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과 똑같은 여름

여름이야기

by 둥이

그 여름과 똑같은 여름이었다.


낮 12시 한여름의 강한 햇빛이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다. 그림자가 사라지는 시간 모든 사물은 직각으로 떨어지는 태양빛 속으로 잠적해 버린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선 안개처럼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덥다는 말로는 뭔가 부족하다. 이런 무더운 날씨를 표현해 줄 적당한 단어를 다시 만들어야 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모든 여름이 같은 급으로 취급받게 된다. 지금 보내는 여름은 그 모든 걸 잊게 만든다. 정오의 햇빛은 정수리를 달군다. 가까운 커피숍으로 아메리카노를 사러 간다 해도 양산 없이는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뜨겁다.


그때의 여름은 딱 이 정도의 여름이었다. 아스팔트 위로 쏟아지는 강한 햇빛은 이 여름과 닮은 오래 전의 여름을 생각나게 했다. 1994년의 여름, 삼십일 년 전의 여름 그때 난 스물세 살이었다. 군대를 제대했던 해였고, 일산 신도시 아파트 현장에서 모래와 시멘트를 짊어 날랐다. 그건 몸을 부리는 일이었는데, 노동의 강도는 삼 년 동안의 군생활을 잊게 만들었다. 독한 시멘트 가루가 땀에 범벅이 돼 피부가 벗겨졌다. 손가락 마디에 물집이 잡히고, 다시 벗겨지고 그렇게 굳은살이 잡혀갔다. 손과 발은 노동일에 알맞게 진화되어 갔다. 아파트 건설현장은 주변보다 더 더웠다. 바람 한 점 없었고 뜨겁게 달궈진 콩트리트는 불덩어리가 되었다. 그 여름보다 더 더웠다.


삼십일 년 전의 여름 그곳엔 스물세 살의 내가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수영장 바닥에서 들려오는 울림처럼 무중력 상태가 돼버린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 삶에는 이처럼 어느 시간이나 어느 장소가 문뜩 떠오르는 때가 있다. 그건 여름이었거나 누군가의 이름이었거나 회피하고 도망가던 나의 뒷모습 같은 것들 일 수 있다. 모두 다 내 기억 어디엔가 박혀 있는 파편 같은 것들이다. 그 여름은 나를 데리고 간다. 그리고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 그리고 현재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딱 그때쯤 가슴이 먹먹해진다. 묘한 울림과 떨림이 그 시간에 존재한다. 아마 그 여름에 나는 꿈과 좌절, 삶의 희망과 고통이 범벅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냥 막막했던 미래와 뜨거운 태양이 그 여름 내 기억 빈방을 채우고 있다. 그 여름과 똑같은 여름이었지만, 많은 게 지워지고 채워진, 그 여름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갈 수 없는 여름이어서 더 보고 싶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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