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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음식 콩국수

도파민을 부르는 맛있는 한 끼의 식사 이야기

by 둥이

여름음식 콩국수

- 도파민을 부르는 맛있는 한 끼의 식사


여름이면 즐겨 먹는 음식 중에 콩국수가 있다. 콩국수는 자주 먹어도 쉬 물리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여름 음식들은 의외로 조리법이 간단하다. 콩국수도 별반 특별하다 할 조리법이 있는 건 아니어서 원재료만 좋은 걸 사용한다면 맛은 보증된다. 그렇다고 조리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콩을 갈아 육수를 만드는데, 중요한 건 역시 콩과 물의 황금비율이다. 너무 걸쭉하지도 않으면서, 또 너무 묽지도 않은, 국수면에 촤고 감겨 올라오는 찰진 점도라야 콩국수의 별미를 살게 해준다. 조미료로 울어낸 냉면육수 하고는 전혀 달라 먹고 나면 뱃속도 든든해진다. 두유보다 진하면서 걸쭉한 그 풍미는 여름을 시원하게 나기 위해 먹야줘야만 하는 보약이다.


이런 콩국수를 나는 좋아한다.

요즘처럼 더운 날이면 일주일에 두세 번은 콩국수를 먹는다. 회사옆 단골식당 할머니집에 몇 안 되는 메뉴 중에 여름이면 콩국수가 추가된다. 정확히 6월 첫째 주부터,

할머니는 까만 서리태콩을 믹서기로 갈아 콩국물을 우려낸다. 이미 식당 안은 콩국물 냄새가 진동한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은 메뉴판에 써서 붙인 여름별미 콩국수를 보지 전부터 냄새를 맡는다,

눈보다 빠른 게 있다. 콩국물 냄새는 생각 없던 사람도 점심 메뉴를 콩국수로 고르게 만든다.


무엇을 먹어도 맛있게 먹은 사람이 있다. 정작 밥맛이 없다거나, 배가 불러 생각이 없다가도, 나도 모르게 숟가락을 들게 만드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가 콩국수를 먹는 사람들이다. 큰 사발 그릇에 담겨 나오는 콩국수 위로 채 썰은 오이가 고명으로 얹어져 나온다. 사람들은 한 젓가락 뜨기 전에 두 손으로 큰 사발을 들어 콩국물을 소리 내어 들이킨다. 공손하게 예를 갖춰 콩국물을 먹고 나면, 한 젓가락 콩국수를 말아 올려 소리 내어 먹는다. 그 소리는 마법사의 주술처럼, 침샘을 자극한다. 의지와 상관없이 목젖이 움직인다. 먹기에 진심인 사람들의 표정에는 진지함이 있다. 최선을 다해 맛을 음미한다.


음식의 식감과 풍미를 느끼며 맛있게 먹는 한 끼의 식사는 보약이다..


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장인어른은 암진단을 받은 후 오 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장인어른은 얼큰한 해장국을 좋아했다. 거기에 반주로 빨간색 진로소주, 이 정도면 장인어른의 밥상은 수라상이 부럽지 않게 된다. 그걸로 만찬이 된다. 좋아하는 음식을 같이 먹으며 취기로 불어지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아파보면 먹는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를 알게 된다. 돌아가시기 전 삼 주 전, 한 달 만에 집에 돌아온 장인어른은 몸보다는 마음이 편했는지 모른다. 그때 그 순간이 마지막이란 걸 알았다면 (아니 알면서도 술 한잔을 못 따라 드렸다. 무섭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빨간 라벨 진로소주를 딱 한잔이라도 따라 드릴걸 후회가 됐다.


술자리를 좋아하던 장인어른의 마지막 식사는 어느 순간 사라 졌다. 먹는 즐거움이 사라진 시간,

해장국의 얼큰함과 소주의 쓴맛이 만들어 줬을 그 행복한 시간들이, 아련하다.


살아가며 우리는 그런 행복에 견줄만한 것을 쉽게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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