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이야기
새벽 배송
어느 날 수능을 앞둔 조카한테 전화가 왔다. 자주 통화하고 문자를 보내는 사이여서 추석 안부 인사려니 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역시나 채원이의 하이 소프라노 목소리는 흥분되어 있었다. 언제나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도파민을 분출하게 해주는 고음에 안정된 목소리 "아, 나도 기분 좋으니 너도 기분 좋아지세요 하는" 채원이의 어조는 밝고 따뜻했다. 가을 햇살처럼,
수능을 사십여 일 앞둔 채원이는 긴장감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무덤덤하게 소녀 가장처럼 버거운 자기감정을 짊어질 줄 아는 아이였다. 채원이는 샤인 머스캣이 먹고 싶다고 했다. 추석 전날이라 택배로 보낼 수도 없어서. 고모부가 알아보고 보내줄게 하고 말하였다. 채원이는 그 말이 답답했던지
"컬리로 보내면 돼." 말해주었다.
순간 광고로 보던 새벽 배송이 생각났다. 우리야 새벽 배송을 이용하진 않지만 어제만 해도 옆집 현관문에는 커다란 박스 상자가 새벽 배송 회사의 로고를 박은 채 집 앞에 놓여 있었다. 생각해 보면 옆집 할아버지는 새벽 배송 애호가였다. 매일 아침 현관문 앞에는 크고 작은 박스들이 놓여 있었다. 새벽이라는 시간이 정확히 몇 시를 가리키는지는 모르겠지만 새벽 여섯 시경 집을 나설 때도 옆집 현관문 앞에는 새벽 배송 박스들이 놓여있었다. 언제 가는 다섯 시에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 웹을 열어 새벽 배송 웹을 다운로드했다. 이상 하리 마치. 문명의 혜택을 싫어하진 않지만 웹사이트를 내려받는다거나 여느 사이트에 가입을 위에서 신상정보를 입력해야 할 때면, 필요한 몇 가지 기본 정보를 입력하다가도 이내 싫증이 나 입력하지를 않는다. 그러고 보니 방송인 김국진 씨는 아직도 축의금을 현금으로 낸다고 하는 기사가 생각났다. 김국진 씨는 지금은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핸드폰 은행 웹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분에 비하자면 나는 그런 데로 잘하고 있는 편이다. 난 대부분의 회사 업무나 개인적인 업무의 애경사가 있다거나 빈소에 조화를 보낼 때도 나는 핸드폰 웹사이트를 이용한다.
그렇게 난 채원이의 샤인 머스캣 배송을 위해 처음으로 새벽 배송 웹을 다운로드했다. 이런 일은 그렇게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대단히 특별한 경우 속한다.
어찌 보면 특혜에 가깝다. 그건 평소에 나답지 않은 일이긴 하다. 아마 평소에 나라면 카카오톡 선물하기 웹을 열고 과일 카테고리를 검색해 배송했을 것이다.
여하튼 나는 책상에 앉아 샤인 머스캣 검색을 해 보았다. 추석 다음날 이어서 대목이 지났던지, 클릭하면 대부분의 샤인 머스킷은 품절이 되었단 문구가 떴다. 그렇게 이십여 분 검색 끝에 간신히 배송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떴다. 혹시나 남이 채갈까? 급한 마음에 작은 글씨는 자세히 읽어보지도 않고 채원이의 주소와 연락처를 남기고 배송 버튼을 눌렀다.
주문을 한 다음날, 난 새벽 배송을 처음 이용하는 고객이었고 아무 의심 없이 다음날 새벽에 샤인 머스캣이 도착했을 거라 생각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새벽에 배송이 되었을 거라 생각했던 샤인 머스킷은 오일이 지난 후에도 배송이 되지 않았다. 이번 추석 연휴가 일주일이 넘게 연결되다 보니 어찌어찌 사정이 생긴 거라 생각하며 연휴가 끝나는 금요일 아침에 새벽 배송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온라인으로 구매한 후 배송 문제나 제품의 품질 문제로 전화를 걸 때면 언제나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직접 매장에서 자세히 보지 않고 선택한 제품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전화를 걸어 이러한 상황에 대한 컴플레인을 해야 되다 보니 에너지 소비가 두 배로 들었다.
그렇게 난 목소리 좋은 서비스센터 직원에게 배송 지연에 대한 타당한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배송직원은 매뉴얼에나 나올 법한 문구로 마치 AI가 이야기해 주듯 영혼 없이 이야기해 주었다.
서비스센터 직원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주문하신 그 품목은 새벽 배송으로 배송되는 제품이 아니라고 했다. 채소나 야채의 경우 싱싱한 제품을 배송하기 위해.
배송지에서 직배송을 한다고 했다. 웹사이트에서 주문하실 때 자세히 보시면 배송지 직배송이라고 적혀있다고 했다. 배송 지연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은 새벽 배송 회사에 없다고 했다.
이야기야 틀린 말이 없다지만 새벽 배송만 생각하고 새벽 배송 회사를 다운로드해 새벽 배송을 주문한 것인데 결국 제품은 새벽 배송이 아닌 일반 택배회사보다 더 늦게 배송이 되었다. 정확히 연휴가 끝나는 날 이후로 오일 만에 도착을 했다.
친절하고 상냥한 서비스센터 직원의 설명을 듣고 몇 마디라도 소비자 차원에서 말해 주어야 될 것 같았다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새벽 배송 전문 회사라는 점을 보고 주문을 한 것인데 실제로는 그 제품이 일반 택배회사보다 늦게 도착했다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일반 소비자가 느끼는 이러한 문제가 저뿐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귀사에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이 부분은 내부적으로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
서비스센터 직원도 이런 불만 사항 전화 접수가 많다면서 내부적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새벽 배송을 처음 이용하는 나
같은 소비자가 나 하나만은 아닐 것 같았다.
샤인 머스캣을 목 빠지게 기다리던 채원이는 그렇게 십여 일이 지난 어느 새벽에 샤인 머스캣을 배송받았다. 비록 한참이나 늦은 새벽 배송이었지만 그래도 새벽 배송은 새벽 배송이었다. 많이 늦었지만 새벽 배송이라는 프레임에서는 벗어나지 않았다.
그 후로 어느 날 새벽 채원이는 동영상을 보내왔다.
포도 한 송이를 입에 물고 감사하단 인사였다. 그것도 새벽 배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