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여행을 가는 이유 2
아내의 갱년기 탈출기
아내의 갱년기는 어느 날 감기 들듯이 확실한 증상을 동반한 체 찾아왔다.
갱년기는 호흡기로 전염된다거나, 바이러스로 옮긴다거나, 넘어져서 다친 것도 아니지만, 그 어떤 병보다 의료기술로 처방이 어려웠다. 그로 인해 갱년기로 나타나는 모든 증상이 복합적으로 믹싱 되어 아내를 흔들어 놓았다. 그런 증상은 참으로 기이하여 통제할 수 없는 감정기복으로 의욕이 떨어져서 지금까지 꾸준히 해오던 피아노와 등산 그리고 아내임을 증명해 주는 자신감과 밝은 기운이 사라져 갔다. 어느 순간 사라진 것들은 좀처럼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체온이 뜨겁게 달아 올맀다가 갑자기 추워졌다가 하는 증상은 하루에도 수십 번 아내의 몸을 달궜다 식혔다 괴롭혔고 저녁에도 제대로 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면역력과 집중력이 떨어져 갔다.
감정기복이 심해져 아이들에게 쉽게 화를 내기도 하고 그런 자기의 모습이 싫어져 우는 경우도 많아졌다.
아내의 여행은 그렇게 갱년기를 벗어나기 위해 시작되었다. 그런 증상 위에 불을 집힌것들을 꼽자면,
평행 사변형의 넓이를 구하라는 수학문제를 설명하다가, 갈아입은 옷은 옷걸이에 걸어 놓으라는 이야기를 반복하다가, 현관에서 신발 정리를 하고 들어와야 된다고 수없이 이야기를 하다가, 집을 나갈 땐 에어컨을 끄고 나가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그럴 수도 있지" 말대꾸하는 열두 살 쌍둥이들의 반란을 진압하다가 어느 날 여행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남자 세명중 가장 말을 잘 듣는 남편의 사랑은 아내의 화를 식히긴 보다는 뜬금없이 아이들 편을 들어 (아이들을 존중해 줘야 된다는 맥락에 들어맞지 않은 맨트로 ) 아내의 화를 두배로 증가시키기만 했다. 이 모든 엔트로피의 증량은 에너지보존의 법칙을 충실히 따라 결국 화산 폭발하듯 아내의 화는 터지고야 말았다.
아내가 여행을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각론으로 들자면 수도 없이 많겠지만, 고학년으로 접어드는 아이들과의 관계, 그곳에서 시작된다. 처음엔 정박자로 고요하지만, 아이들과의 실랑이는 그리 쉽게 끝나지 않는다.
아이들이야 그 나이 그 성향 데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관성의 둘레에서 커나가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부모의 눈높이는 종종 타깃을 상향조정 한다거나 옆집아이의 학원 목록을 귀담아듣는다거나 이 정도는 풀어야 되지 않나 하는 피타고라스의 법칙 앞에서 쉽게 무너지고 갈피를 잃어버린다. 부모의 DNA를 정직하게 물려받은 아이들의 공부머리는 부모가 바라는 그 이상의 총명함을 보여주지 못한다. 어찌 보면 이건 현실이고 슬픈 일이지만 엄마 아빠의 전두엽과 뉴런들은 그대로 복제되어 아이들에게 유전되는 것이기에, 주완이의 산만함은 어디엔가 있을 나의 산만함과 닮아있다. 학원 선생의 능력과 아이들의 공부머리를 탓할게 아니다.
아내는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갱년기와 아이들의 육아는 아내로 하여금 이 모든 걸 집어던지게 만들었다.
