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꿈 이야기

꿈 이야기

by 둥이

어둠 속 꿈 이야기


어렸을 적 잠자리에 누우면, 어두운 천장과 벽면으로 캄캄한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기이한 형상들이 나타났다. 실제 아무 형상도 없는 벽면이었지만, 어둠의 명암은 계속해서 어떤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느 날은 까만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나타나기도 했다가 또 어느 날은 눈만 커다랗게 뚫린 유령이 벽에 붙어 있었다. 벽지무늬는 사슴과 토끼가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그림이었는데, 저녁만 되면 벽지에서 어둠을 뚫고 사슴이 돌아다녔다. 사슴은 사자가 되기도 했고 용이 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사람이 되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한번 보이기 시작한 형상들은 일정한 시간이 되면 다른 형상으로 변해갔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어둠 속 형상들은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어느 날은 그 형상이 너무 뚜렷해서 형광등을 다시 켜 확인해 보았다. 방금 전까지 벽면에 웅크리고 있었던 기괴한 형상들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마치 해리 포터에 나오는 벽난로처럼, 형상들은 어디론가 빨려 들어간 것 같았다. 엄마에게 이야기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매일 밤 어둠은 찾아왔고 난 어둠을 피해 초저녁부터 잠이 들었다.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이불을 뒤집어쓰고 보았던 무서운 장면들은 어린아이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옆자리에 누워 잠을 자는 형의 숨소리는 어느새 새근새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형을 흔들어 깨워 보았지만 한번 잠이 들면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무서움이 많았다.


캄캄한 어둠이 싫었고 그림자를 보고도 놀랐고 해 가지면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 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타고난 천성이라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나이가 들면서 그 무서움의 대상은 조금씩 바뀌어갔다.


어둠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둠보다는 밝은 게 더 싫어졌다. 불을 켜두면 눈을 감아도 붉은빛이 눈꺼풀을 뚫고 들어왔다. 그 눈꺼풀 안은 분명 어둠웠을 텐데도, 눈동자는 밝음을 피해 좌우로 흔들렸다. 마치 암막 커튼이 쳐진 것처럼, 어둠은 다른 어둠으로 덮쳐졌다. 밤이 깊을수록 짙은 어둠은 밀도가 진해져 갔다. 급기아 어둠이 어둠을 삼키고야 만다. 분명 어느 시점에서 어둠은 스스로의 밀도를 조절해 갔다. 동공은 어둠을 받아들여 어둠에 길들여져 갔다. 생각해 보면 그 순간, 어둠이 어둠 속으로 옅어지는 그 순간, 숨어있던 형상들이 나타났다. 어둠의 윤곽만으로 형상이 보이기 시작하는 시점은 분명 동공 안으로 어둠이 스며드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어둠이 익숙해져 갔다. 어쩌면 어둠보다는 혼자됐다는 게 더 무서웠는지 모른다. 누군가와 연결돼있지 않다는 생각은 사람을 두렵게 만든다. 스르르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는 어느 순간, 잠이 드는 그 순간, 어둠 속 형상들은 벽난로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어둠을 온전히 밀어내려면, 어둠 속에서 은밀히 스며드는 잠, 죽어있는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어둠은 내게 넝쿨처럼 감겨들어온다.


긴 기다림 속 동공과 의식 속으로 어둠의 채도와 밀도를 높여온다.


어둠, 그 속에서 활개 치던 형태 없는 형상들은 꿈속으로 사라져 갔다.


어둠이 만들어준 선물, 잠, 그 안에서 만나는 형상들은 무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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