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을 아시나요

인연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

by 둥이

그분을 아시나요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지나간 어느 시간에 우연히 마주했었던 그런 사이 일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그가 그 옛날 종로 3가 피카델리 극장 좁은 계단을 내려오며 나는 오른쪽 벽으로 붙고. 그 역시 내 어깨를 피하기 위해 왼쪽 벽으로 어깨를 접어야 했던, 그래서 영화 접속의 한 장면을 연출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는 내 옆자리에 앉은. 마르코 신부님과 점심 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놔둔 짧은 대화에서, 우리가 서로 알고 있는 사람이 같은 사람임을 알게 되었을 때 아 세상은 참 좁구나 하는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은 넓은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살아가며 알아간다.


물론 지리적 관점으로 본다면 세상이 좁다는 말은 딱히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말이지만, 친하지도 않았던 고등학교 동창을 (그것도 삼십 년이 지나 얼굴도 못 알아볼 정도로 늙었음에도) 필리핀 보라카이 휴양지에서 우연히 보게 되는 날에는,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라곤 고작 세상 참 좁네 그 밀밖에는,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과 신부님이 알고 계시는 그분이 같은 사람임을 알게 되었을 때, 마치 보이지 않는 감마선에 접속이라도 된 것처럼, 우리가 이렇게 가까운 사이였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다섯 번만 거치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연결이 되어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어쩌면 나와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미국 상원 의원이나 아프리카 원주민과도 우리는 연결이 되어 있는지 모른다. 비록 친밀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주 사소한 거라도 무엇인가 좋아하는 가수가 같다거나 종교가 같다거나 고향이 같은 사람들만 만나도 왠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앗다.


만약 우리가 지금까지 만나왔었던 모든 사람을 나열하여 서로 비교해 본다면 그중 몇 명 아니, 몇십 명은 서로가 아는 사람이어서 깜짝 놀랄 수도 있다.


"어떻게 아시는 사이세요"


알고 보니 내가 알고 있는 김 회장님은 신부님이 도척성당 주임신부님으로 계실 때 성당 총회장님이었다. 그때 크고 작은 성당일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했다. 만약 그날 신부님이 내차를 타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조금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우리는 서로의 김 회장님으로 기억했을지 모른다.


우연히라도 그분을 만나는 날이 온다면, 아마도 대화 중에 한 번은 꼭 물어볼 것 같았다. 서로의 기억 속에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건, 대화를 나누기에 아주 편안한 것이어서, 중간중간 찾아오는 어색한 침묵을 조금은 피해 갈 수 있다.


그때 아주 오래전 일이 생각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났을 때 여자동창들의 결혼소식이 들려왔다. 친한 친구도 아니어서 갈 마음이 없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나와 친하지 않았던 그 아이는 나와 친했던 친구와 친했다. 엉겁결에 같이 따라가게 되었고 피로연까지 참석하게 되었다. 그때 내 옆자리에서 식사 식사를 하다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야 너 상준이랑 친해 "


친한 친구와 친한 친구의(나완 친하지 않은)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건 때론 이런저런 질문과 시선을 감당해야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물론 이상할리 없는 상황이었지만, 왜 그 순간 오래전 그 기억이 떠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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