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감 - 나이가 든다는 건

가을이야기 나이이야기 늙어간다는 건

by 둥이

상실감 - 나이가 든다는 건


가을은 색으로 온다.

한 계절이 가고 다른 계절이 올 때면

상실감도 더해진다. 무엇인가 소중한 걸 잃어버린듯한 기분이 든다.

계절이 바뀌는 상실감보다 나를 더 아프게 하는 건 얼마 안 있어 나이를 먹는다는, 벗어날 수 없는 사실 때문 인지도 모른다.


가끔 시간이 빠르다는 것을 잊고 지내다가도 관공서나 은행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물어볼 때면. 난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동전을 찾듯. 13자리의 숫자를 읊어 된다. 마치 주술이라도 외우듯, 구구단 외우듯, 아마도 다른 열세 자리의 숫자를 들려주고 외워보라고 하면, 그건 쉽게 외워지지 않는다. 영어 공부를 몇십 년을 해도 늘지 않는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다. 자기 회사의 사업자등록번호나 아내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끝끝내 외우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듯이 말이다. 이상한 건 이런 나이가 어느 시기가 지나면, 자기 나이가 몇 살인지도 모른 체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다. 시간은 어느 순간 KTX 고속 열차의 시속으로, 지구의 자전 속도 보다 더 빨리, 물론 체감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시간은 상대성이론만큼은 아니지만, 세대별로 체감하는 시간의 속도는 다르다. 이건 불변의 법칙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속절없이 늙어가는 게 나이라지만,


내 나이를 말할 때마다 난 깜짝 놀라 곤한다. 마음은 아직 청춘 이 건만 몸은 마음만큼 따라가지 못한다. 중요한 건 마음이라고 하지만 정작 몸이 늙어가는 것을 보면 마음도 서글퍼진다. 눈꺼풀은 힘없이 내려앉고 작은 글씨는 보이지 않는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결재 서류를 보기엔 나의 노안은 감당할 수가 없다.


책상 위마다 돋보기안경을 몇 개씩 구비해 놓고, 가방 안에도 하나 휴대용으로 들고 다닌다. 어느 날 돋고 이 안경이 가방에 없는 걸 알게 되기라도 할 때는, 자신감도 떨어지고, 왜 그걸 챙기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감도 들었다. 그만큼 내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 되었다. 핸드폰만큼이나 말이다.


누군가 불쑥 이것도 안 보이냐며. 커다랗게 쓰여 있는 행선지를 대신 읽어줄 때도 있었다. 40대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50대 들어서 많이 알게 되는 건 이제 곧 나도 늙은이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는 없지만 우리나라에만 있는 예의범절 중에 나이를 꼬박꼬박 챙겨서 잔치를 하는 관습이 있다.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나이 60이 되면 환갑잔치를 했다. 요즘 굳이 환갑잔치를 챙기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환갑이라는 나이가 가져다주는 상징성은 상당히 크다. 어쩌면 그 환갑을 기준으로 노인과 청년이 구 분 되기 때문이다. 환갑은 청년이 될 수 없는 나이이고. 어디 가서 나 노인으로 취급을 받아야 하는 나이라고 생각들을 하다 보니, 환갑이 되었다고 호들갑을 떨기보다는, 내가 벌써 환갑이구나 하는 상실감이 더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 지표와도 같은 환갑이라는 나이가 이제 오 년 앞으로 다가왔다. 피해 갈 수만 있다면 핸들을 돌려 좌회전 우회전 아니 유턴이라도 해서 돌아가고 싶었다.


시간의 이정표에는 유턴이란 게 있을 리 없지만, 그렇다고 좌회전 신호만 있는 것도, 무작정 우회전 신호만 있는 것도 아니어서, 결국 인생의 좌표는 본인의 선택으로 만들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시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간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계절이 오고 갈 때면 이런 상실감은 커져만 간다. 누가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아무 이유도 없이, 기분은 심해 속으로 가라앉는다. 이런 상실감을 의학적으로는 우울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약간은 결이 다르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

곧 겨울이 올 것이다.

상실감도 커져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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