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생각에 관해서
생각과 양귀비 씨앗의 함수관계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의 시작은 어디일까 라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가끔 그 생각이라는 생각을 아주 진지하게 생각한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기도를 하면서도 생각은 백지처럼 제로화되지 않는다. 지우려고 하는 그것 역시 어찌 보면 생각이기에, 어쩌면 참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뇌의 무게가 1.4kg,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조금씩 있겠지만, 단단하고 어두운 그곳에 꽈리를 틀고 앉아있는 단백질 덩어리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생각을 한다. 그 생각이라는 것이, 홍채를 통해 들어오는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것일 수도 있고, 집 앞 두부가게 앞을 지나가다, 고소한 비지냄새를 맡고 생각에도 없던 콩국수를 먹으러 갈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일 수도 있다. 계획에도 없던 것들이 단단한 단백질 안으로 들어온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너무 이상한 일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방금 전 일도 기억을 못 할 만큼 생각은 쉽게 사라지기도 하지만, 평생 동안 기억하는 문장도 있고, 어제 본 본처럼 또렷하게 생각나는 장면들도 있다. 생각의 무게는 다르다. 어떤 생각은 가볍고, 어떤 생각은 무겁다. 무거운 생각은 중력을 벗어나지 못한 채 마음속에 가라앉는다. 그래서일까? 작은 파도에도 그 생각은 다시 살아난다. 잊힌 줄 알았던 생각들이, 어느 순간, 발화되어 생각 전체를 덮어버린다. 양귀비 씨앗은 오랫동안 땅속에서 살아남는다. 20년 동안 땅속에 있다가도 땅을 일구면 보풀어진 땅 위에 뿌리를 내린다. 양귀비 씨앗은 아마 기다렸을 것이다. 따스한 햇볕과 바람냄새와 빗물의 촉감을, 돌처럼 단단해진 땅속에서 수십 년을 기다렸을 것이다.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음을, 양귀비의 씨앗처럼, 1.4kg 단백질속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다가, 그날의 햇볕과 그와 나누는 대화와 같이 먹던 커피 향이 좋아서, 그래서 생각이 찾아오는지 모른다. 아마도 그런 상황이 생각을 불렀는지도 모른다. 양귀비 씨앗처럼, 죽지 않는 생각들은 있다.
그런 건 구분이 없다. 풋내기 열여섯 살 소년의 생각일 때도 있었고, 몇 해 전 교통사고로 빙그르 돌아가는 차 안에서의 생각일 때도 있었고, 문득문득 돌아가신 장인어른이 생각일 때도 있었다. 생각들은 양귀비 씨앗처럼, 오랫동안 땅속에서 발아되기를 기다린다. 어쩌면 끝내 발아되지 못하는 씨앗들도 있겠지만, 그 오랜 기다림은 능동적 일수 없다. 철저히 무엇가에 의해 불러 내야만 볼 수 있는 수동태에 가깝다.
이상한 일은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주 운전 중에 인도로 걸어가는 한 분을 보게 되었다. 신호가 걸려 서행을 하고 있어서 그분의 인상착의를 위에서 아래로 쑥 훑어보았다. 순간, 난 이분의 몸동작이 내가 아는 분이란걸 알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 사람임을 알게 해주는 몸동작을 자기도 모르게 하게 된다. 그런 몸동작을 보게 되면 고민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피타고라스의 법칙처럼,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알 수가 있다. 근데 문제는 내가 분명 아는 몸동작을 하는 그분의 앞모습을 정확히 볼 수가 없었다. 이미 신호는 바뀌어 차는 앞으로 서서히 지나가고 있었다. 아 누구지, 분명 아는 사람인데, 누구지 나는 고개를 돌려 한번 더 그분을 쳐다보았다. 그분은 45도 각도로 몸을 꼬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왼손 엄지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검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난 그분의 몸동작만 기억할 뿐, 그 몸동작이 누구의 것인지를 연결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 사람은 약간의 흥분을 한다. 1.4kg의 단백질 덩어리한테 너는 왜 그러니 잘 좀 생각해 보라고 다그친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른다.
없을 것 같지만 물줄기의 시작은 항상 존재한다. 저렇게 커다란 몸집을 이루고 흐르는 강물도 그 시작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바다처럼 툭 떨어져 원래부터 있던 것처럼 보이지만,
강물의 시작이, 바다의 시작이, 원래 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곳은 없는 것 같지만, 강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그 시작점은 아주 작은 물방울이거나 옹달샘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마도 생각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강물처럼, 덩어리 져 흐를 때는 모르지만, 가만히 앉아 그 생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게 땅에서 솟아나는 샘물이나 계곡에서 흘러드는 물줄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의 몸동작을 보고, 내가 아는 그 사람을 기억해내진 못했지만, 분명 오래전에 자주 보았던 사람이란 걸 확실히 생각해 낸 것을 보면, 생각이란 건 깊게 파인 자국 일수도 있다.
정체성과 자존감과 사랑은 1.4kg 단백질 덩어리가 하는 것일까? 내 몸은 어디까지가 내 몸일까? 마음과 생각의 거리는 얼마나 멀까?
참 쓸데없는 생각만 하고 있다. 영화를 보면 영화는 끝날 때까지 주인공의 시간을 보여준다. 나도 가끔은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분명 같은 시간대의 시간임을 알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다른 시간이 흘러가는지, 이건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그러다 보면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까지 불러오게 된다. 블랙홀과 광활한 우주와 태양계과 은하계까지 생각할 수가 없다. 거기까지 생각하게 되면, 생각은 생각이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
1.4kg 단백질 덩어리는 알고 있을까? 생각의 정체를, 이게 생각이라는 거야 하며 나에게 보여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