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있는 처방전 ( Prescription ) 본능.

처방전 이야기

by 둥이

쓸모 있는 처방전 ( Prescription ) 본능.


오래전 일이다.

그날은 중국 출장 중이었다. 그전까지 난 단 한 번도 뼈가 부러지거나 금이 간 적이 없었다. 그런 병력이 없다 보니 뼈에 금이 간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상상할 수 도 없었다. 어디에 부딪친 타박상 이거나, 데거나 까진 찰과상 이거나 날카로운 것에 베인 상처들이라면 여태껏 많이 겪어 봤던지라 통증의 깊이를 이해해서 나름의 대처가 가능했겠지만, 가슴뼈 정확히는 흉골에 작은 실금이 가서 그날 저녁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몰려오는 데는 나는 어떻게 이 통증을 대비해야 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몰려오는 통증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바이어 몇 명을 상대하느라 중국 바이주를 맥주 마시듯 먹은 게 탈이었다. 혼미한 정신으로 호텔방까지 무사히 도착했지만 샤워를 한 후 목욕 부스를 나오면서 앞으로 넘어졌다. 그때 난 그렇게 술이 취했어도 정확히 기억나는 건, 나의 몸이 어떻게든 얼굴과 이빨과 주요 신체부위(얼굴과 이빨이 주요 신체부위는 아니지만)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틀어(본능적으로 했다고 밖에 설명이 안 되는 묘한 자세로) 가슴부위가 화장실 바닥에 먼저 닿게끔 뇌는 몸에 명령을 하고 있었다. 눈 깜 박할 사이였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걸까 기계체조 선수들이나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들도 하기 힘든 자세였다. 좀 더 그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샤워를 한 직후라 벌거벗은 몸이었고, 목욕부스 안에서 샤워를 한 후 밖으로 나오기 위해 오른발을 밖으로 내디딘 후 상반신을 목욕부스 밖으로 이동하려던 순간, 무언가 헛것이 보였던 건지, 아니면 오른발에 힘이 풀렸던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술에 취해서 그런 건지, 내 몸은 중심을 잃고 앞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 찰나의 순간, 뇌는 몸에게 명령을 내린 것이다. 몸을 틀어 그냥 앞으로 넘어지면 얼굴이고 이빨이고 성한 데가 없을 거야 어서 머리를 최대한 들어 올리고 가슴으로 착지해야 돼 그래야 살 수가 있어,

몸은 뇌에 명령에 순응하고자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가 흔들리며 활주로에 랜딩 하듯이 앞가슴을 앞으로 최대한 내밀고 딱딱한 화장실 바닥에 가슴으로 쓰러졌다. 가슴으로 온몸에 하중을 받으며, 흉골은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사고였다.


흉골에 실금이 간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난 밤새도록 침대 위에서 여러 가지 자세를 취해가며 숨을 편하게 쉬기 위해 노력했다. 의자에 앉아도 보고 침대에 누워도 보고 누운 자세를 옆으로도 뒤로도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 가며 뒤척여 보았지만, 숨을 쉴 때마다 뭐라 표현이 어려운 부위에 정확이 이게 어떤 통증인지 설명하기가 힘든 그런 통증이 계속해서 몰려왔다. 그때 난 아 이게 뼈 때리는 고통이구나 나는걸 깨달았다. 뼈 때리는 고통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었다. 통증게이즈로 잡히지 않은 영역대여서, 힘줄이 당길 때 느끼는 고통과도 비슷하고, 심하게 쥐가 나거나 담이 걸렸을 때 느끼는 신체의 고통과 비슷한 그런 느낌이 지속적으로 숨을 쉴 때마다 느껴진다. 찌르르 모스 부호 같은 전기신호가 최고의 강도로 끊기지 않고 계속 가슴팍 어느 신경을 건드리는 그 묘하게 기분 나쁜 느낌은 어쩌면 알 수 없었고 겪어보지 않은 거여서 무서운 통증 이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몸은 그런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계속해서 숨을 쉬는 방법을 컨트롤해 나간다. 아주 작은 숨을 조금씩 여러 번 폐 안으로 집어넣는다. 살기 위한 본능은 편안함을 찾아 여러 동작과 여러 자세를 취하게 한다. 숨을 쉴 때마다 통증은 표피처럼 달라붙는다. 통증은 옴몸의 말초신경을 타고 들어가 뇌와 척수에 분포돼 있는 통증게이즈를 자극한다.


숨을 편안하게 쉰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나는 그때 몸의 본능이 뇌리에 철저히 심긴 몸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신의 현 상태를 인식하고 난 뒤 짧은 시간 몸에 밴 모든 습관을 버리고, 나에게 가장 편안함을 주는 자세를 찾아, 평생 해보지 않은 동작과 이상한 각도로 몸을 세팅하고 있었다.


철저히 살기 위한 몸동작이었다. 그런 일련의 노력들이 나를 극한의 편안함으로 만들어 주지는 못했지만, 순간순간 치닫는 고통으로부터 조금은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이상했다고 생각하면 이상했던 건 여느 각도에서는 통증은 완화가 되었고 나는 그 편안함의 틈새로 들어가 몸의 각도와 동작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그 자세를 유지했다. 마치 로뎅이 생각하는 사람의 동작을 취할 때도 있었고, 우습지만 좀비처럼 몸을 비비 꼰다거나 뒤틀리게 할 때도 있었다. 신비했던 건 이런저런 동작들의 여느 틈새에 편안함이 몰려오는 잠깐의 시간이 있었다. 걷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던 그때 난 가만있는 것도 힘들어서, 어쩌면 살기 위해 그 틈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그 이후로 솔직히 어떻게 출장 업무를 보고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같이 동행했던 팀원들이 고생을 했겠지만,


정형외과에 도착해 제일 먼저 진통제 처방을 받았다. 늘 그렇치만 의사는 처방전에 알아볼 수 없는 부호들로 휘갈겨 썼다. 그 안에 나에게 편안함을 가져다줄 건 그다지 없었다는 걸 난 병원을 나서면서 알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이렇게 의료기술이 발달이 되었어도 흉골 금이 간 데에는 달리 처방할 의료기술이 없었다. 그냥 가슴팍을 묶어주는 지지대와 몇 주 푹 쉬라는 말이 전부였다.


그 이후로 난 뼈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살과 근육으로 덮여 있는 하얀 뼈 그 안에는 보려야 볼 수 없는 온갖 신경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아프지 않은 게 아니다. 뼈 때리는 고통, 그 안에 살려고 하는 인간의 본능이 숨겨져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처방전은 살려고 하는 우리의 본능,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동작과 호흡법을 찾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본능, 어쩌면 그것보다 더 훌륭하고 효과 좋은 처방전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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