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블루스

여든아홉 살 아버지와 여든 살 엄마의 황혼블루스

by 둥이

황혼의 블루스


올해 엄마는 여든 살이 되었다.

아버지와는 아홉 살 차이로 아버지는 여든아홉 살이 되었다. 아홉 살 차이는 부부관계로 사는데 문제점이 되지 않았다. 신혼 때는 그 아홉 살 차이라는 게 그렇게 커 보였겠지만, 그래서 동네 사람들과 친척들은 나이 어린 신부를 보고 아이가 아이를 어떻게 낳겠냐며 걱정을 했었겠지만, 그런 건 아홉 살 나이차이에 가려진 엄마의 야무진 성격을 몰랐을 때였었다.


어린 엄마는 아버지보다 아홉 살이 젊었다. 지금이었다면 아마 결혼도 어려워겠지만, 그 시절 그 정도 나이차이는 쉽게 받아들여졌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홉 살 차이가 나다 보니 젊었을 때나 인생의 전성기인 중년기 때도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아버지가 구십이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자 확연한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지팡이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엄마는 여전히 사랑하는 밭작물 고추농사와 마늘농사를 짓느라 여념이 없다. 연립주택 이층에 사는 누나네 집도 걸어 올라가고, 아들집에 전화 걸어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런 이야기라야 해봤자 아버지가 기력이 달리니 보약으로 흑염소를 지어주라는 이야기와 여기저기 돈 들어갈 때와 무릎수술 한 데가 아직도 시큼시큼해서 다음 달에 병원에 가자는 이야기가 전부다.


아버지가 걷지도 못할 정도로 힘이 드니 이젠 고추농사는 그만 지으라는 아들의 성화는 귓전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그냥 엄마 하고 싶은 이야기와 듣고 싶은 이야기만 골라 듣는다.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이 그냥은 아닌 것이, 엄마를 보면 알 수 있다.


아홉 살 차이 나는 엄마의 팔순 생일이 지난주였다. 엄마는 체격에 비해 살이 많이 찌긴 했어도 아직까지 다리힘이 남아 있어 걷고 일어서는데 어려움이 없다. 그렇다 보니 아직까지 고추농사 마늘농사에 대한 애착을 놓지 못한다.

하지만 문제는 아홉 살 많은 아버지의 건강이 작년과 다르고 또 한 달 전과 다르고 어제와 오늘이 다를 정도로 기력이 쇠하여졌다는 데 있다.


아버지는 올봄에 창고에서 넘어져 무릎뼈가 부러졌다. 다리에 깁스를 하고 두 달을 지내는 동안, 평생 몸에 베인 성실한 습관은 아버지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몸이 성하지 않았다. 무릎관절 주변이 깁스로 인해 찰과상이 생겨 쓰라렸고 그 몸으로 화장실을 다녀오고 집안에서 움직이다 보니 두어 번 쓰러지기도 했다.


다리힘이 빠지다 보니 집안에서도 걷다가 쓰러지고 화장실을 다녀오다가도 자주 쓰러졌다. 아버지는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을 만큼 기력이 빠졌다. 늙는다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슬퍼할 일도 아니지만 나무뿌리처럼 올라온 검은 혈관들을 볼라치면 왕성했던 시절 아버지가 생각나 안쓰럽고 불쌍해진다. 아무리 고추가 좋고 마늘이 좋아도 소용이 없다. 하지만 사람이란 좋아하는 것 앞에선 없던 힘도 솟아나는 법, 두 분의 노인은 힘을 합쳐 올해도 고추농사 마늘농사를 짓고야 말았다.


그것도 웬만한 텃밭 농사 사이즈를 벗어난, 그렇다고 동네 노는 땅을 전부 소작하던 한참 젊었을 때 비하자면 작은 땅 떼기지만, 그래도 두 분이서 짓기엔 며칠씩 고추를 따고 며칠을 마늘을 케야만 하는, 적지 않은 땅에 고추를 심고 마늘을 심고, 자식을 키우듯 두 작물을 키워냈다. 거제도에서 일하는 막내가 주말마다 올라와 농약치고 고추모 박고 힘 가는 일을 거든다지만, 그래도 농사라는 게 농부의 마음과 거드는 사람 마음이 하늘과 땅차이만큼 크게 나는 법이라, 늙은 아버지의 손길을 한 번씩은 타야 비실비실 하던 고추모가 하늘을 향해 왕성하게 자라난다. 이것만큼 신기하고 오묘한 게 없다.


한여름 두 노인은 빨간 고추를 따내느라 샛별을 보고 일어난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이때쯤 노인 목소리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내일 소풍을 가는 학생처럼 들뜬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한다.


"고추가 아주 잘 영글었다. 빨갛게 고추 영글어 가는 거 보는 것보다 재미난 게 없다."


아버지와 엄마에게 고추와 마늘은 삼계탕이 되었다가 흑염소가 되었다가 몸에 좋은 영양제가 되었다가 오늘날은 애물단지가 되기도 한다. 비가 오고 탄저병이 들고 제때 농약을 치지 못해 애써 키운 작물이 썩어 들어갈 때면, 보는 것 만으로 행복했던 작물들은, 두 노인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애물이 따로 없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처럼, 안 보는 게 약이다.


아홉 살 젊은 엄마에게 아버지는 이제 매 끼니를 챙겨야 하는 노인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두 분은 없어서 못 살만큼, 톰과 제리처럼 살아간다. 아침저녁으로 찬 공기가 불어오면 두 노인은 밭으로 나간다. 엄마는 아버지를 들볶아 움직여야 된다며, 지팡이를 가져온다. 뭐가 그리 좋을까 올여름은 유난히 덥고 습하다.


여든아홉 살 아버지와 여든 살 엄마는 손을 잡고 밭으로 나간다. 오늘도 톰과 제리처럼 고추를 따며 티격태격하겠지만, 아홉 살 젊은 엄마는 두 고랑 앞서가며 아버지와 당신들만의 황혼의 부르스를 만들어간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