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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가 하는 일

마음을 빼앗긴 봄날의 오후

by 둥이

"말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힘일 때가 있다.

말이 세상을 멀리 끌어안을 때가 있다.

한마디 말이 확보하는 범위는 끝이 없이 번져 나간다. "

[ 아침산책 중에서 김용택지음 " ]


뿌리가 하는 일


봄날의 오후였다.

산에 봄볕이 가득했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바람 안에 햇볕과 바람 냄새가 묻어 있었다. 봄바람이 가던 길을 멈춰 세웠다.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바람에 흔들렸다. 느티나무에서 바람 소리가, 잔잔한 파도소리처럼 들려왔다. 무수히 많은 연녹색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반짝이며 부서졌다. 나무는 언제 잎사귀를 만들었을까


나무는 높은 곳의 잎맥까지 물을 올려 보낸다. 햇살은 느티나무의 잎사귀를 통과하여 색을 입힌다. 수많은 잎사귀가 빼곡하게 중첩되어 수많은 녹색을 만들어 낸다. 연녹과 진녹의 채도로 완벽한 그라데이션이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느티나무는 화가가 된다. 그렇게 나무는 시인이 된다. 그렇게 나무는 마음을 흔든다. 어느 봄날의 오후, 우리는 너무 쉽게 마음을 빼앗긴다.


보이지 않는 뿌리가 하는 일이란 늘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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