 비하자면 베개단이나 이불솜이야 오죽 정이 더 들어겠는가 사연으로 따진다면야 몇 세대의 걸친 사랑과 이야기가 스며 있는 것들이라 어머님에겐 특별함을 떠나 보물인 것이다. 하찮고 사소하고 그냥 냄새나는 곰팡이 슨 베개가 아니었다. 큰 며느리가 시집올 때 해온 사돈어른이 신경 써가며 보내준 베개는 그렇게 시간과 공간이 켜켜이 묵혀있는 보물이었다. 그런 보물을 버리려 했으니 어머님의 눈물에 많은 이야기가 농축돼 흐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쉽게 버려지지 못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거기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그 안에 있다.
어머님집을 다녀온 후 아내는 편치가 않아 보였다. 아마도 엄마가 생각나서 인지도 모른다.
엄마의 베개가 생각나서, 엄마의 눈물이 생각나서, 그래도 곰팡이 슨 베갯잇은 버려야 될 텐데 걱정하며 그렇게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
이유야 어쨌든 엄마와 딸이 만들어 내는 이 묘한 불협화음은 그 어떤 듣기 좋은 완벽한 하모니 보다 더 진한 향기를 뿜어낸다.
이런 불협화음은 참 듣기 좋은 보기 좋은 불협화음이다. 서로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종종 이런 화음이 배어 나온다.
사랑의 붏협화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