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고
늦은 저녁 핸드폰이 울렸다.
저녁 10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이었다. 딱히 올만한 전화가 없었다. 아무리 급한 회사일도 이 시간에 오지는 않는다. 진동이 열 번째 울릴 때까지 받지 않았다. 두세 번 더 올리면 받아야지 생각했다. 이 정도면 누군가 급한 용무로 전화를 한 것이 분명했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누나였다. 이 시간에 누나가 전화할 정도라면 부모님 때문이란걸 알 수 있었다.
누나는 아버지가 입원했다고 했다.
창고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고 했다. 타박상 정도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엑스레이 결과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다음날 다시 시티촬영을 해봐야 정확히 알 수가 있다고 했다.
봄이 되면 아버지의 사고 소식이 많아진다. 운전이 힘든 나이라는 걸 아버지는 인정하지 않는다. 여전히 트랙터를 운전하며 텃밭 농사를 짓는다. 그렇다 보니 여기저기 부닥치거나 들이박는다. 그냥 한두 고랑 텃밭 농사만 지으세요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봄 만 되면 여기저기 쉬는 땅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노는 땅 뭐 하냐며 쉬어가며 씨뿌리면 괜찮다고 여기저기 밭고랑을 친다.
아버지는 창고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다리힘이 없다 보니 걷는 것도 힘에 부친다. 그런데도 농사를 짓는다고 하니 매번 같은 사고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다 정말 큰일이라도 날까 걱정이다.
정형외과 의사는 골절부위를 영어로 이야기하다가 어디 뼈가 골절 됐냐는 나의 질문에 견원골절이라 답해 주었다. 말이 어려워 들어도 어느 부위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무릎의 어느 부위를 그렇게 부르는가 보다 생각했다. 의학용어나 법률용어 같은 전문분야의 언어들은 한결같이 들어도 알 수 없는 말들뿐이다. 평상시 사용하는 언어들로 설명해 주는 의사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의사는 그렇지가 않다. 아마 마땅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어서 그럴 거라 생각했다.
젊은 정형외과 의사는 영사의학과 교수가 엑스레이 사진상 무릎 뒤쪽 인대와 연결된 뼈가 의심된다며 시티촬영을 해보자고 했다며 들은 이야기를 전하듯이 말해주었다. 마치 자기는 시티촬영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을 강조하는 듯했다. 그렇게 시티를 찍고 나서 정형외과 의사를 다시 만났다. 아버지의 시티사진이 넓은 스크린에 올라왔다. 봐도 알 수 없는 사진 부위를 가리키며 이 부분이 골절이라고 가리켰다. 나이가 젊은 사람이라면 수술을 해야 된다고 했다. 아버지는 수술이 힘든 나이여서 오일 간 입원하다 무릎 부위에 깁스를 한 후 퇴원 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오일 간 입원을 했다.
전화를 받고 다음날 찾아가 좋아하시는 갈비탕을 포장해서 갔다. 한 그릇을 국물까지 남기지 않고 맛있게 드셨다. 부모님이 맛있게 드시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다. 어릴 적 부모님이 자식을 키우면서 했던 말들인데,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퇴원하는 날, 오른쪽 다리에 통 깁스를 했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치료사가 깁스를 해주었다. 치료사는 깁스만 전문으로 해주는 분처럼 보였다. 먼저 살색 스타킹을 입힌 후에 그 위에 양파망처럼 생긴 녹색망을 감아주었다. 양파망처럼 생긴 게 뭐냐고 물어보니 하이바글라스 란 소재라고 말해주었다. 깁스라고 하면 흰색 석회가루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녹색양파망으로 다리를 감싸주고 있었다. 가볍고 바람이 잘 통하는 유리섬유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치료사는 아버지 다리모형에 맞게 녹색 하이바글라스를 손으로 꾹꾹 눌러주었다.
오른쪽 무릎 전체를 덮고 있는 통깁스는 생각보다 몸을 움직이는데 힘이 들었다. 아예 걸을 수가 없었다. 일어나고 앉을 때 옆에서 어깨를 잡아 주어야 했다. 누나는 걱정이 돼서 소변기와 기저귀를 사들고 왔다.
흙냄새가 진해 질수록 아버지의 사고도 늘어난다. 부디 올해는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