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하는 것들

습관에 대하여

by 둥이

나도 모르게 하는 것들


나도 모르게 하는 것들이 있다.

"아 내가 이걸 했구나" 누군가 말해줄 때라야 아는 것들이 있다.


한 달에 몇 번 난 새벽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아직 캄캄한 밤 그 시간에 일어나 내가 하는 일은 마치 AI처럼 순서에 정해져 있는 대로 행동을 한다. 우선 이 년 전에 처방받은 혈압약 한 알을 캡슐에서 꺼내 먹는다. 냉장고 문을 열고 마른반찬 두 개를 꺼내 밥 반 공기를 덜어 식탁에 앉는다. 입맛이 없어도 그냥 먹는다. 마치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화장실로 들어가 중간 부분이 움푹 들어간 치약을 잡아 칫솔에 치약을 묻힌다. 왜 항상 치약은 중간 부분이 움푹 들어가 있는 건지 생각하며 칫솔질을 한다. 치과협회에서 권장한 3분이라는 시간을 채우기엔 나의 인내심이 부족하다. 그런 면에서 아내는 3분이라는 시간을 족히 채우고도 남는 시간 동안 칫솔질을 한다. 이빨이 마모되어 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하지만, 충치가 생기는 것보다는 칫솔질로 닳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입안을 헹군다.


다음엔 경건한 마음으로 거울을 보고 머리손질을 한다. 머리숱이 없다 보니 스프레이와 왁스로 한 올 한 올 잡아주어야 머리숱이 두피에 달라붙지 않는다. 외출을 할 때면 가장 많은 시간이 머리손질에 들어간다. 머리 감고 수건하나로 털어 말리고, 젖은 머리를 휘날리며 출근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다 머리숱이 풍성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머리카락에 그다지 공을 들이지 않아도 하루 종일 머리카락이 공중부양되어 펌스타일을 유지한다. 두피에서 올라오는 머리기름과 땀이 순식간에 머리카락을 잡아먹어, 대머리 아저씨처럼 머리카락이 두피에 탁 달라붙는, 볼썽 사나운 모습이 연출되지는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그건 그야말로 비극인 것이다. 슬픈 일이지만 머리손질을 하지 않는 날에 나의 머리카락은 며칠은 머리를 감지 않은 사람처럼, 머리가 떡이 되어 두피에 달라붙는다.


내 모습에 내가 경악하게 되는, 그런 비극을 피하기 위해 난 머리카락에 비교적 꽤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어떤 날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꽤나 만족스럽게 연출이 되지만, 또 여느 날은 아무리 만지고 뿌려봐도 제대로 된 스타일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 날은 머리를 다시 감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내의 화장하는 시간보다 길어질까 봐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럴 것이 머리숱도 없는 내가 아무리 왁스를 바르고 스프레이로 단장한다 해도 보는 사람 입장에선 거의 변화를 못 느낀다. 변한 게 거의 없다지만, 내 눈에 유독 커다랗게 보이는 한올의 머리카락이 신경 쓰여서 옆머리를 누르고 윗머리를 세워준다. 이 정도면 어디까지나 자기만족인 셈인데, 이럴 때면 가수 싸이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싸이 역시 전문 헤어디자이너가 해준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남이 의식하지 못하는 한가닥의 머리카락이) 자기가 직접 스프레이를 뿌리고 긴 시간을 들여 (얼굴화장 보다 더 ) 머리손질을 한다고 했다. 그렇게 수고를 들여 머리 손질이 끝나면 옷방으로 간다.


그리고 서랍장을 뒤져 양말을 찾는다. 그날의 기분이 속옷보다는 양말의 착용감 그러니까 양말이 발에 촥 안기는 느낌, 너무 꽉 조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헐거워도 안 되는, 발바닥 표피로 적당히 조여 오는 그 알싸한 느낌이 드는 양말을 찾아 신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룡점정이랄까 양말 윗부분을 한번 접어준다. 모든 양말을 그렇게 신는 건 아니지만 발목이 긴 양말을 신을 때면, 나도 모르게 나의 손가락들이 양말 윗부분을 가지런히 접어 발목 복숭아뼈 윗부분에 올려놓는다. 아마 그런 습관적인 행동들은 나도 모르게 AI처럼 몸속 어느엔가 복제되어 나를 움직이는지 모른다. 내가 양말 윗부분을 접는다는 걸 의식하게 된 건, 세탁이 끝난 빨래를 건조대에 널면서 알게 되었다. 유독 내가 신었던 양말만 모두 윗부분이 동일한 선으로 접혀 있었다.


신발 밑창만 봐도 누구의 신발인지 아는 것처럼, 유독 오른쪽 어깨선만 헤어져있다거나, 왼쪽 바짓주머니만 늘어나 있다거나, 오른쪽 신발 밑창만 많이 닳아 있다거나, 이런 것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만들어 놓는 표피 같은 것이다. 피부에 들러붙은 표피처럼,


나이에 맞지 않게 비교적 케주얼한 옷을 골라 입는다. 나이에 맞춰 옷을 골라 입는 사람들도 꽤 많지만, 난 격식을 차리는 회의자리 외에는 거의 진한 블랙 청바지와 단추 두 개 달린 셔츠를 입는다. 상의를 되도록 바지 위로 올려놓는다. 푸른색 난방을 입을 때는 허리선 위로 난방이 걸쳐 질만큼 빼서 입는다. 걸치면 화보가 되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난 그리 비율이 좋지 않다 보니 비율을 숨겨주는 스타일로 옷을 입는다.


통이 좁은 바지, 단추가 세 개 달린 셔츠는 가급적 입지 않는다. 목을 더 짧아 보이게 해주는 터틀넥(터틀넥은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즐겨 입는다. 터틀넥의 목부분을 한번 더 접어 입어 터틀넥이 터틀넥의 기능을 못하게 해서 입는)이지만 좋아하다 보니 자주 입는다.


이번 주는 회의가 없는 주여서 편하게 옷을 (정말 대충 - 타운티에 등산복 바지) 입는다. 옷 입는 시간은 제일 짧다. 더 시간을 들여야 되는데도, 조카들처럼 더 공을 들인다 해도 별로 진전되는 게 보이지 않다 보니, 옷걸이에 걸린 옷들 중에 무난한 네이비색이나 검은색 옷으로 찾아 입는다.


생각해 보면 거의 모든 시간을, 난,

나도 모르게 하는 것들로 채워져 살아간다. 그건 꽤 이상한 일이다.

생각해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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