혼자 가는 아내의 여행은 재미가 없다거나, 무섭다거나 외롭다거나 모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만에 하나 그런 감정이 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은 나의 몫이었다. 혼자 하는 것에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은 나에 비해 아내는 자기 안에 내재된 에너지를 끌어 올려 쓸 줄 알았다. 마치 깊은 우물물을 길어 올리듯이, 오랜 전부터 거기 그대로 있었던 자기라는 사람을 불러냈다. 아내는 잊고 살던 내재된 자신의 에너지를 끌어왔다. 아내는 셀카봉을 길게 빼들고 패키지여행 가이드처럼 여행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평소 좋아하는 회색 스니커즈 운동화를 신고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산책에 필요한 작은 생수 한 병과 가볍게 읽을 책 한 권을 가방에 넣어 어깨에 둘러맸다. 오른손엔 셀 가봉을 들었고 왼손 손목엔 빨간 손수건을 묶었다. 팔월말인데도 날씨는 연일 폭염주의보로 한낮 온도는 40도에 육박했다. 이런 기상 조건은 아내의 여행에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하와이 날씨처럼 천국 같지는 않았지만, 아이들 없는 여행은 증가된 엔트로피를 제로 상태로 만들어 주었다. 서서히 모든 긴장이 완화되면서 극도의 편안함이 찾아왔다. 아마도 이런 기운이 아내의 셀카 사진을 돋보이게 만들어 주었는지 모른다.
아내는 혼자 놀기의 달인처럼,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셀카봉을 길게 펴 두 손 벌여 포즈를 취한 후 사진을 찍었다. 원주 소금강 출렁다리 위에서 불볕더위로 얼굴은 젖어 들어갔지만, 셀카봉을 길게 빼들고 사진을 찍었다. 마치 단체로 수학여행 온 여학생처럼, 밝고 우아하게, 포즈를 취했다.
비우고 채우는 시간은 아내의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시켜 주었다. 깜박이며 점멸하던 신호가 녹색불이 켜질 수 있게 만들어 준건, 혼자 떠난 여행 덕분이었다.
숙소 근처 미술관을 찾은 아내는 전시해설을 해주는 여자해설자를 따라다녔다. 아이들과 박물관을 다닐 때도 아내는 그냥 허투루 돌아다니며 보는 적이 없었다. 줄을 서서 오랜 시간 기다려 유물과 그림에 대한 전시해설을 들었다. 가족 여행을 가서도 아내는 아는 것만큼 볼 수 있다며 쓸 수 있는 시간을 전시해설에 집중했다. 셀카 사진 속 특히 내 마음을 움직였던 사진은 시간의 흐름이라는 건축물이었다. 굵은 와이어로 아무렇게나 엉키게끔 만들어 놓은 건축물은 그런 미로 같은 우연이 우리의 인생이라고 말해준다고 했다. 여행의 백미는 이런 곳에 숨어있다. 탄성이 나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진은 천장을 액자 사이즈의 사각형무늬로 뚫어 놓은 사진인데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마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듯한 착각이 들게끔 하는, 아마도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기획물은 오고 가는 관람객의 발길을 멈추세운다. 아내 역시 뻥 뚫린 하늘 액자 앞에서, 두 손을 하늘로 뻗어 셀카를 찍었다.
아마 전시해설을 들으면서 두 발로 밟고 있는 현실이라는 단단함이, 부드러운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부드럽게 변해갔는지 모른다. 그건 해리포터가 디멘터들의 공격으로 우울하고 암울한 현실을 이겨낸 마법의 약과도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디멘터의 공격을 받은 해리포터는 유일한 해독제인 초콜릿을 마법학교 교수의 권유로 먹게 된다. 달콤한 쵸코렛 한 조각은 우울한 마음을 마법처럼 사라지게 만든다.
혼자 떠나는 아내의 여행,
온전히 자기만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 그렇게 호사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영양제 먹듯 자기에게 선물을 주는 것, 그것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 인생은 달콤한 초콜릿 한 조각이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걸,
인생은 심플하고 달콤한 거라는 걸,
여행은 알게 해 준다.
아내는 얼마 안 가 다시 여행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